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성인’ 즉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 선사의 제다법(製茶法)을 그의 법손이자 대흥사의 다맥을 이은 것으로 알려진 응송(應松) 스님이 계승했을 것인가? 아니면 두 다승의 제다법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인가?

차계의 오랜 논란거리인 초의 다맥 전수 여부를 가리는 논문이 발표됐다. 응송 스님으로부터 다맥을 전수받은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월 24일 열린 ‘응송 박영희의 삶과 차’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응송 박영희의 다법과 특징’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두 스님의 제다법을 비교 고찰했다.

그렇다면 응송 스님은 어떤 분인가? 스님은 1893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해 1911년 대흥사로 출가한 후 공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중앙학림, 혜화전문을 졸업하고 1937년 대흥사 주지로 취임, 20여년 봉직한 이와 사를 두루 겸비했다. 1919년 삼일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벌였고 만주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60년 이후 출가시절 다각 소임을 보며 보고 익혔던 대흥사의 차맥을 백화사에 머물며 연구했고, 특히 초의의 차와 선리연구에 매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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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 소장(사진)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어온 대흥사와 송광사의 초의의 제자들에게 훈습되어 이어져온, 초의의 다풍이 배어있을 제다법을 ‘대흥사의 다법’이라고 칭했다. ‘대흥사의 다법’이란 대흥사에 전해진 제다법과 탕법을 포괄하는 용어인 셈이다.

박 소장은 이른바 다맥과 관련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맥은 법맥(사자관계의 전승이 분명한)에 준하여 차 또한 전승의 확실한 계보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한국 차문화의 오랜 역사 속에서도 다맥이 전승된 사례는 없었다. 만약 법맥의 기준에서 다맥을 말한다면 1985년에 응송이 필자(박동춘)에게 준 ‘다도전수게’가 유일한 다맥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초의가 전해준 대흥사의 다법은 제다법과 탕법의 유형이 변화되지 않고 이어진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응송은 초의에 의해 완성된 다법을 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동춘 소장은 “응송이 출가한 당시(1911년) 대흥사에는 초의의 제자 범해가 열반한 지 겨우 10여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 다라서 범해의 제자인 원응은 대흥사에서 강학하며 후학을 기르고 있었고, 바로 이 원응이 응송에게 사교를 가르쳐준 법사였다는 점, 그러므로 응송의 다법은 혼란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초의의 제자들에 의해 이어진 것으로, 이는 초의로부터 연원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소장의 논문에 따르면, 응송 스님이 차의 연구에 매진한 것은 불교정화 이후인 1960년대 초반으로 짐작된다. 대흥사 반야교 아래 자신의 사저를 백화사로 명명한 후에 일체의 대외 활동을 끊고 수행과 차 연구에 몰두한 응송 스님은 수행을 하는 여가에 차를 만들고 탕법을 연구하는 한편 이에 대한 전적을 수습하고 초의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이때 정립된, 즉 뜨겁게 차를 달이는 응송 스님의 탕법은 대흥사의 유풍이었으며, 한 번의 살청과 유념, 재건의 절차를 거치는 방식인데, 특이한 것은 초벌살청에서 잠시 솥뚜껑을 덮어두었다가 차를 덖어낸다는 점이며, 이는 대흥사에 전해진 독특한 살청방법으로 여겨지며, 이렇게 만든 차의 품색(品色)은 소쇄담박(瀟灑淡泊)하고, 시원한 맛과 은은한 형색을 갖췄다는 것이다. 또한 응송의 탕법은 소박하여 예의와 절차에 구속되지 않는데 한 번 만에 차의 정수를 우려내는 일탕법(차를 넣어 일회만 우려내는 탕법)을 고수했다.

이제까지 응송에 대한 연구는 초의의 후손으로 다법을 이었다는 점과 그의 제다법 및 탕법의 특징만이 일부 알려져 왔으나, 그의 다맥을 이은 박동춘 소장이 응송의 열반 25주년을 맞아 학술논문을 통해 그의 다법 전반을 살피고, 그의 다법이 초의에게서 연원한 것임을 밝히는 것을 시도한 것이다.

박동춘 소장이 초의와 응송의 다법을 비교 고찰하여 그 연원관계를 밝힌다는 소식이 세미나 이전부터 차계에 회자된 탓인지, 이날 세미나가 열린 조계종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은 입추의 여지없이 차인들로 빼곡히 들어찼다.

“현재 유행하는 다례는 197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차의 새로운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차의 본래 가치와 의미를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국 차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초의의 다법을 근간으로 다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작금의 차문화는 다시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시점에 이 논의가 기존의 차문화에서 간과한 점을 반성하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발제를 하는 박동춘 소장의 목청에 힘이 실렸다. 자신의 스승 응송의 다법이 초의에게서 연원한다는 것을 잡문이 아닌 학술적 가치를 갖는 논문을 통해 밝히는 자리인 만큼 그의 표정에는 한 줄기 긴장감도 흘렀다.

“응송의 다법은 초의에서 연원한 것이다.”

