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김왕근의 불교담론
“현응스님 말씀은 한국불교 르네상스 신호탄”
이학종 기자 urubella@naver.com 2016-01-18 (월) 23:10
김왕근 <붓다로살자> 편집장이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깨달음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동안의 논쟁은 학자들 중심으로 진행되었으나, 교계 각분야에서 활동을 하며 불교를 공부하고 실천하는 불자들의 '격조와 내용을 갖춘' 글이다. 미디어붓다는 당초 약속대로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논쟁을 위해 이 글을 비중을 두어 게재한다. 편집자
마음의 실체를 보는 일은 가능한가?
지난해 가을 현응 스님으로부터 시작돼 새해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깨달음 논쟁’을 흥미 있게 보고 있다. 신심 깊으신 스님들과 학덕 높으신 교수님들이 큰 가르침을 주고 계셔서 많이 배우고 있다. 스스로 치열한 선방 수행을 하고 있지도 않고 불교 이론을 공부한 이력도 일천한 일반인이 이 논쟁에 참여할 수 있을까 저어되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느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직군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므로 나도 그 중생의 일원으로서 이 ‘깨달음 논쟁’에 한마디 더하고 싶었다. 이 논쟁이 보다 넓은 범위의 사람들을 포괄하는 것이 애초에 현응 스님이 의도하신 바와도 통한다고 생각하여 용기를 냈다.
논쟁은 이화여대 한자경 교수님의 글까지 왔다. 한 교수는 논리가 정연하고 설명이 정밀해서 누구나 집중해서 읽으면 알 수 있도록 글을 쓰기 때문에 내가 존경해 온 학자이시다. 그러나 평소에 그의 ‘마음’에 관한 이론이, 그리고 이번 홍창성 교수에 대한 비판의 글이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이 설하신 설법과는 좀 결이 다른 데다 현대인의 상식이나 과학적 사고방식과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한 교수는 ‘마음’을, ‘일체의 이원성을 넘어선 불이의 바탕’이라고 설명하면서 ‘도화지’론을 제시한다. 도화지 위에 그려진 밝은 달을 a, 어두운 밤하늘을 b라고 할 때, a와 b는 종이 위에 그려진 상(相)이어서 자성을 가진 자체 존재로 실체화할 수 없지만, 우리가 깨달으려고 하는 것은 a와 b의 상호의존적 연기성이 아니라 a와 b 둘의 공통의 바탕인 ‘빈 종이 A’라는 것이다. 이 A가 바로 상을 여읜 성(性)이고 바탕 체(體)이며 석가가 말한 자성청정심, 대승불교가 말하는 불성과 여래장과 일심이라는 것이다.
이는 불교계에서 언급돼 온 ‘마음’론에 대한 통찰력 있는 언술이며 매우 분석적인 개념화라고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개념화한 그 ‘마음’이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 교수는 그런 ‘마음’이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신론>을 인용하여 “그 빈 바탕이 바로 ‘진심’이고, 무량공덕을 갖춘 불공(不空)의 진여법신이다”라고 한다. 빈 바탕으로서의 ‘진심’은 ‘공(空)하지 않으며’, 실체가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이를 ‘자아’와 구분되는 ‘진여’라고 하면서 “석가가 ‘무아’로써 부정한 ‘아애‧아견의 자아’와 ‘아공‧법공으로 드러나는 진여’(이공소현진여二空所顯眞如)를 진정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우리는 여기서 ‘아공‧법공으로 드러나는 진여’의 의미 혹은 “‘마음’이란 빈 바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 ‘진여’ 혹은 ‘빈 바탕’이 실체로서 존재하고 그걸 보는 것이 가능하며 그것이 인생의 비밀을 풀어줄 열쇠라면 그걸 보려는 노력이 의미가 있겠지만, 만약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으며 그걸 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데 하등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그걸 보려는 노력은 도로(徒勞)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도로(徒勞)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 헛된 노력을 그쳐야 할 것이다. 마치 석가모니가 6년간의 고행 끝에 이를 그친 것처럼.
‘진여’ 혹은 ‘빈 바탕’으로서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현대 과학이나 상식의 언어로 말한다면 그것은 인간에게 있는 ‘신경 회로’다. 인간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아서 이를 감각하고 거기에서 개념을 만들고 욕구를 일으켜 행동하며 그런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존재인데,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 인간의 뇌와 척수, 말초신경 등 몸 전체에 퍼져 있는 신경망에서 일어난다. 이는 의식을 연구하는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로 확고해진 이론이다. 인간은 그의 ‘신경망’이며 소화기관이나 호흡기관등은 이를 위한 보조기관에 불과하다.
