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전원 사퇴’ 결의로 동국대 사태 해결국면 전환
 
총장과 이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는 학생대표의 생명을 건 단식투쟁과 투신 예고 등 파국으로 치닫던 동국대 사태가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12월 3일 이사회의 ‘사태의 책임을 지고 이사 전원 사퇴’라는 극적 결의와 함께 해결국면으로 급선회했다.

학생 대표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교수 및 교직원 대표의 가세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지리하게 이어지던 동국대 사태는 동국대 새 이사로 선임되었던 수불 스님(범어사 주지)이 지난 11월 30일 동국대 사태에 책임감을 갖고 이사직 포기를 전격 선언하면서 새 흐름이 시작됐다.
 
수불, 미산, 법인, 금강 스님 등 “생명 살려야” 호소 공감대

수불 스님의 이사직 포기 선언에 이어 당시 동국대 이사였던 미산 스님이 12월 1일 오전 생명을 건 단식투쟁을 하고 있던 김건중 학생을 살리기 위해 단식 정진에 들어갔다. 이어 같은 날 오후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과 대흥사 일지암 암주 법인 스님(중앙종회 의원) 등 참신한 이미지를 가진 스님들이 단식 정진에 가세하면서 일반 언론들도 동국대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한겨레, 경향 등 중앙일간지들이 학생의 생명을 살리자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보도와 사설 등을 쏟아내면서 동국대 사태는 국민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한때 '동국대 이사장'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국민적 관심 속에 12월 3일 오후 2시 동국대 이사회가 동국대 일산병원에서 열렸고, 6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 ‘이사 전원 사퇴’라는 예상 밖의 결과가 발표되었고, 동국대 팔정도 광장에서 진행되던 농성과 단식정진이 마무리되었으며, 득히 김건중, 최장훈 두 학생의 생명도 살리는 등의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결의문의 내용은 이미 알려진 대로 ▲현 이사장을 포함한 모든 임원들은 이번 사태에 책임을 통감하며, 전원 사퇴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현재 단식과 농성 중인 학생, 교수, 직원, 동문 등은 즉시 단식과 농성을 그만두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기 바라며, 만일 그러하지 아니할 경우 전원 사퇴는 무효로 한다 ▲다만, 이사 전원 사퇴로 인해 법인 이사회 운영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립학교법과 정관 규정 등에 의해서 점차적으로 새로운 임원을 선임하여 이사회를 새로 구성하고 사퇴한다 등 3개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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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늦은 밤, 이사회 논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는 미산스님. 이 자리에는 교수회 및 교직원, 학생 대표들이 함께 했다.

결의안 놓고 다양한 해석 분출…미산 스님 “진정성 여부 지켜보자” 

사퇴를 하되, 단식과 농성을 멈추지 않으면 무효로 할 것이며, 이사 전원 사퇴 결의를 했지만 법인 이사회 운영의 공백을 막기 위해 새로운 임원을 선임하면서 점차적으로 사퇴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사 전원 사퇴’에 방점이 찍힌 것인 만큼 성과로 받아들여야 하고, 향후 동국 발전을 위해 학교 주체들과 종단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동국대 사태의 시발이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총장도 물러나야 하고 3개 항 결의 사항도 ‘꼼수’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견해도 속출하고 있는 중이다.

이와 관련 지난 3일 늦은 밤, 이사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미산 스님은 한만수 교수협의회 회장, 최장훈 일반대학원총학생회 회장, 김윤길 교직원 대표 등 농성을 주도해온 교수, 교직원 등 학교 주체들과 가진 자리에서 이사회 결의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향후 학교 운영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는 ‘이사회 전원 사퇴’ 결의가 목숨을 걸고 싸워온 두 학생을 살려낸 ‘성과’라는 데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향후 동국대가 현재의 상처를 조속히 치유하고 학교 주체들이 한 마음이 되어 제2도약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에 견해를 같이 했다.

