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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찰 수 줄고 암자 수 급증한 까닭은?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 2015-11-30 (월) 13:56

19세기 들어 사찰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고, 암자의 수는 크게 늘어났다. 이유는 무엇일까?


탁효정 박사(한국학중앙연구원)가 지난 11월 21일 ‘조선시대 불교계의 동향과 송광사의 위상’을 주제로 열린 보조사상연구원 제25차 국내학술대회에서 ‘19세기 불교계와 송광사’라는 주제의 논문을 통해 그 배경을 살폈다. 

 

“사찰잡역이 지나치게 과도하게 부과되는 등 사격을 갖출 정도로 사찰의 형편이 좋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사찰들이 전반적으로 영세화되었다. 당시 불교계에서는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강구했는데, 큰 절에서는 승려들이 계를 조직해 위급한 상황에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왕실에 줄을 대 원당을 설치함으로써 잡역을 면제받기도 했다.”

 

탁 박사는 이어 당시 전국적으로 염불만일회가 크게 늘어난 것에 주목, “사부대중들이 동참해 보다 나은 내세를 발원하는 염불의 유행은 19세기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며 “이는 불교의 저변이 훨씬 더 하층민까지 확대되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일반민들이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를 신앙했음을 보여주는 시대상”이라고 분석했다.

 


탁효정 박사가 논문을 발제하고 있다. 아래는 세미나가가 열린 법련사 대웅보전 전경

탁 박사는 이어 당시 어려운 상황 하에서도 “불교계 내부에는 구도를 향한 승려들의 선기가 여전히 살아숨쉬고 있었다”며 “한 세기를 풍미한 백파와 초의의 논쟁은 후학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20세기 초까지 삼종선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었다”고 19세기 불교계의 특징을 설명했다.

 

탁 박사는 당시 송광사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고 밝혔다. 탁 박사에 따르면, 송광사는 18세기 초에 육상궁원당의 역할이 박탈됨에 따라 상당히 힘겨운 시절을 보냈는데, 설상가상으로 1842년 대화재가 발생하여 사찰의 주요 전각들이 모두 불타는 참화까지 겪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송광사의 기봉스님은 일흔의 노구를 이끌고 상좌인 용운스님으로 하여금 중창불사를 진두지휘하게 하였고, 그 결과 14년만에 이전의 가람 면모를 회복할 수 있었다.

 

특히 수완이 뛰어났던 용운스님의 활약으로 송광사는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세 차례나 왕실원당으로 지정되는 ‘영예’를 얻었고, 20세기 초에는 기로소 원당이 설치되기도 했다.

 

탁 박사는 “송광사의 19세기는 고군분투의 시간이었다. 19세기라는 가장 어두운 암흑기를 이겨내기 위해 스님들은 위로는 왕실과 인연을 맺어 잡역을 탕감받고, 아래로는 대중들에게 염불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전하며 승보사찰의 전통을 수호하였다”고 강조했다.    

  

탁 박사의 논문에 대해 의미 있는 토론과 논평이 이어졌다.

 

19세기 염불만일회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것과 관련 탁효정 박사가 “19세기 불교계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불교의 대중화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전제하며 이를 “이 시기에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도 염불수행과 정토신앙이 매우 크게 유행하는 등 불교의 대중화가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진행되었다는 점에 주목, 불교계에서의 근대성(modernity)의 출현과 연결시킨 데 대해 박해당 교수 등 일부 학자들이 이론을 제기하는 등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김용태 교수(동국대)는 19세기는 매우 주목해 분석해볼 만한 시기라면서, 당시 승려들에게 잡역이 늘어나고 심지어 원당 등 왕실과 연관이 있는 사찰에도 잡역이 부과된 것은 사실상 조선이 국가로서의 체계가 붕괴된 데 그 배경이 있으며, 따라서 19세기 불교계의 흐름은 별도의 집중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탁효정 박사는 특히 “최근 주요 사찰에서 주최하는 학술대회에서 학자들에게 그 사찰의 입맛에 맞는 논문을 써줄 것을 요청하는 사례가 없지 않다”며 “이런 흐름은 학자들에게 부담을 줄 뿐 아니라 멀리 봐서 당해 사찰이나 불교학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 참석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이날 학술대회에는 박해당 교수(서울 과기대)가 ‘15세기 불교계의 동향과 기화에 의한 지눌사상의 계승’을, 손성필 박사(한국고전번역연구원)가 ‘조선 중기 송광사의 불서간행과 불교계의 동향’을, 이종수 교수(순천대)가 ‘18세기 불교계 동향과 송광사의 위상’을 각각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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