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천 기자
hgcsc@hanmail.net 2015-12-07 (월) 16:22인간을 포함해 동물들이 생명체로 살아간다는 것은 먹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먹어야 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생명을 취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생명류의 비극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이 생존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아니 아주 벗어나지는 못하더라도 비극을 최소화하는 길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종교음식전문가 김현진 씨(오신채 없는 채식요리 전문점 주식회사 마지 대표이사)에 따르면, 음식을 잘 먹는 것은, 많이 먹는다는 뜻이 아니고 제대로 먹거나 만족스럽게 먹는 것이다.
김 대표는 말한다. 인간은 먹는 행위를 문화로까지 발전시켰으며, 음식 문화는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모습이라고. 그런데 이 인간의 음식문화가 동물들의 생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최근 수백 년 간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지배력이 비대칭적으로 변하면서 모든 동물들의 운명을 인간이 결정하게 되었다고.
김 대표는 “먹는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인간의 몸과 마음은 아직도 그 변화에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제사상에서나 맛보던 고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자 매일 밥상에 고기반찬을 올리는 음식문화도 그렇고, 과잉으로 들어오는 육식의 고칼로리를 차곡차곡 저축하듯이 쌓아두는 우리 몸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먹는 것과 우리의 먹는 행위에 대해 한 번쯤 돌아볼 시기가 되었다고 김 대표는 강조한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지난 시대에 머무르며, 낡은 몸과 묵은 생각으로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꾸어야 할 때가 아닐까?”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꾸는데 음식문화는 거의 절대적이라는 것이 김현진 대표의 지론이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와 무엇을 볼 것인가의 질문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무려나. 김현진 대표는 이런 소중한 생각과 연민이 깃든 고민들을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난달 펴냄)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아 세상에 선을 보였다. 종교와 음식, 나아가 각 문명의 신화와 전통, 동서양의 철학이나 불교철학 등에 상당한 조예를 갖춘 만능 실력자 김현진 대표의 처녀작이기에, 또한 음식문화와 윤리, 철학을 다룬 지적 여행의 국내 최초의 저술이기에 이 책에 대한 세상의 관심과 기대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진 대표가 이 책을 통해 널리 주장하고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가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인간됨을 선언하고 인간의 만찬을 차리기 위해서는 강자가 약자를 먹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는 밥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을 아닐까. ‘나눔을 통해 먹음은 완성된다’는 저자의 결론은 음식을 만들고, 공부하고, 음식점을 내어 그 정신을 널리 실천하는 우리시대의 ‘음식 보살’의 나툼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두루 알다시피, 모든 생명류는 음식을 먹고, 먹는 행위를 멈추는 순간 머지않아 죽음과 맞닥뜨린다. 이런 딜레마는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을까? 이 책은 이 질문을 시작으로 음식문화의 역사를 파헤친다. 저자 김현진 대표는 태초부터 21세기까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현 세대가 직면한 음식코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동시에 욕망에 휩싸여 식탐을 부리고 다른 생명에 위협을 가하면서까지 먹으려 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와 역사, 철학을 아우르는 놀라운 음식 기행을 김현진이라는 ‘걸출한’ 가이드와 함께 지금부터 시작해보자. 인류의 식탁을 분석하며 올바른 ‘먹는 행위’를 찾아가는 이 여정은, 이미 그 나침반인 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흥분의 도가니로 당신을 이끈다.
이 책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신들의 향연’에서는 최초 인간과 신의 관계를 규명하고, 신들이 영을 채우기 위해 택했던 음식들을 소개한다. 신성을 향한 인간의 호기심과 관심을 긁어주기에 적절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으며, 신화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한편으로는 영적 존재를 우러러보는 인간의 한계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는지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된다.
2장 ‘인간의 만찬’에서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 사이에 놓인 음식, 그로 인해 벌어지는 혈투와 욕망, 즉 식탁 위에서 벌어지는 비극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역사와 함께 공동체, 나눔을 강조한 식탁 문화 역시 끊임없이 이어져 왔음을 강조한다. 예수의 공동체, 탁발 공동체, 승가 공동체 등의 역사는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식탁 문화에 대해 넌지시 예고한다.
3장 ‘구도자의 밥상’에서는 종교적 계명에 따른 밥상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겸손, 섬김, 나눔의 식탁이 왜 중요한지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저자는 어렵고도 난해한 ‘먹는 행위’의 문제를 윤리적, 철학적, 종교적 관점으로 광범위하게 접근하며 식탁 위의 비극을 끝낼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살펴보는 인류의 음식문화는 비극적이다 못해 실패에 가깝지만 어떻게 돌이킬지를 제안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경이롭다.
음식문화를 주제로 한, 이제까지 접하지 못했던 책의 출간에 대해 각계의 저명한 인사들이 추천의 글을 보내왔다.
“김현진 씨가 쓴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은 참 맛깔스러운 책이다. 그이가 운영하는 ‘마지’에서 맛보는 절집 음식처럼 깔끔하면서 큰 일깨움을 준다.” - 윤구병(농부철학자)
“인(人)과 식(食)은 둘이 아닙니다. 건강한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고 청정한 음식을 먹으면 청정해집니다. 마지 김현진 대표의 <신들의 향연, 인간의 만찬>은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수행의 반려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석산 이진수(원불교 교무)
“바른 먹거리와 먹는다는 행위에 담긴 성찰은 나눔이라는 모습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음을 말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가 말하려 하는, 먹는다는 행위란 단지 먹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 우희종 교수(서울대학교 수의학과)
264쪽, 15,000원.
인간의 삶은 모두 한 우리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야 하고, 인종적 사회적 울타리들은 우리를 좁게 만들 뿐이다. 경계를 넘어 모든 사람의 살림을 자유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꿈이다.
그의 별명은 살림큐레이터이다. 학부에서 환경공학을 공부하였지만, 대학원에서는 불교윤리(계율학:살생을 금한 종교 안에서 동물과 인간을 살리고자 하는 공부)로 석사를, 현재는 불교윤리와 음식학으로 동국대학교 박사과정을 진행 중이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주)마지’라는 오신채가 없는 채식전문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종교, 인종, 문화를 가로지르는 미붓아카데미 인문학강좌 시리즈의 기획자이기도 하다. facebook.com/maji.templef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