박 소장은 자신 있게 두괄식 표현으로 자신의 견해를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범해는 원래 차에 밝았던 호의 시오(縞衣始悟, 1778~1868)의 법제자였지만 초의에게서 대승계를 받았기에 초의의 대승계 제자로 분류한다. 따라서 응송에게 사교를 가르친 원응계정(1856~1927)이 범해의 제자라는 점에서 초의의 다법은 응송에게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박 소장은 초의의 제자들의 계보를 은제자, 법제자, 대승계 제자로 분류했다. 이중에서 특히 차를 잘 만들었던 견향상훈(1801~1885)과 만휴자흔(1804~1886), 무위안인(1816~1886), 일암수홍 등이 초의의 대승계 제자라는 점, 특히 견향과 만휴는 추사의 제주 유배시절에도 차를 보냈던 초의의 제자들이라는 점, 수홍은 초의의 시자방에 머물던 사미시절부터 차에 관심을 두었던 승려라는 점, 따라서 초의의 제자 중에는 초의처럼 차에 밝은 이들이 많았다는 점, 그 중에 범해는 수편의 다시(茶詩)를 남겨 당시 대흥사의 다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는 점 등을 밝히며 초의의 다법이 범해에서 원응을 거쳐 응송에게 이어졌음을 설명했다.

이어 박 소장은 초의차의 특징을 <동다송> 등 문헌 등의 기록을 통해 정리했다. 문헌을 통해 정리해본 초의의 제다 과정은 ‘찻잎 가리기→(고온의 무쇠솥)덖음 살청→(덕은차)비비기→(비빈차)털기→(낮은 온도에서 다시)재건(再乾)→(다 만든 차를)밀실에서 (하루 동안) 잠재우기’ 등으로 정리한 박동춘 소장은 중국과 다른 초의 제다법의 특징을 ‘온돌방에서 하루를 잠재운다’는 점이라고 강조하고, 이런 초의의 제다법은 범해의 ‘초의차’라는 라는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곡우의 첫 맑은 날에
아직 황아 잎이 피지 않았네.
깨끗한 솥에 정성을 다해 덖어서
밀실에서 말렸네.
측백나무 그릇 둥글게 묶어서
대나무 껍질로 잘 포장했네.
단단히 간수하여 밖의 기운 막았으니
찻잔에 감도는 가득한 향기라.”

여러 문헌에 대흥사 승려들 가운데 차를 잘 만드는 이가 많았고, 대흥사 승려들의 차맛은 “병든 목구멍이 시원하게 뚫리는‘ 맛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초의와 호의 뿐만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차 또한 비슷한 격조를 갖춘 차였음을 근거를 제시하며 밝힌 박동춘 소장은 다도의 원리, 다도관, 제다법 등에 관한 초의의 유풍은 범해나 응송에게 이어진 대흥사 다법에 담긴 특징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어 박동춘 소장은 그의 스승 응송의 다법을 소개했다.

응송이 출가했던 시절인 1910년 대흥사의 환경은 차나무가 턱없이 부족했고, 채다를 정밀하게 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는 점을 응송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전제한 박 소장은 “따라서 당시 차를 만들 때의 찻잎은 주로 인근 마을의 아낙네들이 초파일이 지난 후 근처 산야에서 자생하는 야생차를 채취하여 가지고 오면 이를 매입하여 제다하였다”고 소개했다. 즉 좋은 차를 만들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탕법은 “먼저 무쇠로 만든 다관에 물을 끓인 후 물이 끓으면 다관에 직접 차를 넣고 조금 있다가 찻잔에 따르는 것이며,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물식힘그릇(수구)을 사용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박동춘 소장은 응송의 제다법을 ‘찻잎 마련(채다와 찻잎 선별)→솥의 온도가 높아지면→차를 덖는다(살청)→찻잎 비비기(유념)→유념한 찻잎 털기→다시 재건하기“라고 소개하며 ”이는 초의가 <동다송>에서 언급한 과정과 동일하다. 다만 초의의 <동다송>이나 범해의 ’초의차‘에는 언급한 바가 없었던 대솔을 이용하여 차를 덖어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고 소개했다. 박 소장은 또 ”뿐만 아니라 응송이 차를 덖는 방법에서 특이한 것은 바로 초벌 살청에서 솥이 뜨거워지면 찻잎을 솥에 넣은 후 잠시(약 30초 내외) 솥뚜껑을 덮었다가 차를 덖는다는 점“이라며 ”이는 초의의 제다법을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초벌 살철 때에 잠시 솥뚜껑을 덮는다는 점이 대흥사 유풍의 특징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박동춘 소장은 응송의 제다법은 초의의 제다법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응송은 초의나 범해처럼 고온의 무쇠 솥에서 차를 덖어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항간에 응송의 제다법을 놓고 증차라는 논의가 있었던 것에 대해서도 ‘응송의 제다법은 증차법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근처에서 찻잎을 구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부득이 강진이나 진도 등에서 찻잎을 운반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찻잎의 수분이 증발하여 시들시들한 찻잎에 소량의 물을 친 것을 두고 차를 덖은 것을 두고 증차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응송의 제다법은 결코 찻잎이 쪄지도록 물을 사용하는 제다법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못 박았다.

