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석법사
phoseok@hanmail.net 2015-07-14 (화) 17:36소위 사주팔자를 다루는 운명학에서, 한해가 바뀌는 연주(年柱,기준일)가 우리가 생각하는 음력 정월 초하루가 아니고 동지(冬至)라고 합니다. 그런데 동지도 최근에서야 연주로 알려졌고, 원래는 입춘(立春)을 기준으로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동지와 입춘은 무려 45일이나 차이가 납니다. 한해의 기준일이 그렇게나 많은 차이가 나니 정말 큰일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개인은 물론 세상의 운명을 잘못 따졌을 테니까요. 그런데 달라지는 것이 뭐가 있나요?
해마다 정월이면 한해의 운세를 보는 사람들로 점집이 부산합니다. 삼재(三災)가 들었다고 부적을 사고, 절에 가거나 무당을 불러 소멸하는 삼재풀이기도를 합니다. 그것도 날삼재와 들삼재에다 요즈음에는 눌삼재까지 만들어서 불안한 사람들을 더 늘려놓고. 자식 혼사(婚事)에는 절에 다니는 사람이나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나 택일하고 궁합을 보는 일이 통과의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사철·입시철·선거철이면 용하다는 점집의 문턱이 닳지요.
세상이 이렇다보니 현재 추산하고 있는 역술인이 50만 명에 이르고, 시장규모도 연간 4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대명천지의 문명사회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홍콩과 같은 곳에서는 중국인 특유의 운명론적인 성향에다 부유함이 어울려 이러한 현상이 극에 달해 있고, 우리보다 훨씬 냉철한 사고를 지닌 서구인들도 간혹 각종 점성술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미래의 행, 불행에 대한 궁금증을 단순히 호기심 수준으로 평가절하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처님 말씀에 ‘전생이 궁금하면 이생의 자신을 보고, 내생이 궁금하면 지금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이생의 지금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지만, 이생은 전생의 결과라는 말씀이기도 하니 운명이란 당연히 있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거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는 대단히 궁금한 일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거를 알고, 미래를 알고, 요행을 바라는 것이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금방 알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지금 내가 담배를 피고 있다면 과거에 핀 습관 때문에 피는 것이고, 그래서 내일도 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금연하기로 확실히 마음의 결정을 했다면 오늘도 피지 않고 내일도 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과거의 습관 때문에 금연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운명론적인 생각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건강을 위해 끊기로 결정하고 피지 않으면 운명론은 더 이상 작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남녀가 만나 혼인하는 것도 그렇고, 부부가 이혼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기가 결정해서 혼인하고 이혼하는 것이지 팔자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서 살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팔자였다는 생각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결정한 것이라도 그 것은 인과(因果)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결정도 인과지만 인과가 결코 숙명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아난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눈이 어두워 전생에 행한 공덕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늘과 땅을 원망하고 부처인 나를 책망함이 이와 같으니 심히 어리석기 짝이 없다. 나의 제자라면 점치기·부적붙이기·주문외우기·괴상한 제사지내기·무꾸리(무당에게 길흉을 점치기)·불길한 날 가리기 등을 해서는 안 된다. 나에게 오계를 받은 사람은 이미 복덕이 있는 사람이니, 두렵거나 피할 것이 없으며, 일이 있으면 마땅히 삼존(三尊)에게 물어서 해야 할 것이다.”(<아난문사불길흉경阿難問事佛吉凶經>)
그런데 우리는 늘 궁금합니다. 왜 궁금할까요? 그것은 요행을 바라는 욕망 때문입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입시에 합격하고, 선거에 이기려는 욕망이, 그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팔자에 의해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으로 점집을 기웃거리지요. 사실 무엇이 성취되고 말고는 팔자가 아닌 발심(發心)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런 발심과 노력이 청정하다면 분명히 성취되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것이 상식이고 순리입니다.
조선시대 부적. 이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습니다. 사진=고판화박물관 소장 작품으로 미디어붓다 DB
불교의 목표가 욕망, 바로 갈애를 끊는 것이 아니던가요? 그런데 불자가 그 욕망을 앞세워 점집을 찾고 부적을 사려한다면 이는 불자가 아닙니다. 불자가 이런 일들을 궁금해 할 필요도 없겠지만, 꼭 그럴 필요가 있다면 삼존에게 여쭈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으니 그렇게 하면 됩니다. 부처와 연각(緣覺), 그리고 성문(聲聞)이 삼존이니 이들은 깨달은 분들이 아닙니까? 깨달은 분과 상담하세요. 깨달은 선지식(善知識)들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선지식을 찾지 못하니 선지식을 흉내 내는 사이비(似而非)에게 점보고, 사주보고, 택일하고, 부적 사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기를 발원한 스님들까지도 중생제도랍시고 부처님도 금하신 점술이나 부적을 가까이하는 세태를 보면 참으로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