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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 일기
이 대원성 보살, 여시아문
492쪽, 1만7000원

“스님은 그 차가운 역 대합실에서 우리 식구를 기다리다 그만 기차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우리를 만날 약속 때문에 그 차를 타지 않으셨으니 너무 죄송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스님은 ‘괜찮아, 그래도 아이들 만나 잘되었지.’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지요. 

아이들 추울까봐 걱정하시며 ‘한 시간 더 기다려 다른 차편으로 가면 돼.’ 하시는 말씀에 눈물이 나도록 감사하지만 너무 큰 불효였음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부산 ‘연꽃모임’ 회장 대원성 보살(본명 이정옥, 사진)의 조계종 3~4대 종정 고암 스님에 대한 회고담이다.

그녀는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기 전 부산 온천장 좁은 골목길 마지막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역대 종정 스님, 교수, 박사, 총장을 지낸 분들, 선방의 수좌, 학인, 말버릇 고약한 처사들 까지 시도 때도 없이 누구나 찾아와 먹고 자며 마음 편히 쉬어가는 곳이었다. 

이 보살은 5계와 법명을 준 고암 스님, 보살계를 준 율사 일타 스님을 비롯해 봉선사 운허 스님, 해인사 지관 스님, 불일암 법정 스님, 약천사 혜인 스님, 석종사 혜국 스님 등과 두터운 인연을 이어왔다.

부산불교신도회 부회장을 오랫동안 역임한 부산불교의 산 증인 대원성 보살이 두 권의 책을 펴냈다. 제목은 『바라밀 일기』(여시아문). 자신의 삶과 수행이야기를 담은 구도 에세이다. 다른 한권의 제목은 『누가 허공을 비었다 했는가』로 77편의 구도시(求道詩) 모음집이다. 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녀는 지나온 불교적 삶의 자취를 속속들이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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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신창동 대각사 뒷편에서 명초당한약방을 운영했다. 전국의 큰스님들이 날마다 와서 법담을 나누고 또 보약을 지을 때면 먼저 스님들께 보시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새벽마다 아버지와 함께 절에 가면서 차츰 불교의 뜻을 이해하고 신심도 키워갔다.

한때 출가수행자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집을 몰래 나왔다가 아버지의 간절한 설득으로 포기해야했다. 그때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마을에 살아도 스님들처럼 불교를 배우고 포교하며 불교 속에 살겠습니다.’

1966년 대한불청 대각사지부에 가입해 불교 활동을 시작했다. 해인사에서 수련대회를 마치고 전 종정 고암 스님으로부터 오계를 받게 되면서부터 이정옥이란 이름대신 대원성이란 법명으로 다시 태어났다. 다음 해에는 일타 스님으로부터 보살계를 받았다.

1969년 같은 불청 회원인 노재섭 거사와 결혼했다. 단칸방에서부터 작은 부처님을 모시고 하루도 빠짐없이 백팔배를 하며 경을 읽고 쓰며 네 아이들을 키워나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누구 하나 잘못이 있으면 매대신 백팔배 하는 것으로서 단체 벌을 주곤 했었다. 새로 지은 밥이면 하루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아이들이 과자를 먹을 때도 부처님께 절 한 후에 먹게 했다. 언제나 부처님을 큰 어른으로 섬기며 살아온 가정생활이었다.

1977년 1월 이웃과 친구들 128명을 모아 신행단체 ‘연꽃모임’을 만들었다. 젊은 아낙네들이 절에 잘 가지 않을 때였다. 매달 한 번씩 절에 가서 큰스님들 법문도 듣고 기도도 하면서 참 불자가 되는 좋은 도반이 되자는 취지에 동참자가 늘어났다.

큰스님들이 오시면 자연스레 마을 법회가 시작됐다. 좁은 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늘 잔치 집 분위기였다. 때로는 지나는 스님들이 골목을 서성이면 이웃 사람들이 곧장 그녀의 집으로 안내하는, 황당한 일이 자주 일어나기도 했다.

1980년 부산불교신도회 부회장직을 맡아 16년을 지냈다. 회장은 교육감을 지낸 이윤근 거사였다. 1983년 초파일 연등 행사 때는 부산에선 최초로 ‘연꽃모임’에서 단체복으로 파란 깔깔이 한복을 입게 했다.

1994년부터 보현봉사회를 결성해 지금까지 어렵고 힘든 가정에 작은 관심이나마 나눌 수 있게 됐다. 같은 해, 군법당후원회를 조직해 지난 2010년까지 16년간 매월 후원금을 지급해왔다. 모두 작지만 큰 보람을 느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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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소림 청심장학회를 만들었고, ‘공림 공양회’ 를 창립해 현재까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엔 ‘연꽃모임’ 회장직을 다시 맡았다. 1988년 부산불교 포교대상을 수상했고, 1994년에는 홍법 대상을 받았다.

대원성 보살은 한글 천수경, 금강경 사경본 5만여 권, 한글 부모은중경 사경본 2만여 권 등을 비롯해 많은 경전을 법보시해 왔다.
 
이런 일들이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이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온통 불교라는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함께 해준 많은 인연에 항상 감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훌륭한 불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이 부처님의 품속에서 이루어진 사실도 제겐 큰 영광이며 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람이 재산이다’라는 평소 소신이 거짓 아님을 실감합니다. 재물보다 소중한 인연으로 언제나 부처님 은혜로 충만하여 세세생생 더 큰 서원과 원력으로 불자의 삶을 이루길 발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