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음경전 가운데 대표적 경전이라고 할 수 있는 <불정심다리니경>과 <관세음보살보문품>, <천수경> 등을 사경(寫經)하고, 제작 기법과 과정을 밝히는 박사논문 <조선시대 관음경전의 사경제작에 관한 연구- 불정심다리니경·관세음보살보문품一천수경을 중심으로>가 원광대 대학원 한국문화학과에서 통과됐다.
 
사경이란 불교의 경전을 널리 선포하고 유통하는 것과 함께 신심을 고취시키고, 축복을 기원하며, 공덕을 쌓는 신앙이며 예술창작 행위이다. 또한 죄업을 참회하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국가의 발전과 중생의 평화를 발원하고 변상도를 그리며 경문을 서사하는 수행이다. 사경은 특히 고려시대에는 법신사리(法身舍利)라고 하여 불상의 복장품이나 탑 봉안품으로 사용하였고, 왕실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매우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숭유억불 치국이념으로 인해 불교가 쇠퇴기에 접어들면서 왕실불교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유지했다.

난원 정향자 씨의 이번 박사 청구논문은 바로 조선시대 왕실발원 사경을 통해 그 맥을 이어온 관음신앙 경전의 사경, 즉 경문과 변상도의 ‘사경’을 통해 복원의 방법과 그 가치와 의의를 조명하여 사경 복원 및 재창작으로 가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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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또 문화재적 가치가 큰 조선시대 사경작품들의 계승적 보전을 위해 가장 유효한 대안이 모사사경(模寫寫經)을 통해 제2의 진본을 제작하는 것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고려시대의 사경작품들 가운데 백천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그 아름다운 빛깔이 변색되거나 탈색되지 않는 감지금니사경(紺紙金泥寫經)이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넘어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고, 조선시대에는 그 전통이 단절되어 있다는 점에 감안, 그간 사경에 사용한 재료와 안료의 성분 분석, 그리고 사용과 기법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재료에 대한 연구, 특히 금의 성분 분석과 금과 아교(阿膠)와의 관계와 금니 제작법에 대한 실험적인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와 함께 필법에 대한 서예학적 분야, 경문과 변상도에 관한 미술사학적 분야, 그리고 경전의 내용과 의미에 대한 인문학적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정향자 박사는 인수대비의 원력으로 조성된 <불정대다라니경>(보물 1108호)의 ‘걈지금니사경’으로의 재현, <관세음보살보문품>의 고려 양식과 조선양식을 혼용한 재현, <관세음보살32응신도>와 <천수경>의 감지금니 사경을 통한 재현, <관세음보살42수진언>의 자색지 진주니 사경을 통한 재현 등을 통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사경작품들의 모사 및 발전적 재현, 나아가 재창조의 길을 열어놓고 있다.

박사논문 본론에서는 사경의 필법을 중점적으로 고찰, 사경이 단순한 서예가 아니라 덕과 인품을 갖춘 연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종합예술이자 학문이라는 점을 구명하고 있고, 사경의 기본 서체가 단정하고 우아한 해서체를 기본으로 전통적인 고려감지금니사경의 현식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 사경에 적합한 실내온도와 습도 등을 경험적으로 추적하고 있다는 점, 안료의 입자 크기를 조사하기 위해 현미경과 광학현미경 등의 현대적 기기를 활용하여 안료의 입자가 작을수록 가장 섬세하고 선명하면서도 아름다운 변상도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 등의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특히 이 논문의 핵심요지는 감지금니사경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금니사용법의 한 방법인 침전법(沈澱法)을 밝힌 것이다. 정 박사는 이 실험을 통해 금니는 아교와 물의 비율, 온도와 습도의 조절, 금니의 정제를 침전과 수비(水飛)를 반복하여 발색(發色)을 선명하게 하고 건조와 보관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주의 사항 및 주요 조건 등으로 나누어 상세하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금니사경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하여 고려 사경의 르네상스를 맞게 하겠다는 정 박사의 원력에 다름 아니다.

사경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가 우리나라 사경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회장의 노고로 기틀을 세웠다면, 정향자 박사의 이번 학위논문은 세계적 평가를 받고 있는 고려 사경 등 우리나라 사경작들의 재현과 재창작을 위한 실기적 기틀을 다진 논문이라 평가할 만하다.

정향자 박사는 “조선시대에 단절되었던 고려감지금니사경이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그 아름다운 빛깔이 변색되거나 탈색되지 않고 찬란하고 영롱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자랑스런 전통이 이번 연구를 통해 시공간적 한계를 넘어 세계성과 보편성을 획득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그 위상을 높이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