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기자
urubella@naver.com 2015-06-26 (금) 11:27승가의 청규제정을 위한 조계종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교육원을 중심으로 승가의 청규 제정과 제정된 청규의 종단 산하 각급 교육기관에서의 교육 시행(이르면 올해 9월부터)을 목표한 이 움직임은 각종 범법행위로 크게 추락한 승가의 위상 회복을 위한 처방전 성격을 지니고 있다.
승가의 위의 회복과 정립을 위한 청규제정에 종단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의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과 적용이다.
청규의 내용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정해진 청규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
이 두 문제를 놓고 지난 6월 25일 ‘현대승가와 승가청규’를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조계종 교육원 교육위원회와 중앙종회 교육분과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렸다.
금강 스님(조계종 교육아사리, 해남 미황사 주지)이 ‘현대사회 승가청규는 어떤 내용으로 제정되어야 하는가?’를 발제했고, 덕문 스님(통도사 율학승가대학원장)과 자현 스님(조계종 교육아사리, 월정사 교무국장)이 토론에 나섰다. 이어 주경 스님(교육원 교육위원회 위원, 서산 부석사 주지)이 ‘새로운 승가청규, 어떻게 종단에 정착시킬 것인가?’를 주제로 발제하고 만당 스님(종회 법제분과위원장, 전남 영광 불갑사 주지)과 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가 토론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날의 과제는 ‘승가청규’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찬반으로 갈렸다. 심지어 이 행사의 공동주최자인 중앙종회 교육분과위원장 심우 스님은 모두 인사말에서 “부처님께서는 승려를 통제하기 위한 승제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며 “염려반 기대반”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우 스님은 또 “지금까지 규정이 없어서 승풍실추 문제가 일어났느냐”고 물은 뒤 “도박 등 빈발하는 희유한 사건들을 청규제정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발제에 나선 금강 스님은 “승단의 소속원 전체를 윤리적으로 환기할 수 있는 청규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현대는 개인화된 사회로 타인에 의해서 규제받는 것을 싫어하는 시대이기도 한 만큼, 소속원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청규는 자칫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존의 <조계종 선원청규>와 종단쇄신위가 만들어 놓고 공표하지 못한 <승가청규>의 내용을 일괄한 금강 스님은 “새로운 청규는 종단 승가를 바탕으로 하는 간략한 실천원칙이어야 하며, 몸(身)과 음식(食)과 주거(住) 등에 대해 세심한 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강 스님은 “조계종이 종교집단이라는 점에서 청규보다 더 근원적인 본질은 구성원의 의식수준 문제에 있다”고 전제한 후 “이 문제가 해결되어 도덕성이 확립된다면 사실 청규는 출가집단의 특징적인 부분만 제한적으로 다루면 되는 일일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토론에 나선 덕문 스님은 “청규에 대한 실천의지와 능력이 우리 조계종단에 충분히 있는가를 심도 있게 고민하고 점검해야 할 부분”이라며 ▲종도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방된 분위기에서 청규를 제정하고 ▲종회 입법을 통해서 법적 구속력을 확보하며 ▲철저하고 지속적인 교육(승가청규로 포살하는 법 등을 포함)을 시행하며 ▲상위 5%에 해당되는 기득권층의 적극적인 동참 및 실천의지를 확보하는 일 등을 성공적인 청규의 제정 및 시행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자현 스님은 청규의 근본적인 문제, 청규의 한계 등에 대해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들며 청규의 제정 및 정착에 걸림돌이 될 문제점을 5개 항으로 나눠 비판적 입장에서 살폈다. 자현 스님은 ▲청규의 구체적인 항목 제시에서 파생하는 유치함의 노출 문제 ▲법정 최저 임금 116만원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방식에 속한 현재의 승단구성원들에게, 즉 빈곤자의 무치(無恥)에 해당되는 승가구성원에게 청규가 작동할 수 있는가의 문제 ▲윤리와 지계의 준수가 보다 존경받고 책임 있는 자리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은 승려들에 대한 청규교육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가 의문인 종단 현실의 문제 ▲징계가 규정되어 있는 종법의 <승려법>과 관련해서도 징계가 한계를 보이는 상황에서 도덕과 법의 중간 영역인 청규를 법제화한다고 해서 그 실효성이 있느냐의 문제 ▲현전승가 안에서 규정하는 자기 조례, 또는 제한된 약속과 같은 청규를 과연 종단전체에 확대할 수 있는냐의 문제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청규를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의 주제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콘센서스를 도출해내지 못한 이날 토론의 분위기에 따라 ‘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의 과제는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편 조계종 교육원은 이번의 발제와 토론회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충분히 수렴하고, 기존에 만들어진 선원청규와 종단쇄신위의 승가청규 등을 바탕으로 청규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과 내용을 담아 올 후반기(9월)부터 산하 전체 교육기관을 통해 청규 교육에 나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