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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 소설가 오스트리아서 불교 강연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 2015-09-09 (수) 21:30

소설가 정찬주(63세)씨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KKH(추기경문화회관;Kardinal Koenig Haus) 초청연사로 초대받아 오스트리아인과 교포들에게 오는 9월 20일 오후 3시부터 90분 동안 강연을 한다. 강연 제목은 ‘한국인에게 불교란 무엇인가?’.

  

가톨릭 국가인 오스트리아 지식인층에서 불교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에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는 정찬주 소설가는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의 심성과 불교’ 및 ‘독일문화권과 불교의 인연’ 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정찬주 소설가는 특히 ‘독일 불교문학의 아버지’ 쇼펜하우어에게 불교적 영향을 받은 두 제자 니체와 바그너도 언급할 예정이다.

 

정찬주 소설가(사진)는 “바그너의 오페라 <승리자>는 불교경전인 <법구경> 중에서 ‘자기를 극복한 자가 진정한 승리자’라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착안했다는 것과 <승리자>가 불경 속의 남녀 간의 사랑을 빌려와 불교의 윤회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저자의 불교문학관과 저자가 젊은 시절에 영향 받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에 대한 이야기도 질의응답 시간에 청중들과 대화할 예정이다. 

  

정찬주 소설가는 또 한국을 두 번이나 내한했으며, 한국인의 인간적인 정(情)을 주제로 심포니를 작곡 중인 오스트리아 작곡가 헤르바르트 빌리(60세, Herbert Willi) 씨와 그의 작업실이 있는 몬타폰으로 가서 2일 동안 함께 숙박하면서 동서문화에 대해 시간제약 없이 긴 대담을 나눌 예정이다.

 

1956년 1월 7일 오스트리아 포랄베르크에서 출생한 작곡가 헤르바르트 빌리(Herbert Willi)는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스쿨뮤직과 신학을 전공했고, 철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오스트리아 공화국으로부터‘작곡가를 위한 국가장학금’ (1985), ‘젊은 작곡가를 위한 국가상’(1986), ‘오페라 작곡가를 위한 국가상’(1989), ‘학문과 예술을 위한 명예 십자훈장’(1997), ‘포랄베르크 주정부 공로훈장’(1998) 등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또한 잘츠부르크의 축제와 카메라타 아카데미카의 전속 작곡가로 활동하는 등 오스트리아와 일본에서 열리는 유명 페스티벌의 전임 작곡가로 임명돼 지금껏 국제적인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과 인연을 맺었던 작곡가 헤르바르트 빌리 씨는 우리나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아이레네 콘서트 시리즈 Ⅳ-봄의 제전>에서 자신의 작품,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를 소개한 바 있다.

 

정찬주 소설가의 오스트리아 초청 강연은 3년 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본사를 둔 클래식뮤직공연기획사인 IMK 대표인 Sonja Stenindl- Kwon (한국명: 권숙녀 65세) 여사로부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불교를 주제로 강연할 수 없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권 대표는 기획사 일로 한국에 드나들다가 공항 서점에서 우연히 작가(정찬주)의 불교관련 소설과 산문집들을 보고 애독자가 된 분인데, 남편은 오스트리아인 의사이고 종교는 가톨릭 신자이다.

 

안동 출신인 권 대표는 파독간호사 1호로 독일에 갔다가, 직업을 자신이 좋아하는 클래식뮤직매니지먼트로 바꾸어 성공한 입지적인 인물이다. IMK의 지부는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있다.
 
권 대표에 따르면, 현재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지식인층에서는 불교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고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권 대표는 이후 I비엔나에 있는 추기경문화회관(KKH) 관계자와 협의하여 강연주제와 시기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추기경문화회관은 각종 문화행사가 연중 끊이지 않고 열리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다음은 정찬주 소설가의 오스트리아 강연 원고다.

 

                      
한국인에게 불교란 무엇인가?
What is Buddhism for Korean?


저는 한국에서 온 소설가 정찬주입니다.
바쁘신 데도 이렇게 찾아와 주시고 환영해주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강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케이케이에이치(추기경문화회관; Kardinal Koenig Haus) 관계자님과 섭외를 해주신 아이엠케이(IMK) 권숙녀(Sonja Steindl-Kwon) 대표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지리적으로는 멀지만 심정적으로는 가까운 나라라고 생각해왔습니다. 한국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 바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신인 프란체스카 여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들은 현명하고 검소했던 프란체스카 여사를 아직도 존경하며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여기 계신 여러분께 전합니다. 


