陜川海印寺  합천에 가면 해인사가 있으니
壯麗稱八路  웅장하고 화려해 팔도에서 칭송하네.
肩輿初入洞  가마를 타고 막 골짜기를 들어서면
幽事漸相聚  그윽한 경치가 서서히 모여들지.
湫深若貯汞  연못은 깊어 수은을 담아 놓은 듯하고
窈窕萬象具  온갖 형상들이 아리땁게 갖추어졌네.
樹影錯脛肘  나무 그림자는 팔다리마다 얼크러졌고
山光寫肺腑  산 빛은 폐부까지 드리웠구나.
愛羽鳥頻窺  새떼들 날며 기웃거리는 모습이 아름답고
恃毛獺能泝  수달이 물을 거슬러 오르니 믿음직하여라.
剔幽類夢噩  으슥한 곳을 헤쳐 오를 땐 악몽을 꾸는 듯하고
呌奇競淸酗  괴성을 지를 때는 건주정 피우는 듯하다.
鼯廩頰藏栗  다람쥐는 뺨으로 밤을 물어 와 모으고
蝟載背刺芋  고슴도치는 등 가시로 토란을 찔러 실었네.
俄頃轉譎詭  잠깐 사이에도 사물이 기괴하게 변하니
生疎甚疑懼  너무나 생소하여 의구심마저 이네.
照爛忽衣錦  갑자기 번쩍번쩍 비단옷을 입은 것은
十里擁丹樹  십리 길을 늘어선 단풍나무 숲이로다.
飛霆疈高峽  천둥 같은 폭포 소리가 높은 골짜기를 쪼개고
百泉湧傾注  지천에 깔린 샘물은 용솟아 한데로 쏟아진다.
搏嚙驚相合  후려치고 물어뜯다가 놀라서 서로 합치고
觸鬪卻還赴  부딪치고 싸우다가 물러섰다 도로 내닫네.
水性本柔順  물의 성질이야 본래 유순하지만
犖确石與遇  수많은 험한 돌과 서로 만나면,
不肯一頭讓  한 치도 선선히 양보하지 않아
遂成千古怒  마침내 천 년 세월 동안 거세게 내려오네.
餘湍伏沙鳴  남은 여울물은 모래밭에 엎드려 우는데
幽咽向人訴  낮은 울림은 사람을 향해 하소연하는 듯하네.
不知水於石  모르겠네, 저 물이 저 돌에 대해
有何相嫉妒  서로 무슨 질투가 있는 것인가?
使水不相激  물이 돌과 서로 부딪치지 않는다면
石應無怨忤  돌도 응당 원망하며 거스르지 않으리.
願言石小遜  원컨대 돌도 조금만 양보한다면
水亦流平鋪  물도 평탄하게 퍼지며 흐르리라.
奈何力排爭  어찌하여 힘으로 밀치고 다투어
日夜事喧嘑  밤낮으로 야단법석을 일삼는 것인가?
歷險賴轝僧  가마 떠멘 스님에 의지해 험지(險地)를 지나는데
替擔纔數步  두어 발짝도 못 벗어나 번갈아 메네.
肩騂憐凹筧  붉어진 어깨에 오목하게 패인 홈이 가엾고
巓赭恐破瓠  붉게 물든 까까머리는 박처럼 깨질까 걱정이다.
捧腰喘方短  허리를 움켜쥐며 금방 숨을 헐떡이는데
透背汗因沍  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곧 식었구나.
問爾何所聊  묻노라, 그대들은 무슨 즐거움이 있어
辛苦萬山住  갖은 고생 마다 않고 깊은 산속에 사는가?
雜役供官紙  잡역으로 관가에 종이를 만들어 바치고
餘力織私屨  힘이 남으면 사사로이 신도 삼습니다.
猶將畏過客  오히려 무서운 건 지나는 나그네들이니
犇趨似赴募  관의 부름에 나아가듯 빨리 달려갑니다.
見此心悱惻  이를 보니 마음이 측은해지는데
不忍無控籲  호소할 데 없는 신세는 차마 볼 수 없구나.
換屨覓短笻  짚신을 갈아 신고 짧은 지팡이를 찾았는데
仄逕任顚仆  길이 비탈져서 엎어지고 자빠지네.
