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서 ‘불교철학’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미붓아카데미의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 강좌가 지난 주 휴가철 휴강을 마치고 오는 8월 14일부터 다시 재개된다.
 
8월 14일과 21일, 28일 열리는 세 번의 강좌에서는 불교학의 미래를 이끌어갈 소장학자들(박창환, 김재권, 배경아)이 차례로 나서 불교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아비달마-경량부의 인식존재론’와 ‘초기유식의 인식론’, 그리고 다르마끼르띠(법칭)의 언어철학을 중심으로 ‘인도불교의 인식과 언어’를 살핀다.

이 세 강좌는 ‘불교가 원래 매우 철학적인 종교’, 즉 불교에서 있어서 철학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하는 강좌라고 할 수 있다. 미붓아카데미의 ‘21세기, 불교를 철학하다’ 프로젝트의 주제 명칭을 정하게 한 핵심적인, 그리고 불교철학의 정수를 만끽하게 하는 강좌가 바로 이 세 강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 분의 강사 모두 해외(미국,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선진 학문적 기술을 연마한 학자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따라서 이번 세 강좌야 말로 불교 인식론의 흐름을 ‘한 방에 꿸 수 있는’ 매우 요긴한 강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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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로 나선 세 분의 젊은 학자들이 한국불교의 미래라는 것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마치 동구(洞口)밖 고목이 대대로 그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거목으로 자라나는 것처럼 소장학자들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과 기대가 소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 강좌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 불교에서의 인식론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불교에서의 인식론은 ‘안이비설신의’라는 인식주관과 그것에 각각 대응하는 ‘색성향미촉법’의 객관에서 제시되는 인식의 여섯 영역에 대한 고찰을 다룬 ‘원시불교 인식론’부터 이를 조금씩 발전시킨 ‘아비달마 인식론’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초기 대승불교의 인식론은 나가르주나(용수)가 설한 인식론을 전개하는 가운데 주로 공(空)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룬다. 인식론과 함께 늘 등장하는 ‘존재론’에서는 연기(緣起)의 문제, 나아가 무상(無常)의 문제로 전개되지만, 인식론에서는 인식주관과 객관과의 대응상즉(相卽, 緣起)에서 공(空)으로 전개된다.

이후 중기 대승불교의 인식론은 바수반두(세친)의 유명한 유식(唯識)설로 전개되고, 후기 대승불교의 인식론은 불교사상사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 즉 다르마끼르띠의 직접지각과 추론 등이 등장한다.  

이 세 소장학자는 불교철학의 정수에 해당하는 아비달마-경량부와 초기유식, 후기유식의 다르마끼르띠에 이르기까지의 복잡다양한 인식론의 세계를 항해하게 된다. 그러나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작업이지만, 세 소장학자는 그것을 이번 강좌를 통해 해내겠다고 의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8월 14일, 제일 먼저 강사로 등장하는 박창환 교수(금강대, 불교문화연구소 소장)는 자타가 공인하는 불교학계의 실력자다. 서울대와 버클리에서 공부한 그는 소장학자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전공하는 경량부와 초기 유식분야에서 최고의 학자로 부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교수는 붓다가 입멸한 후 400년 초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갈라져 나온 파(派), 경량부의 인식존재론을 강의한다. 경량부는 설일체유부가 논서(論書)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견해를 전개하고 있는 것과 달리 경(經)을 인식의 근원으로 하고 있어, 경량부(經量部)라고 부른다. 경량부는 말 그대로 “경을 양으로 하는 부”라는 뜻으로 경전을 그 사상적 근거로 삼는다는 의미이고, 이는 설일체유부가 논서를 중시한 것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있다고 설하는 설일체유부에 반해 경량부는 인간의 인식은 외계 대상이 우리의 인식 상에 표상화된 것이라 말한다. 곧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인식했다는 것은 외계대상의 형상이 우리 인식상에 표상되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량부의 인식론은 후대 대승불교의 유식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식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강좌가 14일 진행되는 박창환 교수의 ‘아비달마-경량부 인식존재론’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교수에 이어 8월 21일 진행되는 김재권 교수(능인불교대학원대)는 일본 류코쿠(龍谷)대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불교석학인 카추라 교수에게 사사한 실력자이다. 김 교수가 강의할 ‘초기유식의 인식론’은 유식을 이해하는 데 매우 요긴한 기회가 될 것이다. 어렵다는 유식, 불교공부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그러나 좀처럼 개념이 잘 잡히지 않는 유식에 대해 김재권 교수는 쉽고도 재미있게 유식의 전반을 ‘난해’라는 수렁에서 건져내줄 것이다.