오늘날 현대 과학은 ‘의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과학에서 합의하고 있는 것은, ‘이원론’은 불가(不可)하다는 것이다. 육체와 구분된 어떤 정신적 실체가 육체에 깃든 것처럼 생각하는 데카르트식 이원론은 틀렸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은 육체의 활동에 수반되는 어떤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컨대 외부로부터 온 ‘빛’은 망막의 시신경을 통해 전기 신호로 바뀌고 이 신호가 뇌 속에서 여러 시각적 처리 등을 거친다. 의식은 이렇게 외부 자극을 인간의 신경망이 처리하는 과정 어딘가에서 발생하리라는 것이 ‘뇌’에 대한 관찰의 결과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의식이, 즉 마음이 인간 몸 속 수많은 신경 회로의 기제들 속에 분산돼 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의 이런 연구 결과는 “인간은 오온(五蘊)의 존재다”라고 하는 2600년 전 부처님의 이론과도 통하며 보통 사람의 직관이나 상식과도 통한다.
현대 과학의 시각에서 보면 한 교수가 말한 ‘진여’ 혹은 ‘빈 바탕’이란 ‘인간의 신경회로’로 번역된다. 신경 회로에 나타난 상(相) 그 자체는 ‘자아’에 불과하며 그 ‘자아’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신경회로는 청정한 것으로서의 ‘진여’이어서, 어떤 상도 담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비친 ‘자아’가 곧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자, 이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됐다. 첫째, ‘진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진여는 외부 자극에 촉발되어서 인간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과정이거나 혹은 거기서 수반되는 것이지 그걸 초월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진여를 보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이 어떤 구조를 갖는지를 이론적으로 안다. 그러나 그 구조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현재 과학의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만약 ‘진여’를 유식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이라고 한다면, 즉 전생으로부터의 업(業)을 함장하며 윤회의 주체가 되는 신비한 존재로서의 ‘영혼’을 뜻한다고 하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그런 존재를 보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한 교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마음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그 역설을 왜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이 ‘깨달음 논쟁’ 참가자들은 인간 의식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도록 하는 구조라는 것을 대부분 안다. 다만 그 의식의 본체를 수도를 통해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마음을 보는 노력은 의미가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본다’는 것의 의미가 정의돼야 한다. 만약 그 ‘마음’이 우리의 ‘자아’를 만들어내는 우리의 신경계라고 한다면,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도 그걸 볼 수 없다. 이 ‘마음’이 ‘제8 아뢰야식’을 의미한다고 해도, 이는 신화(神話)일 뿐이며 실제가 아니므로 볼 수 없다. 결국 “자신의 마음을 깨달음으로써 성불(成佛)하겠다”는 전통의 간화선(看話禪)은 의미 없다.
다만, 간화선이 혹은 다른 모든 수행이, 지금의 자기 마음을 돌이켜 봄으로써 ‘부처로 존재하기’를 목적으로 한다면 의미 있다. 인간은 부처의 마음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중생의 마음도 갖고 있다. 인간이 부처인가 중생인가는 그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만약 물질적인 욕망에 이끌려 남의 물건을 훔친다면 그는 도둑이며 중생이다. 그러지 않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을 낸다면 그는 부처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어떤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서 죽어가는 탑승객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을 내지 못한 선장은 그 순간 악마였다.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서 학생에게 준 교사는 부처였다. 인간이란, 그의 ‘행동’이며 ‘삶’이다. 인간이 스스로 부처의 행동을 하기 위해서 평소에 마음을 닦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마음이란 자유로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주 자신이 만든 기존의 ‘인식 찌꺼기’에 매몰되거나 혹은 탐진치(貪瞋癡), 갈애(渴愛)에 매이게 된다. 자신의 마음의 이런 상황을 알아차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수행이란 이런 자기중심적인 마음 즉 “고립된 자아가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서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된 존재, ‘우주적 존재’로서의 ‘나’를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써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내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먼 훗날 내가 부처가 되겠다”는 헛된 욕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부처로 존재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한교수가 말한 “인간이 자신을 신묘하게 안다”는 뜻의 성자신해(性自神解)도 이런 맥락에서라야 의미가 있다.
