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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논쟁의 부끄러움 그리고 기회
법응스님 chonbe@naver.com 2016-01-23 (토) 19:45
최근의 ‘깨달음 논쟁’과 관련, 불교사회정책연구소장 법응 스님이 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심경을 담은 첫번 째 글을 보내왔다. 스님은 “이번 기회에 승려의 올바른 수행관과 가치관이 확립되고 종단과 승가가 이상적 조직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란다.”면서 수불 스님과 현응 스님 사이에 공개토론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전문을 싣는다.
“깨달음과 역사, 그 이후”에 대해 토론회가 열리고 몇 분의 학자와 스님들이 생각을 달리하거나 혹은 공감하는 글들을 연달아 발표하였다. 궁극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교계 시민단체 차원의 토론회도 개최되었다. 바람직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변혁과 전환의 시기에 한국불교의 오래된 논쟁이 마무리되는 시절인연이 도래하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앙의 목적이랄까, 출가든 재가든 불자의 본원은 결국 구세대비에 있어야 함을 재확인시킨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우선 불교는 체험하고 행동을 통하여서 증명하는 종교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불교는 철저하게 삶의 제반문제,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자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구하여서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확인시키는 종교다. 역사적 경험과 논리와 직관에 의해 옳고 좋은 길이니 함께하자는 주체적인 종교다. 불교는 가르침에 대해 ‘이러하고 이러하다’와, 동시에 ‘이러하다 해서 체득해 보니 그러하더라.’를 해야 하는 종교다. 그래야만 불교는 생명력을 갖고서 면면할 수 있으며, 무명과 탐욕을 즐기는 세상에 지혜와 자비의 등불을 밝힐 힘이 생긴다.
‘구세대비(救世大悲)’란 무엇인가? 한량없는 큰 자비로써 고통 속에 있는 중생세계를 구한다는 뜻이다. 이 구세대비에 대한 철학과 실천력, 종단조직의 기능이 부실할 시 불교는 쇠락하고 사사로운 집단으로 변질된다. 철저하게 사익을 배제하고 공익의 길을 가라는 것이 부처님의 근본가르침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현응 스님의 주장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나, 수불 스님의 주장처럼 간화선을 통해 차원 높은 경지로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분명코 범부의 그것과는 다른 사유를 하고 행동을 해야 함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바로 착함(善)과 자비(慈悲)심이란 샘물에서 솟아나오는 사유와 행동을 말한다.
선함과 자비는 차별과 분별을 넘어서는 힘의 원천으로 모든 수행자가 갖추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다. 지혜의 완성에 대해서,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 혹은 “몰록 깨닫는”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수행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의 바탕이 선과 자비로 가득 채워져 있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이 선과 자비가 결여된 이해와 깨달음은 무의미하다. 혹자는 불교를 잘 이해하거나 참선 수행을 하다보면 자동적으로 선해지고 자비로워진다고 말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 평생의 경험을 두고 말하자면, 현실에서 그러한 등식이 성립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승가에서는 오히려 중생의 현실에 대한 몰이해와 사회성의 결여, 그리고 아전인수격의 깨달음 논란만이 난무했을 뿐이다. 이론의 정립과 실천적 측면의 흐름에 심각한 모순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수행자가 왜 선하고 자비심이 충만해야만 할까? 계는 100% 못 지킨다 해도 자신의 주변과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의(不義)와 폭력을 외면하고서야 어찌 존경과 권위가 서겠는가? 부처님께오서 계를 제정하신 의도 또한 선과 자비심에 바탕한 교단구성원들의 사회성 진작에 있다고 본다. 불의와 폭력이 난무하는, 집단과 사회의 상황에 대해서는 몰라라 하면서 “깨달음” 혹은 “구세대비”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사사건건 다 나서라는 것이 아니다. 