오늘 제가 강연할 주제는 ‘한국인에게 불교란 무엇인가?’입니다. 먼저, 한국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께서 오늘의 강연 내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한국의 옛 왕국 고조선


오스트리아도 옛 왕국의 건국설화가 있을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역사는 B.C 2333년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런 사실은 한국의 역사서로서 1천 년 전에 발간한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삼국유사>는 일연 스님의 저서입니다. 저자인 스님은 고조선 건국을  다음과 같이 설화 형태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황제(天帝)인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세상의 도장(天符印) 세 개를 받은 뒤 3천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성스러운 산(太白山) 정상의 제사를 지내는 나무(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신의 도시(神市)를 엽니다. 환웅은 바람의 우두머리(風伯)와 비의 우두머리(雨師), 그리고 구름의 우두머리(雲師)에게 인간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서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이때 같은 동굴 속에 살던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가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환웅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1백일 동안 먹으면서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곰은 환웅이 시키는 대로 하여 21일 만에 여자가 되었고,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여자가 된 곰(熊女)이 다시 환웅에게 아이를 갖고 싶다고 빌자 환웅이 잠시 사람 몸으로 변해 아이를 갖게 해줍니다. 이 아들이 바로 제정일치시대(祭政一致時代)의 고조선을 다스리는 단군왕검(단군: 제사장, 왕검; 통치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고조선은 한국역사의 뿌리가 됩니다.  5천년의 한국역사가 시작합니다.


일연스님은 왜 고조선 역사를 실화로 쓰지 않고 설화로 기록했을까요? 일연스님이 살았던 당시는 대제국 중국의 원나라가 조그만 나라인 한국의 고려국 주권을 사사건건 간섭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므로 일연스님은 강대국 중국을 의식하여 고조선 건국을 설화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역사의 뿌리를 밝히는 것은 한국의 정신을 일깨우는 일이므로 중국이 견제하는 일 중에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황제인 환인의 아들 환웅은 하늘을 숭배하는 강력한 부족국가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곰과 호랑이는 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이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의 아들과  곰이 결혼하여 사람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강력한 부족과 작은 부족이 결합했다는 상징일 것입니다. 같은 지역에 살았던 호랑이를 숭배하는 부족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겠지요. 곰은 인내와 덕을 상징하고 호랑이는 용맹을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한국인들은 곰을 숭상했던 부족 후예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감사하다’를 흔히 ‘고맙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 역시 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신은 존경스러운 곰과 같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감사하다’보다 ‘고맙다’라는 말이 훨씬 더 상대방을 공경하는 말이지요.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의 침략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한국을 점령해야만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단 한 번도 침략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억울하더라도 곰처럼 인내하면서 평화를 사랑할 뿐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한국은 잦은 침략에도 어느 강대국 문화에 흡수당하거나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한국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한국에는 한국인만 사용하는 말이 있고 아주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인 한글이 있습니다. 중국이 한국에 외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는 중국 문자를 사용했고,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여 지배할 때는 일본 문자를 사용했지만 오늘날의 모든 한국인들은 5백 년 전에 조선시대의 세종대왕과 신미스님이 만든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모국어인 한글로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누구보다도 한글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동기로 한글창제의 비밀을 밝힌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2. 한국인들은 왜 불교를 좋아하는가?


불교는 B.C 5세기경에 인도에서 발생한 종교입니다. 교주는 붓다이고 교리는 붓다가 깨달은 진리입니다. 불교는 생로병사를 하는 삶이 고통이라는 데서 출발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통의 원인을 스스로 제거해야 합니다. 불교에서의 구원과 행복은 그 방법밖에는 달리 없습니다. 내가 나를 구원하는 것이지, 나 아닌 신이나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입장입니다. 불교는 신본주의(神本主義)의 종교가 아니라 인본주의(人本主義)의 종교입니다. 불교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지키고자 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세상의 계급사회를 부정하고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가르침을 폈습니다.


붓다가 살았던 당시의 초기불교는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최상의 목적이었습니다.  붓다가 열반한 이후에 나타난 대승불교는 진리를 구한 뒤(上求菩提) 세상의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것(下化衆生)을 목적으로 합니다. 대승불교는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해지는 것을 이상(理想)으로 삼습니다. 대승불교는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진정한 기도가 됩니다.