김 교수에 이어 세 번째 강좌에는 역시 류코쿠대에서 카추라 교수에게 사사한 배경아 교수(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가 나선다. 배 박사가 다룰 분야는 ‘다르마끼르띠(Dharmakrīti,600~660년경, 한자 이름은 법칭法稱임)의 언어철학’ 부분이다. 배 교수는 다르마끼르띠를 통해 ‘인도불교의 인식과 언어’에 대해 조명할 예정이다.

다르마끼르띠는 현재 유럽·미국·일본에서는 학회가 구성되어 연구될 정도로 불교사상사에서 큰 비중을 갖는 인물이다. 오늘날, 고도의 논증적 사고인 후기 불교인식논리학과 인도와 티베트 불교를 이해하는 데 다르마끼르띠의 사상은 관건에 해당된다. 7세기 이후 인도 철학사 연구는 다르마끼르띠 사상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은 심대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다르마끼르띠의 사상이 붓다 이후 특히 2세기 이후 논리학적 사유로 심화된 인도 불교사상의 정점이라면, 7세기 동아시아 불교사상의 정점으로 원효(元曉, 617~686)의 사상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원효 이후 동아시아에서는 언어와 논리를 부정하는 선불교적 경향으로 급격히 진화 함으로써 점차 불교사상은 쇠퇴하며, 이후 불교는 직관적 수행 및 기복신앙으로 경도되어버렸다. 바로 이 때문에 다르마끼르띠, 또는 원효에서 정점을 형성하는 전성기 불교논리인식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르마끼르띠가 활동하던 7세기 전반의 인도는 ‘육파(여섯 학파) 철학’과 같은 비불교적 사상들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다르마끼르띠가 인도 육파의 하나인 ‘미망사’의 저명한 학자 쿠마릴라Kumarila와 벌인 논쟁에 관한 신화적인 이야기는 다르마끼르띠가 어떤 식으로 공부하고 활약했는지 잘 알게 해준다. 당시 실체론적인 사유가 지배하고 있었던 7세기 인도에서 다르마끼르띠는 불교인식논리학을 통해 이러한 사유체계를 혁파한 것이다.

다르마끼르띠의 사상은 무아론으로 집약되며, 이 과정에서 그는 대승불교의 기초를 확립한 나가르주나(용수, 150~250년께)의 무자성, 공(空)사상과 바수반두(세친, 320∼400년께)의 유식(唯識)사상을 흡수하고, 특히 바수반두의 4대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디그나가(Dignāga,진나陳那, 480-540년경)가 세운 불교논리학을 받아들여 방대한 불교인식론의 사유체계를 완성했다. 다르마끼르띠는 모두 일곱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중 디그나가 사상의 주석서인 <프라마나바르티카>는 그의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

다르마끼르띠는 말한다. “인간의 모든 진정한 목적 성취에는 ‘바른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이 바른 인식의 기저에는 인식논리학 이전의 문제, 즉 개념구성을 떠난 인식이자 지각적 체험의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이것이 바로 무아견(無我見)이자 공견(空見)이며, 이를 통해 논증적 진술의 중요성을 자각할 수 있다.

박창환, 김재권, 배경아. 이 세 소장 불교학자의 강좌가 마무리되면 곧바로 이석재 교수(서울대)의 ‘버클리-흄과 무아론(로크-버클리-흄)’(9월 4일)을 시작으로 염승준 교수(원광대)의 ‘칸트의 초월형이상학과 유식불교’(9월 11일), 박찬국 교수(서울대)의 ‘니체의 초인-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9월 18일), 김희헌 교수(성공회대)의 ‘화이트헤드 과정철학과 연기연생법’(10월 2일), 윤희조 교수(서울불교대학원대)의 ‘불교의 언어철학-비트겐슈타인을 중심으로’(10월 9일), 강신환 교수(이화여대)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불교의 다원주의’(10월 16일), 안환기 박사(서울대)의 ‘라캉에 대한 불교적 독법’(10월 23일)이 이어진다.

열거한 강좌의 제목에서 보듯, 아비달마-경량부와 초기 및 후기 유식, 불교인식(존재)론에 대한 이해가 후속 서양 철학자들이 탐구했던 불교철학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신을 지치게 하는 이 늦더위! 세 소장 불교학자가 일으키는 강남발 ‘불교철학 열풍’으로 말끔하게 씻어내시기를 권한다.  

수강신청: 정하중(010-6742-2151), 김현진(010-8770-5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