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인문학? 얼핏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이 조합을,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이가 있다. 풍수학자 최원석 교수(경상대)가 바로 그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풍수학의 대가로 알려진 최창조 교수의 직계제자다. 그가 얼마 전 한 권의 묵직한 책을 냈다.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한길사)가 그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의 눈으로 우리 산을 만나게 하려는 최 교수의 단심이 고스란히 깃든 역저다.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귀신처럼 찾아내는 특기를 가진 월간 <불교문화>가 그를 놓칠 리 만무. 월간 <불교문화>는 5월 화요열린강좌의 강사로 최원석 교수를 초청해 ‘산 연구가가 말하는 사람과 산의 어울림 미학’이라는 주제로 강좌를 열었다.

지난 5월 19일 다보원 강당에 나타난 최 교수는 자신의 저술을 바탕으로 산 이야기, 산의 인문학 이야기를 낭낭한 목소리로 펼쳐나갔다.

앞서 언급했거니와 산을 인문학의 프리즘으로 최초로 풀어내 주목을 받는 최 교수는 “산은 그냥 산이 아니라 사람의 산이기 때문에 산의 인문학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강의는 산의 변천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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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70년대만 해도 산의 개발의 장애물이었지요. 90년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산이 보존의 대상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알피니즘, 투어리즘, 휴양의 산, 마운틴 서비스의 담론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면서 산에 대한 절대 보존의 논리가 성행했고 산은 다시 사람과 분리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산은 사람과 분리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죠. 산은 사람의 산이죠. 그러므로 인문과 산, 사람과 산의 올바른 관계 회복과 공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산과 사람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강조한 최 교수는 정복의 의미가 깃든 등산(登山)이라는 개념도 이제는 함께 어우러지는 유산(遊山)이나 요산(樂山) 등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신산불이, 산천유전자, 산천무의식 등의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의 호가 고산자(古山子), 즉 옛 산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을 정도로 산과 인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였다”고 강조한 최 교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역시 평지가 아닌 산의 도시라는 점을 일깨웠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일제 강점기까지 산의 도시 형태를 유지했던 서울의 산천은 해방 이후 서양의 평면도시 개념이 도입되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최 교수는 이어 “이제 나에게, 우리에게, 한국인에게 산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밝혔다.
 
“우리 (겨레)의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둥지 같은 곳에 형성되어 왔습니다. 산과 함께 살아온 민족이지요. '산에 가지 않으면 근질거린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로 산과 함께 살아온 민족이었습니다. 학교의 교가마다 산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다른 나라와는 달리 애국가 가사에도 산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산 아이덴티티가 강한 민족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산인가? 최 교수는 “나무가 있고 숲이 있고 일정한 높이가 있어야 산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기준은 나라마다 마을마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지간한 것은 다 산으로 받아들였고 산으로 불렀으며, 심지어 섬도 해산이라고 표현할 만큼 산과 함께 해온 민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산의 수는 산림청 통계에는 4,440개 정도로 나와 있으나,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제주도의 산은 어디까지가 산인가라는 질문에도 가장 많은 사람이 제주도 전체가 산이라고 응답했을 정도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념가로 선정되어 제창 여부를 놓고 논란을 빚은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를 인용한 최 교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민족은 산천을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는 흐름이 있으며,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메모리 장치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였고, 산 그 자체가 공간화된 역사이자 형상화 된 민족, 즉 역사와 민족이 얽힌 그 자체”라고 정의했다.

그러니까 산천은 ‘존재를 지속시키는 바탕으로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공공의 가치보다도 더 근원적인 존재’이며, ‘단지 물리적 자연지형만의 산천이 아니라 사상과 정신, 역사와 문화, 삼ㄹ과 생활 등이 얽혀있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나는 자꾸만 산만 찾아 나서는 걸까?- 내 영원한 어머니…" 박두진 시 ‘설악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 산은 어머니였고, 어머니의 품이자 모태였다. 최 교수는 “모악산, 대모산, 불모산, 성모산 등 어미 모자(母)가 들어간 산명이 즐비하다”며 “이는 중국이나 일본, 미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우리나라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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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우리 민족의 산에 대한 정서에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시 몇 편을 더 소개했다.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산자락에 지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 박목월 시 ‘산이 날 에워싸고’ 전문

“산이라 해서 다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다 험하고 가파른 것은 아니다./ 어떤 산은 크고 높은 산 아래/ 시시덕거리고 웃으며 나지막히 엎드려 있고,/ 또 어떤 산은 험하고 가파른 산자락에서/ 슬그머니 빠져 동네까지 내려와/ 부러운 듯 사람 사는 꼴을 구경하고 섰다./ 그리고 높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순하디 순한 길이 되어 주기도 하고/ 남의 눈을 꺼리는 젊은 쌍에게 짐짓/ 따뜻한 숨을 자리가 돼 주기도 한다./ 그래서 낮은 산은 내 이웃이던/ 간난이네 안방 왕골자리처럼 때에 절고/ 그 누더기 이불처럼 지린내가 배지만/ 눈개비나무 찰피나무며 모싯대 개쑥에 덮여/ 곤줄박이 개개비 휘파람새 노랫소리를/ 듣는 기쁨은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 죽일 듯/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더라도/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사람 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 신경림 시 ‘산에 대하여’  전문.

시에 드러난 것처럼 산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런 산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양하다. 그러므로 산은 사람이며, 육근에 비친 대상이자 마음이다.

최 교수는 “사람이 사는 곳에 산이 있다”고 했다. 태어날 때 잘라낸 태를 산에 모시는 전통처럼 산은 생명의 근원을 끌어안기도 하고, 죽어 묻히는 전통처럼 죽음의 안식처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산은 이렇게 태어남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며 우리 민족은 그렇게 산에 접속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역설했다.

그렇다. 최 교수의 말씀마따나 사람들은 때론 산을 하늘로 여겼고(천산), 하늘은 산이 되고, 산은 하늘(신)이 되기도 하였으며, 천산은 다시 용산이 되기도 했다. 지방 고을마다 고을을 지키는 진산이 있고, 진산에 맞춰서 관아 등 공공건물이 배치됐다. 심지어 마땅한 산이 없으면 우리네 조상들은 산을 만들기도(조산) 했다. 그 뿐이랴. 절에 가면 대웅전에 들러 인사만 하고는 다투어 산신각으로 달려가 산신께 치성을 드렸으며, 산의 인간화인 산신은 민초들의 삶에 한 부분이 되었다.

그렇게 산과 우리네의 관계는 산신불이, 터둥지였으며, 자궁이 아이를 배태한 모습을 한 곳에 삶의 터전이 이루어졌다. 산등성이는 땅의 근육과 뼈대와 혈맥이었다.

최 교수는 ‘산은 사람이다’라는 직유로 자신의 강의를 마무리했다. 산의 인문학이 가능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문과 함께…. 

*최원석 교수는? [경상대학교 인문한국(HK) 교수]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고려대 대학원 지리학과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 일본 중부대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경상대학교 인문한국(HK) 교수로 지리산권 문화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풍수와 비보>, <도선국사 따라 걷는 우리 땅 풍수기행>이 있고, 공저로 <한국의 전통생태학>, <지리산과 인문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