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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일할 사람을 고르는 법?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5-11-04 (수) 12:34

직장에 새로 들어온 “A”가 이젠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대충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굳이 말을 합니다. 떠들기 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잘 보면 그 사람의 나가는 시간도 비례하여 계산됩니다. 겸손이나 하심은 물론이고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건방지게’사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너(B)는 일을 못해!”

물론 대상되는 “B”가 그다지 일을 잘 못한다는 데는 일면 동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직장이라는 조직이 여기까지 오는데 “B”의 도움도 매우 컸습니다. 기여도 즉 공헌도가 커서 지금 일을 조금 잘 못해도 거기에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물건조차도 다 거기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 만물이 다 그런 이유가 있어서 여기에 있는데 그 이유를 알 때까지는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A”는 그 이유를 알기 전에 떠들기 시작합니다.

 

굳이 안 해도 이미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말을 꼭 합니다. 딱히 악의적인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결국 아는 걸 과시해야 직성이 풀리나 봅니다. 그래서 튀나 봅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한명씩 적을 만들어 나갑니다. 아니, 그 순간 모두의 공적이 되어 버립니다. 언젠가 저 사람이 날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결국 그의 목적은 무의식적이라도 “대장”이 되고 싶은 것뿐입니다. 독불장군이며 그 이유는 지독한 열등감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걸 정말 몰랐을까요? 자기는 그게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20년 넘게 살면서 그걸 몰랐다는 건 거짓말일 따름입니다. 정확히는 몰라도 분명 조금은 눈치 채고 있었을 겁니다.

 

상사나 누군가가 그 점을 고치라고 하면 바로 분노합니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매우 불쾌해요” “이런 데서는 일 못해요” 등 온갖 불만을 터뜨립니다. 최소한의 예의나 위아래조차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말을 다 끊어버리고 자기 이야기를 좀 더 큰 목소리로 반복합니다. 경청이나 배려는 없고 오직 자기뿐입니다. 나쁜 의미로서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주위사람들은 그저 “똥이 더러워서” 바라봐야 합니다.

 

“아무튼 그러지 않아줬으면 합니다!”라고 한 번 더 말하면 얼마안가 “저 그만둘래요.라고 합니다. 분노조절이 안됩니다. 비록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도 “A”의 표정은 붉어졌고 결국 감정에 사로잡혀 ‘욱’해서는 안 될 말을 결국 해버립니다.

 

흥미로운 것은 남들에게 불편이나 피해를 주는 그런 말은 안하겠다고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물론 노력하겠다는 말조차 하려고 하지 안 해도, 화나서 ‘그만두겠다’고 한 말은 기어코 되돌리지 않고 지키려고 고집합니다. 좀 잘못되어도 참회하고 바로 잡으면 되는데 반성조차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몇 명 안 되는 작은 조직에서 같이 일할 때는 ‘위기상황’ 대응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조금이라도 평온할 때 직장동료들을 알아두는 게 중요합니다. 그전에 진짜 ‘동료’인 것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나 봅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화’를 내게 하기도 합니다. 긴 호흡을 가지고 봐야하기에 부득이 이런 ‘시험’도 필요하나 봅니다.

 

이야기를 한시간해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사람과는 일을 못합니다. 받아들임이 없기에 변화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국 스스로의 감정을 못이겨서 화를 내서 ‘조화’를 깨고 ‘깽판’을 부립니다. 막나가다가 막장을 연출하고 결국 직장에서 나가게 됩니다.


 

제비집. 사진=하도겸

 

개인적인 도반으로서 모두가 스승이니 ‘역행보살’로 삼기는 좋으나 일반 직장인들과 같이 일하기에는 조직에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함부로 사람을 자르나요? 그래서 ‘이이제이’로 다른 직원들의 빌을 빌어 시도를 해봅니다. 역시나, 불감청 고소원입니다. 내보내고 싶은데 스스로 화를 내며 나가준다니 이보다 고마울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을 응용하면 여러 가지가 가능합니다.

 

“이달 말에 나가요! 해고입니다.”라고 한 달 전에 통보하는 것은 하수입니다. “그래도 이번 달 말까지는 일해주세요”라고 부탁드리는 것은 중수입니다. 정말 고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쌤은 다 좋은데 그것 하나 고치면 정말 좋겠어요. 다른 직원들도 동감이니, 그거 하나 고쳐주세요.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이 말 하나에 어차피 떠나야 할 “A”은 분노조절을 못해서 ‘퇴직’을 선택합니다. “A”이라는 유형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이런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내가 좀 너무했나?”

이렇게 같이 일하는 사람을 고르는 법이란 결국 일하기 어려운 사람을 내보내는 법으로 악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침 이슬에 맺힌 청정수라도 “양이 먹으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됩니다.” 어떻게 사용할까는 여러분의 몫이고 ‘업’이 될 따름입니다. 

 

아울러 이런 방법은 결혼, 동업 등 어디에서든 통용됩니다. 인간의 그물망에서는 다 사용가능한 방법일 듯합니다. 차회를 할 때도 가끔 이런 말을 해봅니다. 조언을 받아들이면 도반이 될 것이고, 박차고 나가거나 조용히 나간 후 불만을 떠들면 계속 그 자리에서 맴 돌 사람입니다.

 

너무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며 나쁜 방법이라구요? 꼭 그렇지는 아닙니다. 아니 ‘안목’의 문제이지 ‘의도’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세상은 모두 변합니다. 오직 자기만 변하지 않으려는 것이 문제일 따름입니다. 남들은 다 아는 걸 아는 체하지 말고 조용히 묵언하는 예의만 배우면 됩니다. 최소한의 배려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것만 바꾸면 됩니다. 아니 고치겠다고 말만해도 많이 좋아진 것입니다.

 

“네 노력하겠습니다.” 말만이라도 하는 것은 쉽다구요?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체면’도 차리고 ‘명분’도 사라지게 됩니다. 노력하겠다는 데 어떻게 할 수 있겠는지요? 하지만, “A”은 아무도 안 챙겨주는 스스로의 ‘체면’이 더 커서 절대 포기 못합니다. 그래서 자주 문제가 되는 거죠. 열등감이 된 상처가 더 벌어지는 ‘아픔’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만 그렇게 하고 안 고치면 어떻게 하냐구요? 그땐 다시 ‘조언’을 하면 되겠죠. 계속 반복되면 어떻게 하냐구요? 그러면 어떻습니까? 그때는 ‘연민’과 ‘배려’로 지켜봐주시면 됩니다. 뭘 그리 ‘남’한테 많은 걸 바라시나요? 그래도 최소한의 분노 조절은 돼서 더 큰 ‘위기’는 막을 수 있잖습니까? 속된 말로 “똥오줌”은 알고 “위아래”는 알지 않겠는지요?

 

분노의 폐해가 이렇게 큽니다. 그래서 ‘인욕’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화’를 내는 것이 재앙이 되는 ‘화’의 근원인 까닭입니다. 모두 제 이야기이며 저를 향한 잠언일 따름입니다.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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