차별과 분별심으로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취사선택한다든가 외면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수행자의 자세라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종종 출세간을 논하는 불교계가 국가권력에 주눅이 든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것도 문제다. 직위와 법랍이 높으신 분들이 권력의 향배에 따라 움직이고 사람과 집단의 문제를 대함에 있어서도 힘과 지위, 인맥, 이기적 목적에 따라 취사선택한다면 그 또한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논쟁이 반갑게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깨달음 논쟁을 펴나가기엔 우리의 종단적 현실이 그다지 선해 보이지도, 자비로워 보이지도 않기에 부끄러움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가 매우 어려운 지경에 있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 극심한 노인빈곤율과 세계 최고의 자살률, 어린이 행복지수 세계 최하위권 등 삶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각종 수치가 십 수년째 세계 ‘최고’, ‘최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인간이 어느 만큼이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일 매체를 통해 들려온다. 남북관계는 극한으로 치닫고,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이 와중에도 무능한 정부, 무능한 권력은 총선을 통한 권력 재창출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모양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려들이 오래 전에 마무리 지었어야 할 주제를 가지고 여직 논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현실이 부끄럽고 어쩌면 사치스런 현상일 수 있다. 그러나 조계종의 이념, 목적, 실천방향이 바르게 정립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구세대비라는 사회적 서원이 요원하기에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논쟁을 통해 정치권에 자극을 주고 사회의 불교적 가치관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의 정치인과 가진 자들에게 불교적 윤리의식과 세계관을 잘 일깨워주고 우리가 모범을 보여 왔다면 이 어려운 시기에 정치권이 패거리와 이기주의로 저렇게까지 무책임한 행태들을 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불교문화가 위대한 세계성을 띤 탁월한 것이기 때문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패권주의도 해결할 방편이 있다고 보며, 가난하고 힘없는 국민에게는 난관을 극복할 의지와 희망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이 불교와 그 문화에 있다. 불교가 잘 이해하면 되는 것이든, 깨달아야 되는 것이든 그 처음과 귀결은 선함과 자비심을 바탕으로 해서 세상에 사무량심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도정되지 않은 벼를 갖고서 밥을 지을 수가 없으며 설사 밥을 지어서 먹었다 해도 어찌 소화를 시킬 것인가? 벼를 도정해서 쌀로 변화시켜야만 제대로 된 밥을 지을 수가 있으니 수행자의 자세도 시종일관 그러해야 마땅하다. 착하지 않으며 자비심이 부족한 자에게는 밥 먹는 숟가락도 무기가 되고 편한 잠을 위한 베개도 살인도구가 된다. 부처님 법이 세상과 중생을 구하는 더없는 가르침이지만, 탐욕과 명예욕에 불타는 사람들에겐 축재와 종교적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늘 경계해야 한다.
불교는 인간의 삶과 생사의 길이며, 무수한 사람들과 관계된 현실의 길이다. 수행은 사람과 사람의 업(과거의 인연들)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상 그리고 내 신체의 변화 등 그야말로 귀신 곡하게 알 수 없는 ‘마음’에 관한 문제다. 불교는 마음을 바르게 분석하고 이해하며, 자신의 것 화(체득 - 깨달음) 하여서 어찌 세상을 위해 쓸 것인지를 연구하고 행동하는 종교다. 이번 기회에 승려의 올바른 수행관과 가치관이 확립되고 종단과 승가가 이상적 조직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바란다. 수불 스님과 현응 스님의 공개토론회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가가 올바른 수행관으로 잘 무장돼 있고 종단조직이 유기적으로 잘 짜여 있을 때 불자 개개인은 선과 자비심을 근간으로 해서 본래의 서원을 잘 이루어 갈 것이다. 필자는 이를 ‘수행과 자비실천의 환경성’이라 표현하고자 한다. 종단과 본사의 수행환경과 분위기에 따라서 승려의 질적 양적 변화가 가늠된다는 주장이다. 설사 현응 스님의 주장과 수불 스님의 의견이 이러한 방향을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회향은 그러한 방향으로 유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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