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석법사 | phoseok@hanmail.net | 2015-05-08 (금) 10:07
정부의 통계를 보면 불교신자가 다른 종교보다 많습니다. 물론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친 기독교는 불교보다 더 많지만. 그래서인지 종교 활동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신병훈련소나 교육관련 부대에서 종교 활동하는 병사들을 보면 불교가 개신교에 뒤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논산훈련소나 각 군의 보충대, 신병교육대 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종교 활동 의무가 없는 자대(自隊)에 배치되면 종교 신자비율이 개신교가 절반을, 그리고 그 나머지를 불교와 천주교가 나누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원인이 무종교자의 상당수가 불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거나, 불교신자가 종교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한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불교신자들이 기독교 신자들보다 법당에 나가는데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런 이유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교가 법당도 부족하고 군승과 법사가 절대적으로 모자란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부전선의 육군 제1포병여단에는 군승이 배치되는 않았지만 모두 3곳의 법당이 민간인 포교사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에 개신교의 교회는 모두 23개나 되고, 이를 군목 1명과 민간성직자인 목사들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19곳이던 것이 최근에 4곳이나 더 늘었다고 합니다. 또 육군 제1공병단도 법당은 한곳이지만 교회는 5곳이나 되고 군종목사가 1명이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오히려 불교신자가 자대에서 25%라도 유지하는 것이 어쩌면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 불교계나 군 불교를 담당하는 종단은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여 법당을 늘리고, 스님은 고사하고 포교사라도 군 법회에 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간간히 이루어지는 군 법당 불사의 대부분이 개인의 신심과 원력으로 계획 없이 진행되고 있는가 하면, 군 법회에 나가는 포교사들 역시 개인의 부담과 수고로 그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군종교구나 종단 차원의 사업은 최근 들어 논산훈련소 법당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군 불교의 수입예산이 불안정한데 지출계획을 잡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수입이 없다고 계획조차 하지 않으면 원력(願力)과 희망(希望)은 어디에서 구합니까? 비록 가다가 중지하는 일이 있어도 후인이 그 길을 따를 것으로 믿고 길을 열어 가야할 것입니다. 일의 선후가 분명한데 ‘법당을 짓는 일보다는 참 불자 양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군 불교에 접근하는 것은 무사 안일한 면피식 대응에 불과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법당이 있고 법사가 있어야 참 불자도 양성되고 불교도 발전할 것입니다.
군 법당을 교회나 성당 짓듯이 하면 큰돈 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법회 못하는 군 법당에 법사 보내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오직 신심과 사명감만으로 이일을 해보니 군 법당 4곳을 새로 짓고, 20여 곳의 부대에 법사를 보내 한 달에 30여 회의 법회를 보는 법사지원 사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간절한 기도와 그 기도에 응하는 부처님의 가피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우리 절집에 돈이 없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전국에 온 사찰이 불사를 안 하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고, 벽에도 모자라 바닥은 물론, 기둥과 서까래까지도 금을 입히는 절이 있는가 하면, 요사와 화장실까지 단청한 절을 보면 그렇습니다. 부처님 뒤에 탱화를 목탱으로 바꾼다고 어마어마한 돈을 들이는 절도 그렇습니다. 공찰 주지하고 나면 너나없이 자기 절을 짓거나, 오피스텔·아파트로 토굴 장만하는 것이 유행인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조계종 포교원에서 양성한 포교사가 수천을 넘는데 법사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런데 현실은 왜 이럴까요? 한마디로, 관심과 의지와 시스템이 없기 때문입니다.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이 땅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난 1백여 년의 짧은 기간에 한국 제1의 종교를 넘볼만한 눈부신 성장을 한 저변에는 군 종교 장악이라는 무서운 의도가 있었습니다. 처음 국군이 창설될 때는 군종이 없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를 지원하던 미국의 끊임없는 요구에 장로였던 이승만 정권이 이를 수용한 것입니다. 그 후 1960년대 말까지 개신교가 군 종교를 장악하면서 군에는 교회와 목사만 존재하였고, 군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교 의식과 교육은 개신교가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군에서 하느님을 알게 된 젊은이가 사회로 돌아가서 다시 교회에 봉사하면서 교세를 넓혀가고, 교회는 젊어지고 초고속 성장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한 때 국가의 3부요인이 모두 기독교인일 정도로 국가 전체를 주무르는 엄청난 기독교 세력의 밑바탕에는 군 종교 장악이라는 무서운 계략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이러한 평가는 개신교 교단이 자체 분석한 결과입니다.
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계기로 1968년에 우리 군에도 군승이 생겼지만 아직도 그 수가 개신교 군목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한국불교의 활로, 군(軍) 불교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