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고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일주일이 휙 지나가버렸다.
뭐라고 써야할까, 숲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자꾸 헤매게 되었다.
‘순수’일까, ‘정의’일까? 나는 그를 하나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싶었나보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먼저 찾아가는 변호사

올해 1월 강남의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경비원이 분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미 언론에서 알려진 대로 가해 입주민은 고인을 머슴처럼 부리면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수시로 퍼붓고 업무에 일일이 참견하고 사람들이 보는 데서 야단을 쳤으며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고, 먹지도 못할 음식을 5층에서 던져주며 먹으라고 하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이런 이유로 고인은 초소 이동과 병가를 요청했지만 관리회사는 고인에게 더 참을 것을 당부하면서 힘들면 사직하라고 했다. 결국 인간적인 대접은 기대할 수 없고 도와줄 이도 없다고 여긴 고인이 분신자살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회의 만연한 ‘갑질’이 기업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퍼져있음을 알았고,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이들이 더 인간적이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게 했다.

일이 터진 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변호사가 고인의 유가족을 찾아갔다. 유가족 쪽에서 손을 내민 것이 아니고 법적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변호사가 찾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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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윤지영. 직업은 변호사다.
 
그가 일하는 회사 ‘공감’은 2004년 아름다운재단에서 공익을 위한 법률 활동을 벌이기 위해 만들어 활동하다 10년 만에 독립했다. 지금은 창덕궁 근처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8명을 포함해 11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난민, 노숙인, 철거민 등 법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난 이들의 공익소송, 법률자문, 입법운동 등 다양한 법률활동이다.
 
윤지영 변호사는 그 중 불안전 노동(취약 노동이라고도 한다) 관련 법률 분야를 맡는다.
 
분신 경비원 사건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윤 변호사가 관여하는 일은 무척 많지만 공감 홈페이지에 기록한 올해 6월부터 7월 사이에 관여한 사건은 도시가스검침원들을 대리한 퇴직금반환 소송,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근로계약 해지 손해배상청구소송, 호텔연회장 아르바이트 고발사건, 미용실 스텝교육비 청구소송, 세월호 사망 기간제교사 순직요구 소송 등이 있다. 또 비정규직노동자 권익단체인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정책팀 결합, 고용노동부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비판 의견서 작성이나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회 워크샵, 성북구 인권위 비정규직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소위원회 회의,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 공동대책위원회 회의 등 공익법 관련 각종 회의와 로스쿨 강연과 언론 기고, 지역노동복지센터 파견근무 등 다양한 활동으로 하루를 알뜰히 쪼개 쓰며 산다.

변호사가 너무 잘 먹고 잘사는 게 맞는가 고민하다

그는 딸 다섯에 막내가 아들인, 보수적인 집에서 자랐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파출부를 하며 경제를 책임졌고 지영 씨는 그런 어머니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방법으로 공부를 택했다. 서울대 법대에 원서를 넣은 날, 심난해하는 딸을 데리고 어머니는 절에 올랐다. 독실한 불자인 어머니를 따라 그날 지영 씨는 108배를 했다.

합격을 하고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에 입학한 지영 씨는 같은 과 친구들과 괴리감을 느꼈다. 대부분 서울의 강남 출신이거나 지방에서 온 친구들도 유지의 자녀들로 부유한 친구들 틈에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때만 해도 사회정의니 공익이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동아리 활동으로 철거촌 ‘꽃마을 공부방’과 ‘남부야학’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도 순전히 과의 친한 선배의 부탁이라 했던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사형수들을 돌보는 스님이 쓴 책을 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일하자’는 생각으로 스님이나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꿈꿨던 그였기에 자연스레 몸과 마음이 그쪽으로 향했던 것 아닐까.

대학 졸업 후에는 일반 회사에 취업을 했다.

“제 주변의 선배나 동기들이 너무 잘먹고 잘살고 있구나 하는 치기어린 반감으로 취업을 했어요. 1년 넘게 일했는데, 집안 살림이 너무 어려워져서 제가 변호사가 돼 생계를 책임져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지요.”

공부를 시작한 지 만 2년이 되지 않아 사법고시 1, 2차에 다 합격했다. 하지만 사법연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윤지영 씨의 고민이 깊어졌다.

“운전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운전면허증을 따야하듯이 연수원 과정을 변호사가 되려는 자격증 따는 과정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수원에 가보니 분위기가 너무 이상했어요.”

