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경
yugao@hanmail.net 2015-12-07 (월) 10:48다선(茶筅)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명사로써 ‘가루로 된 차(茶)를 탈 때 물에 잘 풀리도록 젓는 기구. 조리와 비슷하게 생겼다.’라고 소개한다. 가루차를 젓기 위한 솔이다. 선(筅)은 ‘대를 잘게 쪼개어 만든 부엌 솔’을 일컫는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는 조리(笊籬) 역시 ‘쌀을 이는 데에 쓰는 기구, 가는 대오리나 싸리 따위로 결어서 조그만 삼태기 모양으로 만든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조리라는 글자(笊)도 대로 만들고 울타리를 뜻하는 리(籬) 역시 대로 만든다. 대체적으로 주방기구를 비롯하여 아녀자들이 쓰는 도구 일반은 대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굳이 아녀자들만 한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선이 언제부터 대로 만든 것을 사용하였을까 하는 것이 가장 의문이다.
대관다론이나 고대부터의 차문화 문헌을 살펴보면 다선의 변천을 쉬 알 수 있다. 모양도 다채롭고 소재도 다양하여 차문화의 역사와 재미있는 스토리가 함께 한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여행 중에는 여독을 풀기 위한 최고의 방편으로 가루차를 위한 차도구를 챙기곤 하는데, 찻솔을 챙기지 못한 실수로 인해 더 멋진 찻자리가 되었던 일화이다. 당시 내 카스에는 이렇게 실었다.
국경을 넘었다. 여행 중에는 여러 가지 챙길 것이 많다. 그 중에 내가 항상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것은 가루차 찻사발이다. 여름이고해서 낮은 송대다완을 재현한 송기진 선생님의 보성분청을 선택했다. 무겁지 않고 부피가 훨씬 작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여정을 정리하며 마시는 가루차 한 잔은 그야말로 몸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준다. 하루 일정을 소화하고 체크인, 만찬기념 및 환영회를 앞두고 룸을 배정 받아 들어왔다. 가루차 한 잔의 행복을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안 보인다. 찻솔! 손가락으로 저을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또 가까운 곳을 휭 한 바퀴 돌았다. 찾고자하는 것은 늘 가까이 있다. 자연은 인간 삶을 위해 늘 예비하고 있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
번뜩 생각나는 것!
그리고 선조들의 지혜!
이것이 더 운치 있는 가루차 한 잔을 만들어준다. 솔가지 세 가지와 청미래덩굴(맹감) 잎 하나를 꺾어 스스로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와 보니 송진내와 솔향이 가미되어 가루차가 더 향긋한 차향을 뿜어낸다.
이것이 자연인!
정말 훌륭한 찻솔이 되었다. 멋은 더 나고 차향은 더 운치 있고 맛 또한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격불 역시 탁월하다. 크~~~ 여기가 어딘들 무엇하랴! 내 폐부를 적셔줄 한 사발의 차라면~~ 송수권 선생님의 ‘정든 땅 정든 언덕 위에’ 라는 시가 절절히 생각나는 시간, 녹향의 차 한 잔을 마주하고 보니 여독은 간데없고.
차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찻자리에 앉았더니 1년도 넘은 찻솔이 글쎄 머리가 다 빠지고 있는 것이다. 인생도 이럴진대…. 문득 머리도 빠지고 늙어가는 찻솔을 보면서 그 날을 상기해 보았다. 청청하게 푸르디푸른 그 기백은 어디로 가고, 다시없는 찻자리를 했다고 스스로 즐거워하고 취했었던 그 생생한 기억마저도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간의 흐름도 따라 그 푸른 빛깔도 그 맛과 향도 그리고 멋남에 로망도…. 세월을 까먹고 이렇게 서서히 늙어가는 것 사람인들 비껴가랴! 세(勢)도 쇠하고 권력도 늙고 권위도 위태로워지며, 사람 역시 늙어가는 것을….
문득 김대중 선생이 서거하신 날, 온 우주가 떠들썩하고 언론이 집중되었던 날, 동교동 자택에 걸려 있던 이 글이 생각난다. “윤집궐중(允執厥中)”, 고전에서 전하는 핵심 정치 이념사상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친필 족자에 쓰인 글귀이기도 하다. 순 임금 역시 우 임금에게 이 命(명)을 물려주었다
人心惟危(인심유위)하고
道心惟微(도심유미)하니
惟精惟一(유정유일)하여
允執厥中(윤집궐중)하라
『인심은 위태롭고, 도덕은 미미하니, 오직 살피고 집중하여 그 가운데를 틀어잡아야 할 것이다』라는 뜻이다. 내안에 우주자연의 이치가 있으니, 즉 바로 내가 우주니까, 도를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나를 찾으라는 소리!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롭고(欲情), 도의 마음은 오직 희미하니(義理), 오로지 정밀하고 한결같게 정신 차리고 하나로 모아, 그 중정中正을 진실로 잡아야 한다.<서경(書經)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篇>는 가르침이다.
사사로운데 동요하지 말고 중이 가장 중하다는 뜻이다.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 어렵다. 말하자면 진실로(允) 집중해서(執) 그(厥) 중심을(中)을 잡아라'는 뜻이며 동양사상의 핵심이다. 이것이 우리 차문화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회자되는 중정이다. 오늘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中正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