기존의 간화선 수행이 의미 없음은 간화선주의자들의 언행을 보아도 이미 증명된 셈이라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의 목표는 ‘진여법신’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진여법신’을 보려면 필부에게는 ‘삼아승기겁’이 걸린다. 그야말로 ‘무한’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어서 이생에서 그것을 보는 것은 언감생심, 꿈꾸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는 그 불가능한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은 우리 근현대 불교에서 ‘간화선 수행’에 가장 능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성철 스님을 위시해서 수많은 조사들이 하신 말씀이다. 불교계에 퍼져 있는 이런 ‘신비주의’는 고려 시대 국사(國師) 지눌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어서 뿌리가 깊다.
그러나 왜 가능성이 0.0000000001%도 안 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가? 설악산 신흥사 조실(祖室) 오현 스님은 "참선하다 죽어라"라고 한 자신의 어린 시절 옛 노스님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참선하여 빨리 깨달아 깨달음의 삶을 살아야지 참선하다가 죽으라고? 지금 생각하면 그 노스님은 고대 중국 선승들의 화두에 중독된 것이 분명합니다. 마약중독자가 마약에 중독된 줄 모르는 것처럼 화두 중독자도 자기가 화두에 중독된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한 교수는 현응 스님의 글을 보고 “깨달음을 구해 불교의 길에 들어선 스님 입에서 (‘깨달음은 이해다’라는) 이 말이 나오기까지의 고뇌를 생각하니, 그것이 마치 나의 것인 양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고 하면서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고뇌의 길이 수행자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한 교수는 스님들에게 “1년 중 6개월은 안거하면서 간화선수행으로 마음의 깨달음에 전념하고 나머지 6개월은 교학을 하면서 경전의 이해에 몰두하는 삶”을 추천한다. 이는 오현 스님이 비판한 ‘선승들의 화두에 중독된 삶’을 오늘의 스님들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부처님은 2600년 전, “아트만을 보아야 한다”는 브라만교의 가르침이 틀렸다고 선언하셨다. 한 교수가 자신의 이론을 ‘자아’론이 아니라고 하고 브라만교와 다르다고 하지만, 그 이름을 불성이라고 하든 여래장이라고 하든 일심이라고 하든 진여법신이라고 하든 아니면 유식불교의 용어를 써서 ‘제8 아뢰야식’이라고 하든 ‘a와 b의 공통의 바탕 A’라고 하든, 그것이 실체로서 존재하며 윤회를 건너뛰어 영원불멸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브라만교에서 말하는 ‘아트만’, 즉 ‘영혼’과 다른 것이 아니다. 다음은 불교 경전에 나오는 시(詩)들인데, 하나는 부처님의 시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 ‘마라’의 시다. 어떤 것이 부처님의 시일까?
“밤과 낮은 지나가지 않고
목숨은 다함이 없다.
수레의 축에 바퀴가 돌아가듯,
사람의 목숨은 돌고 돈다.”
“밤과 낮은 지나가고
목숨은 다함이 있다.
작은 시내에 물이 마르듯,
사람의 목숨은 다해 버린다.”
아래에 있는 것이 부처님의 시다. 부처님은 인간의 생명이 유한함을 말씀하시고 그 유한한 삶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아까운 삶을 “참선해서 성불하겠다”고 하는, 되지도 않을 일에 쏟아 붓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불교의 두 축은 지혜와 자비다. 자비는 지혜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삶’을 위해서는 ‘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말을 현응 스님은 “‘깨달음’이 있어야 ‘역사’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표현한 듯하다. ‘깨달음’은 ‘사회적 실천’으로 완성된다. 실천이 빠진 ‘깨달음’만 얘기하면 그 얘기가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자신의 마음속으로 침잠해서 얻어지는 경지라는 게, 그래서 이루는 ‘부처’라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에, 이미 명상의 최고 경지까지 갔었다. 당시 명상의 최고 지도자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에게 배워서 비상비비상처선정(非想非非想處禪定)에 도달했고, 스승으로부터 “함께 제자를 길러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이 경지에 가서 마음의 쾌락은 얻을지 몰라도 인생의 의미가 거기서 찾아지거나 혹은 중생이 구제되는 것은 아니므로 스승과 결별했다. 이는 ‘이루는 깨달음’을 버린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후 자신의 이성(理性)을 통해서 성도(成道)했고, 이후 끊임없이 대중을 만나 대중들 속에서 살았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불교의 스님들 중 일부는 간화선에만 침잠하거나 혹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불교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졌고, 중국의 선불교에 무비판적으로 치우친 결과다. “깨달음은 이해다”라는 현응 스님의 말씀은 ‘신비주의’로 오염된 오늘날의 한국 불교를 바로잡아 석가모니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한국 불교의 르네상스를 여는 신호탄이라고 할 것이다.
김왕근(‘붓다로살자’ 편집장)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