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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冥樞會要)』를 출간한 원택 스님이 13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책 출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종경록(宗鏡錄)』은 선교(禪敎)일치의 입장에서 불교의 교리를 체계화한 불교개론서이다. 오대(五代)로부터 북송(北宋)에 걸친 선승(禪僧) 영명연수(永明延壽)의 저작이다. 주로 이심전심의 이치를 설하고 있어 마음공부의 백과사전으로 불린다. 불심종(佛心宗)이라 하여 마음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에서의 마음과 천태ㆍ화엄ㆍ법상 등의 교종에서 설하는 마음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은 가를 예증을 들어서 논하며, 선과 교를 융화ㆍ회통 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10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이라 그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종경록』 가운데 북송 시기 회당조심(晦堂祖心) 선사가 중요한 부분만 추려서 상·중·하 3권으로 정리한 책이 『명추회요(冥樞會要)』다.

『명추회요』에서 ‘명(冥)’은 깊고 그윽한 도리를, ‘추(樞)’는 그 도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마음의 빛을, ‘회요(會要)’는 이 마음의 빛에 관한 요점을 모았다는 뜻이다.  참선을 하는 사람은 물론 교학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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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번역된 『명추회요』(장경각)가 발간됐다. 한국 현대불교의 대선지식인 성철 스님이 생전에 발간한 총37권의 <선림고경총서(禪林古鏡叢書)> 시리즈 2집의 첫 책이다.

13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은 “한글 번역본 『명추회요』가  나오는데 23년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스님은 먼저 은사인 성철 스님이 이 책에 관심을 둔 계기부터 말을 이어갔다.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종경록』과 『명추회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이 책에서 성철 스님은 ‘『종경록』 100권은 종문(宗門)의 지침(指針)으로 용수(龍樹) 이래의 최대 저술로서 찬앙(讚仰)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명추회요』를 펴낸 회당조심에 대해서도 ‘회당(晦堂)은 역시 임제정전(臨濟正傳)인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 혜남 선사(慧南 禪師)의 상수제자(上首弟子)로서 불조(佛祖)의 정맥(正脈)으로 천하가 추앙(推仰)한 바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어서 1993년 7월경에 성철 스님과 있었던 일화를 이야기했다.

“큰스님께서 선정해 주신 <선림고경총서>의 번역이 마무리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번 어록 번역을 1집으로 한다면 2집은 어떤 어록들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이번 책들 번역한다고 그렇게 분주를 떨었는데 더 하기는 뭘 더 해! 고만해라.”

“그러시면 다른 것은 몰라도 (중략) 『종경록』 100권은 너무 방대해서 번역하기가 어렵고, 후학들을 위해 『명추회요』 판본을 구해 다음번 어록 번역 불사(佛事)로 정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오등회원(五燈會元)』도 번역했으면 하는데, 큰스님께서 지남(指南)해 주셨으면 합니다.”

“영명연수 선사는 법안종 3세로 존숭 받는 스님이고, 『종경록』은 어려운 책이다. 그러니 『명추회요』라도 번역해서 세상에 유포하면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제. 그러나 제대로 번역이 될지 모르겠다. 그리고 『오등회원』은 남송(南宋) 시대의 사대부들 서가에 꼭 꽂혀 있던 전등서(傳燈書)인데, 힘들여 번역한다 해도 우리 시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

뜻밖에도 성철 스님은 “쓸데없다, 하지 마라.”고 꾸짖지 않고 번역을 잘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원택 스님은 내심 ‘큰스님께서 허락을 하셨구나’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철 스님께 “<선림고경총서> 2집으로 『명추회요』와 『오등회원』을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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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적광전에서 설법 중인 생전의 성철 스님. [사진=장경각]

그 해 9월 서울 출판문화회관에서 《선림고경총서》 37권과 《성철스님 법어집》 11권 완간을 회향하는 기념법회를 봉행하고, 10월초에는 국제불교학술회의도 성대히 치렀다. 그리고는 성철 스님은 11월 4일 “이제 나도 떠나야겠다. 참선 잘 하그래이.”라고 당부하면서 열반에 들었다.

인산인해로 밀려드는 조문 물결 속에 해인사 연화대에서 7일장의 다비식을 무사히 치르고 49재를 마친 뒤 황망 중에 ‘스님을 위해 무슨 일부터 할까?’ 하고 돌아보니, 먼저 『명추회요』와 『오등회원』을 번역해서 <선림고경총서> 2집 불사를 이루는 일이야말로 큰스님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명추회요』는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학계에 정평이 나 있는 책이었다. 인용문 가운데 또 인용문이 있어서 문장 정리가 까다롭고, 인용문에 증거된 서적들이 멸실되거나 이름만 전하는 것도 있어서 대조할 길도 없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때마침 일본 유학 중인 원충 스님을 통해 『명추회요』 상·중·하 판본을 받았고, <선림고경총서> 번역에 도움을 준 고(故) 이창섭 옹에게 부탁해 4년 뒤인 1997년 봄에 초고(草稿)를 받게 됐다. 하지만 마땅한 윤문자를 찾는 동안 또다시 시간은 기약 없이 흘러만 갔다.