‘진정성’에 의구심을 받고 있는 이사회 결의 사항에 대해서는 이사로 회의에 참석했던 미산 스님이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진정성 여부를 지켜보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또한 이번 동국대 사태의 전말이 일반 언론에 대서특필 되면서 국민적 주시 대상이 된 동국대 이사회가 동국대 주체들과 교계가 우려하는 ‘꼼수’를 부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도 2, 3항 결의사항에 대한 우려를 일단 유보하는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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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의혹 총장엔 ‘퇴진 마땅’ ‘지나친 요구’ ‘공개사과 필요’ 엇갈려

그러나 표절 시비로 얼룩져 있는 보광 동국대 총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렸다. 미산 스님을 비롯하여 단식에 합류했던 법인, 금강 스님은 현 시점에서 총장 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적절한 요구가 아니라는 쪽에 방점을 둔 반면, 최장훈 일반대학원학생회 회장은 보광 총장의 사퇴가 없는 한 동국대 사태는 해결되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했다. 동국대 사태의 본질은 사실 이사장의 퇴진 문제보다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보광 총장의 문제가 더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한 최장훈 회장은 “투쟁과 희생은 가장 힘없는 학생들이 하고, 그로 인해 얻어진 성과와 권한은 퇴진 대상인 총장에게 돌아가는 비정상적 구조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학생들의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보광 총장의 향후 거취에 대한 학생들과 동국대 이사회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가운데, 총장의 퇴진 여부가 향후 동국대 사태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교수들은 현실적으로 총장의 퇴진을 관철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 미산 스님 등 스님들과 인식을 같이했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표절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정리가 되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라는 점을 아울러 강조했다. ‘총장이 표절 의혹에 휩싸여 있는 상태에서 교수들이 당당하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과 함께 ‘우리 교수들은 적어도 보광 총장이 문제의 논문을 철회했고, 일정기간 등재지에 논문 기고를 스스로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의 태도를 바꿔, 포괄적 형식이라도 유감(사과) 표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교수 대표들은 보광 총장이 최소한 그 정도의 입장 표명을 공개적으로 했을 때, 교수들도 학생들을 설득할 근거와 명분을 얻을 수 있으며, 교수들의 이 같은 입장을 미산 스님 등 함께 고생했던 스님들이 보광 총장에게 정확히 전달해 줄 것을 요청했다.

미산스님 “반목, 갈등 지속 땐 침몰…동국 제2도약 힘 모으자” 당부

‘이사 전원 사퇴’ 결의로 새로운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동국대 사태는 현재 보광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 문제가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고, 이미 4일(오늘) 동국대총학생회 등에서 보광 총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성명서가 발표되는 등 총장 퇴진 촉구 흐름이 가시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면 이사 퇴진’의 큰 벽을 ‘이사 전원 사퇴’라는 극적 카드로 가까스로 넘어선 동국대 사태는 ‘총장 퇴진’이라는 어쩌면 더 높은 벽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교수 대표들의 요청대로 보광 총장이 자신의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하여 포괄적 성격의 사과를 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 포괄적 사과를 할 경우 이 사과를 명분으로 교수들이 학생들을 설득해낼 수 있을지의 여부가 동국대 사태의 해결에 큰 변수로 남게 됐다.

이와 함께 조계종단으로부터의 동국대 자율성 확보라는 거대 명제의 해결도 다시금 고개를 들 전망이다. 승려 이사의 수를 전체 이사의 절반 이하로 감축하는 문제, 이사를 추천하는 종립학교관리위원회의 비대한 권한을 축소하는 문제, 사립학교법의 준수 문제, 동국대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개입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종단 최고위급 5인을 대표해 조계종 총무원장의 공개 사과 및 재발방지 약속 문제 등이 동국대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선결 과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편 지홍 스님(동국대 이사)과 함께 3일 이사회에서 ‘이사 전원 사퇴’의 결의를 이끌어내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학생회와 교수회 등 학교 주체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미산 스님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미산 스님은 이날 교수회 및 학생회 대표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동국대에 더 이상의 혼란과 반목이 거듭된다면 끝없는 추락밖에 남는 것이 없다”며 “종단은 종단대로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학교가 발전할 수 있도록 존경과 신망을 받는 스님들을 이사로 추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생은 학생대로 극한적 방식으로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견을 좁혀가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라면서 특히 교수들이 학교운영의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조정을 해나가는 역량을 발휘해주기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