畵史入秋山  화공(畵工)이 가을 산에 들어가는데
意匠在遠暮  저물녘의 먼 경치를 그리려는 것이지.
霜林饒丹靑  서리 맞은 숲은 단청을 두른 듯 풍요롭고
冷陽替絹素  차가운 햇볕이 서린 하얀 비단을 바꿔준다.
洞門忽廣坼  골자기 입구가 갑자기 넓게 트이니
百車可並驅  수레 백 대라도 나란히 몰 수 있겠네.
疊樹遠掩映  나무는 첩첩 쌓여 아득하게 숨은 듯 비치고
層閣半呈露  층층 누각은 반만 모습을 내밀었네.
老僧候蘿逕  늙은 스님이 넝쿨 우거진 길목에서 기다리는데
巾衲詭制度  두건이며 장삼의 매무새가 괴이하구나.
慇懃勞遠途  은근한 말로 먼 여정을 위로하고는
合掌成禮數  합장을 올리면서 거듭 예의를 갖추네.
引我入寺門  나를 끌어 절 문으로 안내하는데
眩轉勞眄顧  두 눈을 굴리면서 거듭 곁눈질하네.
巨靈屹當前  사천왕상이 우뚝 내 앞을 가로막으니
手脚實危怖  팔다리가 느닷없이 벌벌 떨려라.
張口裂至目  벌린 입은 찢겨져 눈까지 닿았고
突睛黃金鍍  불거진 두 눈깔엔 황금을 발랐구나.
耳中拔雙蛇  귓속에서 뽑아낸 두 마리 뱀은
蜿蜒若射霧  꿈틀꿈틀 독 안개를 뿜어내는 듯하다.
汗漫擁琵琶  제멋대로 비파를 끼고도 있고
落莫執劍韄  알록달록한 칼 끈을 쥐고도 있네.
努力蹋鬼腹  힘을 써서 요귀의 배를 밟으니
鬼目舌並吐  요귀 놈의 혀와 눈이 모두 튀어나왔네.
楓魖腕鑿落  단풍나무 귀신은 팔이 잘려 떨어지고
竹魈爪回互  대나무 귀신은 손톱이 온통 울퉁불퉁.
覆肩薜蘿襟  승검초 넌출로 엮은 옷깃은 어깨를 덮었고
掩肚虎皮袴  호피로 만든 바지는 배를 가렸네.
乖龍及旱魃  괴룡이랑 가뭄 귀신은
尻角相依附  꽁무니와 뿔이 서로 엉겨 붙었고,
雷公與飛廉  우레 치는 귀신이랑 바람 귀신은
嘴額獨天賦  부리나 이마가 유독 타고난 자질이라.
顚倒竄鞾底  엎치락뒤치락 가죽 신발 밑에 숨어
爬空匝臂股  팔다리를 돌려대며 허공서 허우적이네.
佛殿寒洞天  불전은 깊은 골짜기라 차가운 기운이 감도니
甍桷纔容煦  용마루 서까래만 햇볕이 겨우 드네.
金碧閃相奪  황금빛과 푸른빛이 번쩍번쩍 눈부셔서
視陽自昏瞀  해를 보니 저절로 눈이 침침해지네.
雕窓成菡萏  창문을 아로새겨 연꽃을 이루고
翩翩浴鶿鷺  파닥파닥 가마우지는 멱을 감누나.
連理幷紫蔕  연리화(連理花)는 붉은 꽃받침을 함께하고
比翼結翠嗉  비익조(比翼鳥)는 푸른 목이 하나가 되었네.
妖童弄驪珠  깜찍한 동자승은 여의주를 가지고 놀고
豔女調鳳笯  고운 비구니는 새장에다 봉황을 기르네.
星官從羽衛  칠성(七星)의 관원님들 시위(侍衛)를 거느리고
步雲集瓊圃  구름을 타고 경포에 모여드누나.
玲瓏罷周覽  영롱한 세계를 두루 구경하고 나니
悵然使心斁  서글퍼서 마음이 섭섭해지네.
