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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탱의 ‘대아귀’는 비증보살의 화현”

이학종 기자 | urubella@naver.com | 2015-07-06 (월) 11:17

아귀(餓鬼)는 배의 크기가 산과 같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해 음식을 만난다 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존재라고 일컬어진다. 아귀에 대한 이야기는 목련경에 목건련 존자의 어머니가 아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 목건련이 도안으로 세간을 관찰하니 그의 어머니는 죽어서 아귀로 태어나 음식을 보지도 못하였고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목건련이 슬피 울며 발우에 밥을 담아 어머니께 주었더니 어머니는 발우와 밥을 보자 덥석 왼손으로 움켜잡고 오른손으로 밥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밥이 입에 들어가기도 전에 갑자기 불덩이로 변해 먹지 못하였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감로도에 등장하는 아귀의 모습은 이렇듯 추하고 비참한 몰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감로탱 작품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아귀에는 두 종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소(小)아귀와 대(大)아귀가 그것이다.

 

대아귀의 형식적 특징은 주로 화면 중심에 위치한다. 주색(朱色)과 녹색(綠色)의 천의(天衣)를 두르고 머리와 가슴, 그리고 팔과 손목, 발목에 장식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해골이 있는 보주관(寶珠冠)을 했고, 가슴에는 보주장식, 팔과 손목의 팔찌와 발목에 발찌 장식을 했다. 이런 장식들은 소아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들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녹색의 광배가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대아귀의 용모 또한 대장부처럼 근엄하고 아라한처럼 호기롭다. 소아귀처럼 감로를 받아먹기 위해 안달하는 모습이 아니라 단정하게 합장하고 있는 여유로운 모습이다.

 

아는 분은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이는 보살이 하는 장식들이다. 보살의 장식을 아귀가 하고 있다니! 그 연유가 뭘까?

 

불화연구를 하고 있는 강소연 박사(홍익대 겸임교수)가 지난 6월 27일 열린 ‘동아시아불교의례문화연구소 제6차 학술발표회’에서 ‘아귀(餓鬼)와 원상(圓相) 도상의 묘사와 상징’을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했다.   

 

“비루하거나 추하지 않고 호기로운 용모, 보살적 장식의 특징을 갖춘 대아귀의 등장은 조선시대 감로탱의 도상적 특징이며, 이웃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도 매우 독창적”이라고 밝힌 강소연 교수는 “감로탱에 나타나는 아귀의 보살적 표현은 당시 한국불교의 한 특성을 규정짓는 사상 또는 신앙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이어 조선시대 감로탱에 묘사된 대아귀의 또 하나 주요한 특징이 임진왜란 이후 한 구(軀)가 아니라 두 구로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강 교수는 두 구의 대아귀를 비증보살(悲增菩薩)과 지증보살(智增菩薩), 즉 불교의 두 축인 지혜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의 모습이라고 추정했다. 지증보살은 오직 부처만 바라보고 항상 보리에 수순하고 취향·친근·애락·존중·갈앙하여 쉬지 않고 정진해가는 보살이며, 비증보살은 마치 사공이 이쪽 언덕에도 탐착하지 않고 저쪽 언덕에도 탐착하지 않고 중류에도 탐착하지 않고 오직 손님만을 건네주듯 중생의 원을 따라 고통의 세계에서 극락의 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을 지칭한다.

 

강 교수는 이어 여러 가지 경전과 논서에 등장하는 이증보살의 예를 들며, 감로탱에 등장하는 대아귀를 비증보살의 화현으로 해석해 눈길을 모았다.

 

강 교수는 또 ‘벽련대(碧蓮臺) 군상과 원상(圓相) 도상’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영가천도의 벽련대와 깨달음을 상징하는 원상 도상이 추가된 감로탱의 작례들을 살핀 것이다. 강 교수는 통상의 감로탱 형식은 ‘아귀(영가)에게 부처님의 가피가 내려지는 장면’에서 그치고 있으나, ‘용주사 감로탱’이나 ‘백천사 감로탱’ 등에서는 아귀가 극락세계로 천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즉 ‘깨달음의 원상으로서의 합일’로 그 대미를 장식하는 단계적 승화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18세기 중엽부터 감로탱에 등장하는 커다란 원상 속 벽련대 도상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극락왕생 사상과 조선시대 유행했던 선가(禪家)의 깨달음의 상징으로서의 원상이 종합적으로 융합되어 조형화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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