2012년에 다시 출간 준비를 하는 가운데 몇 년 전 중국의 종교문화출판사에서 『영명연수선사전서(永明延壽禪師全書)』 상ㆍ중ㆍ하 3권을 출판한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전집을 참고해 지금 윤문해 놓은 원고를 다시 검토한다면 더 완성도 높은 번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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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冥樞會要)』 한글 번역과 윤문을 맡은 대진 스님(사진 오른쪽)과 선암 스님. 

마치 오랜 인연이 있은 듯 한국고전번역원 출신으로 역경을 소임으로 삼고 불전 연찬(硏鑽)과 학업에 전념하고 있는 대진 스님과 선암 스님을 만나게 됐다.  두 스님은 성철 스님과 원택 스님의 뜻을 이해하고 선뜻 윤문을 맡아주었다. 그리하여 『명추회요』 전반을 검토(윤문, 교열, 인용문 전거 찾기, 각주 정리 등)하고, 우리에게 맞는 표점 작업도 다시 했다. 두 스님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원고를 검토했다. 윤문을 맡긴 지 1년여 만에 원고가 마무리됐다.

 『명추회요』의 해제(解題)는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연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동국대 불교학술원 박인석 교수에게 부탁했다. 그는 백련불교문화재단이 1997년에 젊은 불교지도자로 선정한 5명 중 한 명이었다. 고등학교 때 이미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을 친견하고, 아비라기도도 여러 번 동참한 인연이 있었다.

원택 스님은 “눈 밝은 선승이 출현하기를 그렇게도 바라셨던 성철 큰스님의 진영 앞에 이제사 『명추회요』를 헌정하게 되니 부끄럽고 부끄럽다.”면서  “전국의 수좌 스님들께서도 함께 격려해 주시고 수행에 큰 지남으로 삼아 주신다면 더없는 영광이겠다.” 고 말했다.

성철 스님 ‘돈오돈수’ 출발점은 『종경록』 「표종장」
성철 선사의 선교관과 수증론‘ 주제 학술회의 열겠다

『명추회요』를 발간하면서 원택 스님은 “성철 큰스님께서 『선문정로』에서 밝히고 있는 돈오돈수의 출발점을 『종경록』 「표종장」으로 삼고 계신다는데 새삼 눈을 돌리게 되었다.”고 했다.

“중국불교사에 있어서 선교합일을 주장한 스님으로 규봉종밀 스님과 영명연수 선사를 들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규봉종밀 스님의 선교관을 점수로 혹평하며 따라서 그 논리를 따르는 보조국사를 비판하고 계십니다.”

크게보기원택 스님은 해제를 맡은 박인석 교수<사진>에게 『종경록』에서는 돈점(頓漸)관계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박 교수는 일본불교학자 야나기 미키야스(柳幹康) 교수의 논문을 요약해 보내왔다.

“종밀(780-841) 스님이 세상을 떠난 뒤 약 100년 후에 활약했던 연수(904-976)는 종밀의 이론을 환골탈태하여 독자적인 수증론(修證論)을 구축하였다. 연수와 종밀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양자가 상정한 수행자의 차이에 있다.

종밀이 아직 해탈을 얻지 못한 범부의 입장에서 동일하게 아직 깨닫지 못한 범부를 향해 책을 저술한 것에 대해 영명연수는 깨달은 조사의 입장에서 가장 높은 근기인 상상기(上上機)에 대하여 『종경록』을 편찬하였다.

연수가 말한 상상근(上上根)은 돈오돈수(頓悟頓修), 즉 일심(一心)을 바로 보아서 부처로서 행위하는 자이다. 연수는 종밀의 돈오점수 등을 상근 이하의 사람에 대한 방편으로 유지하는 한편, 돈오돈수는 부처로서 살아가는 길을 상상근(上上根)에게 개시(開示)하고 각종 근기의 사람들을 평등히 돈오돈수로 이끄는 일원적인 수증론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원택 스님은 “이 글을 읽고『선문정로』 출간으로 한국불교학계에 폭풍같이 몰아친 ‘돈점(頓漸) 논쟁’은 아직도 성철 스님의 폭넓은 선교(禪敎) 불교관을 살피지도 못한 채 ‘보조 국사의 돈오점수 비판’에만 머물러 있음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불교학계에 『종경록』에 대한 선행연구가 깊이 있게 진행돼 있었더라면 성철 스님의 돈점 논쟁은 또 다른 불교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원택 스님은 봉암사 결사 70주년, ‘백일법문’ 개당 50주년이 되는 2017년 가을 성철 선사의 선교관과 수증론에 대한 학술회의를 열 계획이다. 교계의 여러 학자들과 함께 2년 남짓 동안 준비해 한국 선학과 수행론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본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