還如夢中景  마치 꿈속에서 경치를 보면
沈沈常雨雨  어두워서 항상 비 내리는 날과 같고,
又似愁裏饍  시름에 겨워 밥을 먹으면
滿眼不飽饇  성찬이 즐비해도 포식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네.
始知詭異觀  비로소 알겠거니 괴이한 구경은
樂極還無趣  즐거움이 넘치면 오히려 운치가 없구나.
我聞牟尼佛  내 진작 들었노라 석가여래는
鼻眼本醜惡  코와 눈이 본래 추악했다지.
或恐後世人  뒷세상 사람들이 더럽게 여겨
嘔穢不愛慕  애모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輕儇齊梁兒  경박하고 눈치 빠른 제량(齊梁)의 아이들이
私意傅繪塑  제멋대로 화상과 소상(塑像)을 만들었지.
幺麽或如豆  어떤 건 아주 작아 팥알 같건만
前生若可悟  전생도 깨달은 것처럼 만들어 놓았고,
塊然丈六身  우람하기 짝이 없는 장륙불상(丈六佛像)은
一肢可專輅  다리 하나가 수레를 다 차지할 만하네.
箇箇指連坎  감괘(坎卦)처럼 손가락들을 맞대었는데
巨細悉媺嫮  크고 작은 손가락들이 모두 곱구나.
於佛更何有  부처에게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랴
此計儘錯誤  따져 보면 이런 꾀는 모두 잘못이네.
所以尊之者  그렇게 해서 부처를 높이려는 생각이
還自極訿䜑  도리어 극심한 비방을 불러들였지.
紛紛姸蚩間  이러쿵저러쿵 고우니 미우니 해도
慧心應如故  지혜의 마음이랴 응당 그대로겠지.
回廊八十間  빙 두른 행랑은 팔십 칸에 이르는데
蕩蕩藏經庫  넓고 넓어라 장경판고(藏經板庫)여.
漆板明如鏡  옻칠한 판목은 거울처럼 윤이 나고
烹鹽備蟫蠹  소금물에 삶아 좀 스는 걸 대비했네.
委積若凌陰  차곡차곡 쌓은 모습은 얼음 창고 같은데
失目驚瞿瞿  실명한 듯 깜짝 놀라 제대로 보질 못하겠네.
譬如列錦肆  비유하면 비단이 늘어선 가게와 같아
□□□□□  － 원문 빠짐 －
織織比盾干  방패들이 늘어선 듯 가지런히 놓였고
簀簀揷箘簵  댓가지를 꽂아둔 듯 촘촘히 쌓였네.
徘徊試抽看  서성이다 시험 삼아 뽑아 살펴보니
茫然失箋註  주석조차 없어서 도무지 모르겠구나.
光怪時迸發  괴이한 빛이 때로 터져 나오니
五金入鎔鑄  오금이 용광로에 녹아 있는 듯하네.
誰能說乘法  누가 능히 승법을 풀이할 것인가?
無人□蘆渡  갈대배 타고 바다를 건넌 사람 없어라.
步庭不敢唾  뜰을 거닐어도 침도 못 뱉어
粒墜堪拾哺  밥알이 떨어져도 주워 먹겠구나.
除級無封螘  섬돌 틈엔 개밋둑도 없고
瓦縫絶棲羽  기와 이음매엔 새들도 깃들지 않네.
不掃自無塵  쓸지 않아도 절로 티끌이 없어
淨若沐新澍  깔끔하기가 단비에 씻긴 듯하네.
寒風□瑟然  찬바람이 찬찬히 감돌아 부니
百神陰呵護  뭇 신령이 남몰래 지켜주나 봐.
問誰剏此寺  처음에 누가 이 절을 지었는가?
傾國致財賂  나라 힘을 다 쏟아서 재물을 보탰네.
宿昔穿胸僧  아득한 옛날에 천흉의 스님이
浮海常來寓  바다를 건너와 항상 살았다지.
厥像黑如烏  남은 상을 보니 까마귀처럼 검고
崎嶇若老嫗  허리가 굽어 할망구와 같구나.
緬言刻經初  처음 경(經)을 새길 때를 낱낱이 말하는데
荒怪難討□  황당하고 괴이해서 따져 묻기가 어렵구나.
