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희정 기자
chammam79@hanmail.net 2015-07-28 (화) 09:16‘카톡!’
23일 오전 6시 33분. 어김없이 새벽녘 카카오톡 알람이 울렸다. 사부대중 41명이 포함한 ‘카톡방’에서였다. 필자는 언제나 그렇듯 태고종 열린선원의 법현 스님이었다.
이날 스님은 카톡방에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란 책에 대한 해석을 올렸다. 스마트폰 유저라면 어렵지 않게 받아볼 수 있는 현대화된 법문이었다.
2005년 6월부터 서울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에서 ‘저잣거리 포교’를 전개해 온 열린선원장 법현 스님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교에도 적극 뛰어들었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 사부대중과 직접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스님의 SNS 포교를 향한 열정은 어느 정도일까. 갈현동 열린선원을 찾아가 그 내용을 전해 들었다.
“참가한 단체 카톡방만 80개예요. 밴드만 30개죠. 카카오스토리도 하는데 친구가 1천 2명인데 더 이상 받을 수가 없데요. 이에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자 콘텐츠를 모두 공개해 놨어요. 하루 한 개씩 올린 스토리가 어느덧 2천5백 개를 넘었네요. 이외에도 불교방송을 통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있죠.”
재래시장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저잣거리 포교를 해 온 스님이 SNS를 통해 매일 5~6천명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왜일까.
“처음에는 중요성을 몰랐죠. 4년 전 지방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제 글을 옮겨다 나르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결심했어요. 이왕 하는 것 SNS를 통해 매일 신속하게 법회를 보겠다고요. 그런 지 어느덧 3년 반이 넘었어요.”
스님은 ‘쉽고 유익하고 재미있는 불교’를 표방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간략한 문장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전해왔다. 선사의 말씀을 게송으로, 스님의 시나 다른 이들의 글을 인용해 간략한 해설을 다는 방식이다.
누군가로부터 ‘수행자가 그런 짓을 하느냐’는 지적도 받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사별, 부부간의 이혼, 자녀와의 불화, 직장 동료 간의 갈등 등 여러 어려움을 겪는 대중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에 매일 4시 30분에 기상해 5시에 예불을 본 뒤 6시부터 SNS포교를 준비․시작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스님은 SNS를 통해 메르스와 같은 사회적 이슈나 자신의 활동을 직접 알릴뿐 아니라 사부대중의 댓글과 답변을 통해 여론을 확인하는 데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SNS의 잘못된 정보나 사생활 침해 정보, 비방 등에 대해서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건강하게 가동되게 하려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달 메르스와 관련해 김익중 교수의 예방 수칙이란 글이 SNS를 통해 퍼졌어요. 그 김 교수가 동국대 의대 미생물학과 교수인데 서울대 의대 교수라고 써져 있던 거 아세요? 그 글은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 전 이미 제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과 같은 글이에요. 우리는 김 교수의 학교가 왜 갑자기 서울대로 바뀌었는가를 주목해야 해요. 누군가의 의도로, 혹은 실수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게 SNS의 문제이지요. 이런 부작용 때문에 상대방의 좋지 않은 부분을 드러내는 사실이나 정확하지 않고 경험하지 않은 사항은 절대로 쓰지 않아요.”
이처럼 부처님 말씀을 온라인을 통해 쉬운 언어로 전해 온 법현 스님의 오프라인의 모습은 어떨까.
법현 스님이 역촌중앙시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과 인연을 쌓은 지 올해로 벌써 10년째다. 스님이 선원장으로 있는 열린선원은 도심 포교의 어려움에 대한 우려를 딛고 지난 6월 5일 10주년을 맞았다. 스님은 6월 6일 이를 기념하는 법회를 열기로 했으나 메르스 확산으로 인해 오는 9월 12일 오후 2시로 연기한 상태다.
스님은 10년 전 산중이 아닌 재래시장 한 가운데 선원 문을 연 이래 “‘원래 IMF’로 월세 신세를 면하진 못했지만, 지금처럼 부처님 가르침에 의한 정법 수행과 전법이 진행되는 공간이라면 월세든, 전세든, 독립공간이든 상관없다”는 각오로 어려움을 헤쳐 왔다.
스님은 앞서 10년 전 열린선원 개원 후 불교에 관심이 없던 상인과 손님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불서를 나눠주며 지역 주민들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노력을 지속해왔다. 재래시장 활성화 천도재를 지내는 등으로 지역민에게 위안을 주며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불교를 서서히 자리 잡게 했다.
이와 함께 법현 스님은 오토바이와 화물차 소리가 요란한 시장 한복판에서 상인과 손님들을 대상으로 마음공부를 가르쳤다. 이러한 스님의 원력으로 열린선원은 그동안 3월과 9월 지역 직장인을 대상으로 4개월 과정의 참선문화아카데미를 열고, 불교사상과 기초교리, 수행법, 불교문화, 도량의 이해와 법구 등의 강의를 하는 등으로 22기 수료생 400명을 배출해왔다.
