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행파(유식학파)가 오늘날의 인터넷을 접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인터넷이 우리의 몸과 거의 밀착된 존재가 되어 있는 오늘날, 기계와 인간의 몸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이 시기에 가상공간, 특히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을 그들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안환기 박사(서울대)가 5월 16일 열린 불교학연구회 춘계논문발표회에서 '유가행파의 눈으로 본 인터넷-식(識)과 가상공간'이라는 논문을 통해 불교학적 입장에서 본 인터넷 공간에 대한 정의를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연구에서도 마음과 인터넷은 무관하지 않다는 보고가 확인되고 있다고 전제한 안 박사는 이 논문에서 현대인과 불가분의 관계가 된 인터넷 가상공간을 '식(識)'이 확장된 곳이라는 입장에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했다.
 
안 박사는 “우리에게 필수품이 된 안경이나 맹인들이 사용하는 지팡이 또는 인공심장이 우리의 몸인지 아닌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색하고 그것은 우리 몸의 일부라고 보아야한다는 견해를 보인 연구와 디지털 기술이 몸의 확장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연구(사이버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는 결국 컴퓨터라는 기계에서 생겨난 가상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규명하고자 한 것과도 연관된다”며 “모든 현상을 식(識)의 관점에서 해석한 유가행파의 견지에서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 가상공간을 ‘식’이 확장된 곳으로 해석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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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행파는 인식기관의 외부에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완전한 인식대상이 있어서 그것을 감관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들을 인식하는 주체에 의해 대상이 해석되었다는 것에 주안점을 둔 불교학파이다. 즉 작용이 생겨나게 되는 계기는 감관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유가행파에 의하면 인터넷에 접속을 하고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 가운데 마음에 드는 장면을 찾아서 그것을 클릭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기관 오부에 인터넷이 놓여 있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계기는 이미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유가행파가 오늘날 인터넷의 가상공간을 대한다면, 가상공간은 ‘식’이 분화되면서 생겨난 것으로서 ‘식’이 확장된 형태를 보인다”고 전제한 안 박사는 “그러므로 가상공간과 우리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우리의 의도에 따라 가상공간이 변화된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는 게 안 박사의 분석이다.

안 박사는 또 인터넷 가상공간이 개인의 인식대상일 뿐만 아니라 타인과 의사를 소통하는 공간이라는 점에 주목, 이런 공간을 유가행파들은 어떤 방식으로 설명할까에도 주목했다.

안 박사는 이어 “유가행파는 인간의 심리작용은 모두 ‘식’에 흔적을 남긴다고 보았고, 그 흔적을 종자로 불렀으며, 우선 언어에 의한 개념적 사유 작용이 저장된 것을 ‘명언훈습종자(名言薰習種子)’, 자아가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가 남아 있는 것을 ‘아견훈습종자(我見薰習種子)’, 욕계·색계·무색계에서 생사윤회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유지훈습종자(有支薰習種子)’라고 일컬었다”며 “이 가운데 명언훈습존자는 뒤의 두 개 종자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유가행파는 인간의 심리작용을 언어의 작용이라고 보고 모든 마음의 작용결과는 명언훈습종자로 불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유가행파는 모든 일상의 세계를 변계소집성이라고 칭했고, 따라서 가상공간 자체가 대상이 영원히 존재하길 바라는 욕망의 소산“이라고 전제한 안 박사는 ”고대 인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인터넷은 이제 유가행파들이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즉 유가행파들이 제시했던 변계소집성의 세계는 이제 ‘식’의 분화로 인해 확장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갈등의 양상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안 박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행파들이 제시했던 변계소집성의 특성, 즉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가상공간은 욕망 때문에 타인을 비방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곳이 되었고, 이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문제를 일으키는 공간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안 박사는 “만약 유가행파가 오늘날 인터넷 가상공간을 접했다면, 명료한 상태에서 인터넷이 의식에 주는 영향을 파악할 수 있을 때 정보의 무분별한 수용도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인터넷 가상공간을 유가행파의 논리를 빌어 식의 확장이라는 시각을 제시한 것이 현대인들이 인터넷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