그 근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소멸하므로 이것이 소멸한다’는 상호관계적인 붓다의 논리입니다. 내가 없으면 꽃 한 송이도, 구름도, 별도 없는 것이 됩니다. 해와 바람과 비가 없으면 나도 사라지게 됩니다. 예를 들자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와 잎과 꽃이라는 것이 붓다의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행복해지면 나도 행복해지고, 남이 불행해지면 나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지요.


한국의 불교전래설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방의 고대국가였던 고구려 소수림왕 2년(A.D 372)에 중국으로부터 국가 간에 외교적으로 불교를 받아들였다는 학설입니다. 또 하나는 남인도 아유타국의 허황후가 A.D 48년에 신천지를 찾아나선 끝에  남방의 고대국가였던 가야국에 불교를 전래했다는 설입니다. 어쨌든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기간은 1600년이 넘습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뒤 왕실과 민간사회에 빠르게 전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작가인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첫째, 투쟁보다는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불교라는 옷이 잘 맞았습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의 한국에는 원시신앙과 도교와 유교가 미미하게 있었습니다. 즉 동물을 숭배하는 토템과 산신의 존재를 믿는 원시신앙, 북두칠성을 보고 기도하는 도교, 공자의 가르침인 유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것들과 갈등하지 않고 다 포용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절에 가면 도교의 흔적인 칠성각이 있고, 산신을 봉안한 산신각이 있고, 유교의 선비들이 남긴 시문(詩文)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의 자비란 상대와 하나가 되는 일원론의 사랑입니다. 결코 나와 남을 구분하여 베푸는 이원론의 사랑이 아닙니다. 불교의 철학적 깊이와 위대함은 바로 이러한  허공 같고 바다와 같은 일원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리와 갈등이 아니라 통합과 융합이 불교의 특성인 것입니다.


둘째, 인내심이 많은 한국인에게 불교라는 옷이 잘 맞았습니다. 불교의 시간관은 현실만 있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삶은 지극히 짧은 순간일 뿐입니다. 이러한 불교의 시간관은  한국인의 느긋한 성품과 잘 들어맞았습니다. 한국인은 어른이 죽었을 때 ‘죽었다’ 하지 않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즉, 오늘 이 지점에서 내일의 어느 지점으로 갔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우주관도 태양계만 있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태양계와 하늘이 있습니다. 붓다도 여러 하늘 중에 하나인 도솔천(兜率天)에서 호명 보살(Bodhisattva)로 살다가 인간 스스로 번뇌를 소멸한 ‘완전한 행복’을 깨닫도록 스승이 되기 위해 인간세상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과거와 미래를 믿으므로 현재의 고난과 역경에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잘 극복해왔습니다. 결코 좌절하지 않는 생명력의 유전인자를 갖게 된 것입니다. 불교는 인욕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선행을 쌓으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행복을 위한 저축이 되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누구도 인과(因果)의 법칙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누구나 공평할 뿐 특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선한 씨앗을 뿌리면 선한 열매를 거두고, 악한 씨앗을 뿌리면 악한 열매를 거둡니다. 한국인의 속담 중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도 말이 있습니다만 이것도 역시 불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불교의 <법화경> 중에는 이런 가르침도 있습니다.


과거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그것은 오늘 받는 이것이요,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그것은 오늘 짓는 이것이라네.


셋째, 한국의 문화재 중 80%는 불교가 남긴 유산입니다. 한국문화와 한국사상을 말하면서 불교를 빼놓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종교와 정치를 철저하게 분리하는 한국정부가 불교문화의 보존과 관리를 위해 지원하는 것은 불교라는 종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사상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한 국가정책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국인에게 불교란 무엇인가?’를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이와 같이 살펴보기만 해도 한국인에게 불교란 종교 이상의 무엇입니다. 불교는 한국인의 피 속에 흐르는 피톨이 돼버린 듯합니다.


