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ㆍ기고 > 법응 스님 칼럼

“이 찌질하고 넋 나간 사람들아”

법응스님 | chonbe@naver.com | 2015-07-15 (수) 17:01

지난 7월 14일 청화, 명진, 도법, 법인, 일문, 진명, 퇴휴, 혜조, 현응, 지홍, 영담, 부명, 법안, 현진 스님이 회동하여 “서의현 재심판결 파동과 관련한 입장문”을 발표했다. 94년도 조계종개혁회의의 주역들이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재심판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서 가진 모임이다. 필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입장문’을 반복해서 읽어보니 제목이야 그렇다 치고 이것은 찌질하고 넋 나간 사람들의 입장이다. 아직도 또렷한 94년도 ‘조계종개혁회의’의 모든 것은 개혁의 주체였던 본인들이 수많은 대중의 희생과 동참에 힘입어 이룩한 공적인 성과이고 개인적인 보람인 동시에 고통과 영광의 종단사가 아닌가? 그런데 불과 두어 시간 만에 94년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개혁의 메아리와 21년의 종단사가 일거에 싹쓸이 당했는데 내놓은 입장이 고작 물먹은 휴지 같다.

 

첫 항을 보자 “94년도 종단개혁의 정신과 지표(정법교단, 불교자주화, 종단민주화, 청정교단, 불교사회역할)는 오늘에도 여전히 종단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하며, 앞으로도 종단의 지남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다.”라 했다. 살피건대 이번 호계원의 재심판결 자체로써 이미 “94년도 종단개혁의 정신과 지표”가 깡그리 붕괴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여전히 종단의 근간” 그리고 “확인” 운운하고 있으니, 다분히 패자의 자위적 입장이 아니고 무엇인가? 94년 개혁의 5대 지표는 이미 지난 21년 동안 개혁의지의 퇴색과 각종 큰 사건들로 인해 붕괴된 지 오래다.

 

94년 개혁의 주체들이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면 작금의 현실에서 그들이 우선적으로 할 일은 사태가 이 지경이 된데 대해 대중 앞에 큰 참회를 하는 것이요, 아울러 분기탱천해서 제2의 개혁의지를 담은 내용으로 발표문이 작성되어야 했다고 본다.

 


불교사회정책연구소 법응스님


두 번째 항의 “최근 서의현에 대한 재심판결의 과정과 내용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이에 대한 사실관계와 법적인 문제는 철저히 규명되어야 한다.” 라는 내용 역시 주어와 주체성이 상실된, 그야말로 혼 없고 일머리를 외면한 제3자적 시각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임을 통감하고 분노하여, 이를테면 ‘94년 개혁정신 수호와 종단혁신을 위한 대중행동’과 같은 한시적 조직이라도 결성하여서 역사가 부정된 현장을 바로잡을 생각은 안하고 헛발질을 하고 있다.

 

이어 세 번째로 지적할 것은 “서의현 재심판결 파동과 관련하여 '대중공사'는 물론이고, 중앙종회 차원에서 철저히 조사하여 종단적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를 요구한다.” 라고 한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특정사안에 대해 사회적인 ‘요구’를 할 시는 실천가능성을 담보하거나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이어야 하는데, 본 내용은 실천가능성도 의지도, 그야말로 겁도 주지 못하고 있다.

 

입장문이 허식적 체면에서 작성되었다는 것으로 밖에 달리 분석이 되지를 않는다. 자신들이 주체가 돼서 강력하게 추진해야할 일을 떠넘기고 있다. 당일 모임 현장에서는 제아무리 강력한 내용이 개진되었다 해도 외부로 표현된 공식입장만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우리 종단의 종헌 전문은 총 867자이다. 이중 94년도 개혁회의와 직접 관련된 글자 수가148자(17%)이며, 이어서 관련한 내용을 포함하면 도합 232(26%)자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종조 도의국사께서”로 시작되는 종헌은 1,200여 년간의 불교사를 압축한바, 이중에서 94년 개혁회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대를 차지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현대사라는 현실적 영향력을 감안해도 그 중요도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지난 7월 14일 모임을 가진 분들 개개인의 면모는 종단의 중진이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승려들이다. 종단을 바로세우고 한국불교를 새롭게 하자는, 20여 년 전 개혁의 중심 세력이었고 아직도 그러한 희망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파사현정은 물론이고 종단발전과 불교중흥에 대한 기대, 대중에게 진정성과 희망을 주는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앞으로 3일 후(7월 18일)면 재심호계원이 전 총무원장에 대해 공권정지 3년이란 판결을 내린지 한 달이 된다. 무슨 일이든 때가 있다. 골든타임이라 하지 않는가. 제아무리 중차대한 일이나 사건도 시간이 흐르면 희석되고 에너지가 분산되며 사람의 관심도에서 멀어지게 마련이다. 심지어 그만큼 했으면 됐으니 "이제 그만하라”는 압력까지 받게 된다.

 

어떤 사건이든 그 사건의 흐름을 끌어가는 중심세력이 있고 역할이 부여된 조직의 구성원들이 있다. 이들 모두 마구잡이나 임시변통이 아닌 나름의 목적과 행동방식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당장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입장문이 나올 수는 없었다고 치자,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확고한 의지를 갖고서 한시적이나마 ‘94년 개혁정신 수호’와 ‘제2 종단개혁’을 표방한 강도 높은 입장을 표명하고 대중행동 결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94년 개혁주체들이 이번 호계원 판결을 바로잡을 확고한 의지와 행동 방향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향후 역사는 94년의 종단개혁을 실패한 불교개혁과 그 주인공들이라 기술 할 것이고 힘을 실어주고자 동참하여 희생한 대중들로 부터는 원망 이상의 소리를 듣게 될 것 자명하다.
 
法應(불교사회정책연구소)



기사에 만족하셨습니까?
자발적 유료 독자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전   다음
Comments
불자 2015-07-16 11:41:07
답변 삭제  
이미 물건너간 종단~~
참 스님들만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시대입니다.
이젠 , 스님들도 스스로 인정하는 분위기로 정착된 것 같고,
다만, 불자들의 판단력이 좌우할 것 같네요.
지금처럼 속물인지 스님인지 구분없이 외모만 보고 대우하는 불자들이 계속이어진다면, 구제불능 종단은 불 보듯 .......
금선 2015-07-16 11:58:09
답변 삭제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편의상 종단개혁의 정신을 유지하는 자를 착한 사람으로 훼손하는 자를 나쁜 사람으로 부른다면 착한 사람들이 용기가 없는 행동을 보였네요. 착한 일도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용기를 내자니 가진 것 혹은 누리는 것을 내놓아야 하겠고 아마도  조심스럽겠지요. 그들을 심정적으론 이해하지만 이미 참된 출가자의 자세는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그저 비교적 착하게 살려는 출가-자영업자들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바른불교 2015-07-18 05:54:19
답변 삭제  
역시 법응스님 !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비밀글

이름 패스워드

© 미디어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