법현 스님은 저잣거리 수행 도량이 제 역할을 하려면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 시스템과 교재가 갖춰져야 한다며 ‘쉽고 재밌고 유익한 생활 속 불교’를 위해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이한 <한글법요집>을 출간했다.
스님이 불교 경전과 선사 어록 외에 시인의 시, 철학, 대중가요까지 소재로 삼아 법문해 온 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미있고 쉽게 전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춤, 노래, 게임 등 레크리에이션 등 불교 레크리에이션 포교회를 만든 것도 같은 이유에서예요. 내년에는 경전과 의식과 찬불가를 담되, 스님과 신도의 역할이 표시돼 불자의 참여를 이끄는 법요집을 발간할 계획이에요. 또 현재는 경제적 여건 때문에 법당에서 법회와 불공, 참선도 함께 하지만, 앞으로 분위기와 환경이 중요한 초보불자를 위해 참선을 위한 선방을 마련하고 싶어요.”
스님은 몸담고 있는 태고종도 선이 항상 중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참선은 상근기, 수준 높은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빈부귀천 상관없이 할 수 있음에도 많은 분들이 자신감을 잃은 듯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출가 전부터 불교학생회에서부터 밤샘 참선에 매진해 온 법현 스님은 출가 후에도 태고종뿐만 아니라 다른 종단의 사찰이나 이름 없는 암자에서도 수행을 계속해왔다.
스님은 1994년부터 약 5년 간 태고종 총무원 국장을 지내며 종단 소임을 맡다보니 무슨 일이든 ‘내 견해가 옳다’는 식의 독선을 감지해 이대로 가다간 독재할지도 모르겠다는 우려에 사표를 내고 조계종의 봉화 청량사(주지 지현 스님, 현 조계종 총무부장)로 내려가 6개월 간 안거를 한 일화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스님은 수행과 전법이 전업이기에 더 오래할 수 있는 것일 뿐이라며 재가자 누구나 수행을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행복한 삶을 위한다면 불교를 공부하세요.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평생의 몇 번 정도는 집중해 불교의 핵심인 참선 수행을 할 필요가 있어요.”
스님은 승속이 모두 보다 더 불교적이고, 수행을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열린선원을 이끌며 10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성도절에 밤샘 참선을 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결과, 현재 갈현2동 대표와 서울시에너지살림 홍보대사를 비롯해 불교생명윤리협회 집행위원장,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생명인권포럼 위원, 한국불교연구회 이사, 신사복지관 운영 자문위원 등 수많은 감투로 바쁜 나날을 보내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스님이 ‘지금 여기서’ 그토록 치열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이로, 깨달음이란 몰랐던 것을 안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슬기로운 것인데 슬기로운 이가 되기 위해 전생을 살필 필요가 있어요. 부처님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인 ‘자-따까(Jātaka)’, 즉 ‘본생경(本生經)’에는 547가지의 전생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90% 이상이 베푸는 내용이에요. 이 경전에서는 자기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상대방에 베푸는 것이 슬기로움을 얻는 데 최고라고 기술하고 있죠. 불교에서는 지혜와 자비, 믿음을 소중히 하면 열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현재 주변의 상황을 모른척하지 않아야 해요. 그래서 수행이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주변에 관심을 안 쏟을 수가 없어요.”
열린선원은 법현 스님의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다양한 종교인에게도 열린 공간이 됐다. 법현 스님은 2005년 열린선원 개원법회를 봉행한 뒤 곧바로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세계종교인평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할 만큼 종교 간의 상호 다양성을 인정하는 활동에도 열성적이었다.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이웃종교스테이(개신교ㆍ가톨릭ㆍ불교ㆍ원불교 등을 직접 체험해보는 프로그램)도 스님의 기획으로 탄생했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열린선원에는 이웃종교의 축하 화환이 법당에 놓여지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내걸며 목사와 신부를 초청해 크리스마스 축하법회를 봉행해왔다.
스님은 지난 5월 22일 감리교신학대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 ‘다종교·다문화 시대, 대화의 길을 묻다: 변선환 신학의 21세기적 의미 조명’에 참여했으며, 오는 9월과 11월 이웃종교이해강좌를 열 예정이다.
스님은 불교야말로 가슴이 넓은 ‘앎의 종교’이자 ‘자비의 종교’라며 이웃종교도 이해하려는 노력을 교단과 학교 안에서 펼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깨달음을 이루는 것의 90%가 존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돼요. 지혜와 자비가 같이 가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재미없으면 안 하니까 재미있게 공부하고, 재미있게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쉬운불교, 바른 불교, 밝은 불교, 모두 함께 웃는 도량’을 추구하는 열린선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문을 더욱 활짝 열어 놓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