현재 한국은 다종교 국가입니다. 종교백화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이슬람교 등의 교인들이 활발하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의 가장 큰 소원은 남북통일입니다만, 남북이 통일된 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종교 간의 갈등을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인의 저력으로 볼 때 그런 비극은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B.C 2세기경 인도의 아소카대왕은 불교에 귀의하여 정복자의 칼을 버리고 불교의 진리를 전하는 승려(傳法師)들을 로마와 남인도, 스리랑카, 동남아에 보낸 일이 있습니다. 불교의 진리로 세상의 평화를 꿈꾸었던 것입니다. 아소카대왕은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위한 정책을 폈습니다. 인도 전역에 동물병원을 짓게 하였던 것도 그의 정책 중에 하나였습니다. 동물의 생명도 사람과 같이 존엄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B.C 2세기경이지만 아소카대왕의 리더십은 21세기를 사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존엄성을 성찰하고 나와 한 몸인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의무이자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3. 저는 왜 불교문학을 하는가?


한국의 불교문학은 한국의 고대국가인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합니다. 7세기 중엽부터 10세기 초반까지 불교를 소재로 한 시(詩)가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즉 10세기 초반부터 14세기 후반까지도 불교문학은 풍성하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불교문학은 7세기 중엽부터 14세기 후반까지 한국의 중심부 문학이었습니다. 이후 조선시대 5백 년 동안 불교문학은 유교문학과 쌍벽을 이루며 발전했습니다. 불교문학이 한국예술의 중심부에서 변두리로 밀려난 것은 서구문학이 밀려들어온 근현대의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불교문학 혹은 불교예술이 한국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사상이기 때문입니다. 근현대를 맞이하여 한국의 불교문학이 한국문학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이 외국의 불교문학이 한국에 소개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에게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인도의 대문호 간디의 시와 독일의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장편소설 <싯다르타> 등이 그 예입니다.


불교에 심취했던 저는 붓다에 관한 여러 전기나 소설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는 저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헤세의 <싯다르타>는 붓다의 일생 중에 반만 그린 소설입니다. 소설 <싯다르타>는 카필라왕국의 왕자인 싯다르타가 출가하여 진리를 깨달은 자인 붓다가 되기 전까지만 다룹니다. 인간 싯다르타의 고뇌와 사랑을 그린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감동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청년 싯다르타는 우리들과 같이 고뇌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헤세로부터 아무리 뛰어난 성인이라도 작가는 인간을 이야기해야만 독자들에게 공감을 더 얻을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연구한 저의 스승 홍기삼 선생님에게 쇼펜하우어는 ‘독일 불교문학의 아버지’라고 독일문단에서 평가받고 있다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쇼펜하우어에게 불교적 영향을 받은 두 제자가 있는데 니체와 바그너입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대본 <승리자(Die Sieger)>는 불교가극입니다. <승리자>는 불교의 <법구경>에서 착안하여 지은 제목입니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자는 모든 승리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이다.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은 전장에서 수천의 적을 무찌름보다 어렵다.’


바그너의 <승리자>의 내용도 불교의 경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천민의 딸이자 여주인공인 프라그리티는 붓다의 제자인 아난다의 외모에 반해서 에로스적인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붓다에게 ‘전생에 브라만의 딸이었던 프라그리티가 천민의 추장 아들이 사랑을 고백했을 때 그를 조롱하며 거절한 과보(果報)로 금생에는 천민의 딸로 태어나 사랑의 고통을 받고 있다’라는 설법을 듣고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뒤 아난다와 정신적으로만 사랑하는 진리의 자매(姉妹)가 된다는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가극의 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를 극복한 아가페적인 사랑입니다.


바그너는 부인 마틸데 베젠동크(Mathilde Wesendonk)에게 보낸 편지에 ‘세계가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현상은 ’세계정복자(Welteroberer)'가 아니라 ‘자기극복을 통해서 외계를 극복한 자(Wetuberwinder)'가 중요한 것이다.’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는 바그너가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강조하는 불교의 교리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국의 고승을 소재로 한 소설을 많이 써왔습니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덕목과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의 일환이었습니다. 진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수행했던 성철스님 일대기인 <산은 산 물은 물>, 그리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추구했던 법정스님의 일대기 <소설 무소유>가 그것입니다.


현재는 한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일본해군과 싸워서 23전 23승을 한, 그래서 일본의 어느 장군이 군신(軍神)이라고 존경했던 이순신의 이야기를 <이순신의 7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오스트리아와 한국 사이에서 경계인(境界人)으로 살았던 프란체스카 여사의 삶과 사랑이 무엇이었는지를 규명해보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소설을 대본으로 한 가극이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공연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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