이어 박동춘 소장은 10년 동안 응송 스님과 함께 차를 만들며 배우고 본 응송의 제다법의 공정을 소개했다.  

깨끗이 무쇠 솥 준비하기→찻잎 가리기→찻잎에 물을 조금 친다(시든 찻잎의 수분조절)→무쇠 솥이 뜨겁게 달구어 지면→찻잎을 넣고(잠시, 약 30초 내외 솥뚜껑을 덮어 두었다가 다시 솥뚜껑을 열고 차를) 덖는다. (이때 대솔을 이용하여 고온에서 재빨리 찻잎을 덖어낸다. 간혹 무쇠 솥에 물을 조금 뿌리거나 찻잎에 물을 뿌려 찻잎의 수분을 조절하는 경우도 있다)→(왕골대자리) 솥에서 꺼낸 차를 비빈다(찻잎의 유념은 거품이 날 때까지 힘을 주어 비빈다)→찻잎 털기(유념한 찻잎을 하나하나 털어 뭉치지 않게 한다. 만약 덩어리가 있으면 재건할 때에 불의 온도 조절이 어렵게 되므로 하나하나 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낮은 온도에서) 재건→숙성(뜨거운 온돌방에서 하루 밤을 재운다)

박 소장은 응송의 제다법은 초의차가 그랬듯이 맑고 시원한 차 맛을 드러내며 허브향이 살아 있는 차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응송의 차 맛은 싱그러웠고 제다법은 초의의 제다법과 같으며 다만 차밭이 멀었기에 시든 찻잎의 수분을 조절하기 위해 약간의 물을 찻잎에 뿌렸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응송의 제다법은 초의로부터 연원하여 대흥사에 훈습되어온 제다법을 계승한 것이라는 박동춘 소장의 논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기로 유명한’ 한국 차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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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날 세미나에서 있었던 주요 질의응답 내용이다.

-오해는 말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초의스님의 유물을 응송 스님이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 중에 몇 점은 태평양 박물관으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유물이 있는 것으로 안다. 혹시 응송 소장 유물 중에 박 소장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가? 혹시 세간에서 회자되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 유물을 보여줄 수 있는지? 아니라면 그 유물들은 어디로 흘러갔는지 궁금하다. -김태연 씨

“유물과 관련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듣고 있다. 제가 응송 스님을 만나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조사한 것은 사실이다. 유물 중에서 불교와 관련된 전적들은 백운스님과 진우스님에게 갔다. 이것에 대한 세미나도 열렸다. 유물 중에서 <동다송>이나 <다신전> 같은 것은 일제강점기 때 응송 스님께서 잘 보전해서 우리가 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초의의 영정이 태평양으로 간 것은 유감이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삶에 있어서 공과가 있는 법이라고 본다. 초의스님이 남긴 차와 관련된 유물의 소장 여부에 대한 답변은 이렇게 말씀드리겠다. 초의 스님 관련 일부의 자료를 응송 스님께 저에게 주시면서 초의 스님에 대한 연구를 부촉하셨다. 그래서 지금 그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다. 응송 스님이 준 자료가 저의 초의 연구의 기초이다. 그 유물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몇 년 전에 화봉갤러리 전시에서 공개된 바가 있다. 또한 초의 열반 150주년인 내년에 서예박물관에서 열릴 예정인 전시회에서 다시 한 번 공개가 될 것이다.”-박동춘

-응송스님이 차에 관한 것 말고, 다른 길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알 수 있는 학회였다고 생각한다. 저는 민속학을 전공하면서 송광사, 광주에서 학회가 다 있었는데 엇갈린 주장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초의 다맥이 없다, 다른 곳으로 흘렀다는 의견이 제각각이다. 아무튼 다풍, 다법, 다맥 등의 용어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용어에 대해 일정한 정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서경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예민한 것 같다. 다법, 다풍, 다맥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이 논문에서는 다법이라고 표기했다. 맥이라고 하면 다맥이라고 하면 법맥과 같이 뚜렷한 전승의 근거를 요구하는 것 같다. 응송 스님은 다각의 소임을 1011~17년까지 맡으셨다. 17년부터 37년까지 대흥사 주지를 했을 때는 차에 집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법, 즉 제다법과 탕법은 다각 시절에 보았던 다법을 기록하고, 대부분 민멸되기는 했겠지만 초의의 제자들에 의해 전승된 다풍을 응송이 보았을 것이다. 이후 백화사에 은둔하면서 다시 그 다법을 재현하고 했을 것으로 본다. 초의, 범해, 원응, 응송은 법맥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다맥도 전승되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맥이라는 것이 법맥과 같이 그 법계가 엄격히 이어져왔는가의 문제이다. 그러나 법맥과 다맥은 다르다. 그러므로 대흥사에서는 다법이 전승되어 왔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응송은 사실상 대흥사에 전승된 제다법과 탕법을 이었다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