일산 주엽역에 있는 사법연수원을 연수원생들은 자조적으로 ‘주엽고’라고 불렀다. ‘차렷, 경례’로 수업을 시작했고 성적을 우선으로 놓고 경쟁을 벌이는 분위기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본인들이 이미 출세한 듯한 태도와 법원, 판사, 검사 등 기득권의 이익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
 
윤지영 씨는 사춘기가 그때 찾아왔다고 했다. 자신을 제외한 그들 전체에 반항하고 싶었고 그들과 한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선배의 권유에 따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라는 곳에서 자원활동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연수원의 동기나 교수들은 그를 문제아 취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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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끌려 여기까지 왔다

연수원을 수료하고 그는 로펌에 들어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다른 데 눈 돌릴 수 없었다. 초임 연봉이 거의 1억에 가까웠다. 물론 시간적, 육체적 자유를 반납해야 했다. 새벽까지 일했고 주말도 없었다. 또 사건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 맡아야했다.

그러다가 2007년 태안의 기름유출 사고에서 대기업 쪽 변호를 맡으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잠깐 당시의 사고를 설명하자면 삼성중공업의 해상크레인과 예인선이 유조선과 부딪혀 원유가 쏟아지면서 태안 일대를 뒤덮어 어민들과 생태계가 고통받은 어마어마한 사고였다. 삼성중공업 쪽의 과실이 확실한 상황. 윤 변호사는 도저히 대기업 쪽을 변론할 수 없어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를 거부했다. 입사할 때 필요했던 돈이 마련된 후 3년2개월 만에, 그는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앞에 소개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입사했다. 로펌 근무할 때 받았던 임금의 3분의 1도 안 되게 받는다. 하지만 그는 양심에 반하는 일을 맡지 않아도 되고,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적 도움을 받는 이들과 끈끈한 연대감을 느끼며, 일이 잘 됐을 때의 보람도 크다는 점을 들어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고 한다.

“제일 어려운 게 뭔가요?”
“일이 기대처럼 풀리지 않으면, 가령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 소송을 했는데 패소하는 등의 결과가 나오면 힘이 듭니다. 능력이 없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듭니다.”

질문할 때는 가족들의 기대나 사회적 시선, 현실적인 경제생활 등의 답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더 직접적으로 두 가지를 물었다.

“집안에서의 기대, 돈에 대한 욕망은 어떤가요?”
우선 그의 어머니는 그가 내린 결정을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하신다.

“우리 어머니는 성불하신 것 같아요. 못 배우고 가난한 분이지만 자비와 지혜, 둘 다 가지셨기 때문이지요. 한번은 제가 ‘출가할까?’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엄마가 ‘스님이 될 수만 있다면 좋지. 근데 스님은 아무나 못한다. 범인보다 위에 있는 존재인데, 내가 보기에 너는 그만한 그릇을 못가졌다.’라고 하셨지요.”

또 버는 돈에 대해서는 고민 없이 ‘별 문제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 사정을 생각하면 자신의 월급은 그리 낮지 않다는 것이다. 같은 직업인 변호사의 임금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노동자와 비교하는 모습을 보며 왠지 숲에서 불어온 바람 한줄기를 맞은 것 같았다.

그의 어머니는 파출부로 오래 일하셨고 언니는 프리랜서고 여동생은 비정규직(기간제) 교사, 남동생은 청년백수다. 그래서 그가 만나는 불안정한 신분의 노동자들은 결국 그의 가족과 다름없는 처지라고 여긴다.
 
“그래서 당신은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글쎄요. 따지기보다 본능적으로 끌려왔다는 게 맞을 겁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좋고, 그들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공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인권법재단이며, 전액 기부금에 의해 운영된다. 수임료를 일절 받지 않는다. 그들의 활동이 법조계에서는 많이 알려졌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아, 기부금만으로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는 적자가 7천여만 원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은 걸음을 멈출 생각이 없다. 탄탄대로가 눈앞에 놓였지만 그 길을 마다하고 좁고 어두운 길을 택한 윤지영 변호사와 그의 동료인 공감 식구들.
 
그들은 사회지도층이 될 생각이 없다. 그들은 요양보호사, 청소노동자, 아르바이트 청소년, 기간제 교사, 이주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성소수자, 장애인, 어린이들의 친구가 되길 원한다. 법을 잘 아는 친구,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법을 몰라 눈물 흘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친구, 그들이 바로 공감의 변호사다.

*이 글은 불교플러스(www.bulgyonews.kr) 박선영 기자의 글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후원자 확산을 위해 미디어붓다에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