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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 허공불은 관람객들 탄성 자아내

김태형 | jprj44@hanmail.net | 2015-04-05 (일) 15:49

‘부석사’하면 가장 먼저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계시지만 사실 무척이나 많은 불상들이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것 중에 공개되지 않은 불상도 있다.


그러나 형상이 있는 불상만이 전부가 아니니 바로 ‘허공불(虛空佛)’이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요즘 같은 봄날 경북도유형문화재 제130호 석탑 중 동탑 부근에서 오전에 안양루를 바라보면 다섯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안양루의 무량수전 쪽 공포 사이가 마치 좌불의 형상을 하고 있어 부석사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신기한 관람 포인트가 되고 있다.


안양루를 중수할 때 과연 이런 계산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선조들의 심안(心眼)에 절로 고개 숙여진다.

 

범종루 아래 동쪽에서 안양루를 바라다보면 마치 허공에 떠있는 듯한 5분의 좌불이 나타난다. 공포와 공포사이의 형체가 무량수전 벽의 색깔과 교차하면서 불상이 있는 듯한 착시현상을 보인다.


지금부터는 부석사에 있다가 사라진 불상들을 알아보고자 한다. 최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부석사에는 금동불상 14점과 금동(청동) 소탑(小塔) 5점, 청동사천왕상 1점 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 불상들은 1918년 4월26일 무량수전 보수 중 대들보와 불단 속과 조사당 등에서 발견된 것으로 본래 불상이 36점, 청동소탑 6기, 청동 말(馬) 1점 등 40여 점이었으나, 1957년 10월 조사에서는 20여점으로 줄어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불상들은 1961년 3월~4월 사이에 19점이 도난당해 현재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이들 불상과 관련된 자료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1994년 발간한 『오가와게이기찌(小川敬吉)조사문화재자료』에 상세히 수록되어 있다.

 

  

1961년 도난당한 무량수전 출토 금동불상들. <출처=국립문화재연구소> 

 

한편 일부 자료에서는 이 불상들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된 것으로 밝히고 있지만 실상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모두 도난당해 사라졌다.

 

당시 사라진 불상들에 대한 자료가 최근 추가적으로 확인되어 이를 정리하고자 한다. 먼 훗날 시절인연이 도래해서 유괴당한 이 불상들이 부석사로 다시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그 제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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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최근 입수된 자료 중에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것이 있어 일부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 자료는 고 황수영 박사님이 1950년대 말 부석사관련 조사 때 작성된 유고들로 그 중에 부석사 중수관련 기록을 밝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부석사의 중수가 19세기 초까지 이어지다가 중단된 후 1884년 보덕각(普德閣)을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미 알려진 ‘무량수전안양루중수기(無量壽殿安養樓重修記)’에서 ‘세재임술유두월일태백산인(歲在壬戌流頭月日太白散人)’의 임술년이 1862년으로 확인되었다.


이와 함께 새로 발견된 자료는 1957년 7월 옮겨 적은 것으로 ‘부석사 범종루 상량기문’인데 범종루를 도광(道光) 23년 계묘(癸卯) 4월 초 6일 작성된 것으로 도광 23년 계묘는 1843년이다. 이 상량기문에서는 3월 초하루에 공사를 시작하여 4월 6일 범종각과 노전(爐殿)을 중수를 마쳤다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자료인 ‘영산전응진전여승료중수기(靈山殿 應眞殿 與 僧寮 重修記)’는 그동안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양보전(兩寶殿)혹은 서보전(西寶殿)이 바로 영산전과 응진전이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다.


이 중수기는 도광 29년 임인(壬寅)년으로 되어 있는데 도광 29년은 1849년 기유년으로 도광 22년이 임인년, 즉 1842년이다. 이 중수기에 따르면 영산전과 응진전, 승료의 규모가 15칸인데 서북쪽 지붕이 동쪽으로 기울어져 기와가 떨어졌으며 이들 전각 안에는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846년부터 시작된 이 공사에는 기와를 무려 7천여 장을 구워 사용했다고 밝혔으며 이 두 공사의 도감은 포운당(抱雲堂) 선활(善活[闊]) 스님이 맡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번 자료의 발견은 보물 제575호 문경 대승사 목조아미타후불탱이 원봉안처가 산내 암자인 극락암의 영산전(혹은 미타전으로도 불림)이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당시목조아미타후불탱이 왜 무량수전으로 이안되어 보관됐는지를 밝히는 중요한 자료다.


(고 황수영 박사님 소장 자료는 성보문화재연구원 허상호 선생이 제공해준 것으로 지면을 통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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