李氏名居仁  성이 이씨고 이름은 거인이란 사람이
媚佛求嘏祚  부처에게 예불하며 큰 복을 빌었네.
家産三眼狗  그 집 앞에 눈이 셋인 개가 생겼는데
愛養如養孺  어린애를 기르듯이 귀엽게 길렀지.
狗去不知處  그 개가 달아나 뵈지 않으니
忽若忘濡呴  갑자기 보살펴 준 은공을 잊어버렸나?
及死到黃泉  나중에 몸이 죽어 황천에 갔는데
乃與神人遌  어떤 한 신인(神人)을 만났다네.
三目亦如狗  그 신인도 개처럼 눈이 셋이라
驚喜潛囑喩  깜짝 놀라 반기면서 몰래 부탁했지.
實感主人恩  주인님 은혜에 크게 감읍하여
冥祐行□寤  가만히 도와 깨어나게 할 터이니,
願刻八萬偈  원컨대 팔만의 게(偈)를 새겨
佛事廣傳布  불사를 널리 전파해 달라 했네.
汗發若夢寐  땀을 쭉 쏟으면서 꿈 깨듯 일어나니
洒然去沈痼  시원스레 묵은 병이 사라졌구나.
親戚謀棺斂  친척들은 관짝을 거둬들일 준비를 하고
鄕隣致賵賻  고을과 이웃에서도 부조를 보냈네.
感激神所言  신인이 한 말에 감격하여
全經剞劂付  모든 불경을 판목에 새기었지.
此事誠荒唐  이 일은 진실로 황당하지만
邃古非可遡  아득한 옛날이라 거슬러 따질 수 없구나.
且令眞有是  설령 진짜 이런 일이 있다고 해도
儒者所不措  유자(儒者)인 내가 마음에 둘 게 아니지.
所歎十三經  탄식을 나오는 것은 십삼경의 일이니
遠購燕市騖  저 멀리 연경(燕京)에 가서 사 오질 않는가?
彼能一人力  저이들은 한 사람의 힘만으로도
刻板千載固  천년토록 경판을 굳세게 전했구나.
朝上學士臺  아침에 일어나 학사대에 올라 보니
文昌如可晤  문창후(文昌侯)를 만날 것도 같구나.
此子喜神仙  이분이 신선 세계를 좋아하여
終身不再娶  평생 장가를 두 번 안 들었다네.
得道忽飛昇  도를 얻어 갑자기 하늘로 오르니
雙履遺林步  신발 두 짝을 숲 언덕에 남겨두었네.
軒轅雖騎龍  황제(黃帝)가 비록 용을 타고 승천했다지만
喬山尙有墓  교산에는 아직도 무덤이 있지.
暝宿倚禪榻  선탑(禪榻)에 기대어 하룻밤을 묵으니
初月缺蟾兎  초승달엔 이지러진 두꺼비와 옥토끼.
金塔鳴風鐸  금탑에선 풍경이 땡그랑 울리고
玉燈貫虹炷  옥 등잔엔 심지에 무지개가 걸렸네.
淸梵搖魚□  청아한 범패 소리는 어고(魚鼓) 흔들고
虛籟發鈞濩  바람 소리는 일어나 고루 흩어진다.

-박지원의 <해인사(海印寺)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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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實學) 시대에 북학파(北學派)를 대표했던 문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이름을 모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고희연(古稀宴) 축하 사절 편에 중국에 가서 북경(北京)뿐만 아니라 열하(熱河)까지 다녀와 지은,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 여행기인 󰡔열하일기󰡕에 이르면 그의 도도한 필력과 장쾌한 상상력 앞에 절로 무릎이 쳐질 노릇이다. 당대 권력자들의 현실 대응에서 보여주는 이중성과 허례허식에 젖어 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허구성을 예리하게 폭로하고 야유한 <양반전>에나 <허생전>, <호질(虎叱)> 등은 조선 후기 한문단편(漢文短篇)의 백미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박지원은 누가 뭐래도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네 명의 소설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시습의 한문단편집 <금오신화(金鰲新話)>에서 시작된 조선조 소설사의 전통은 허균이 최초의 한글 장편소설 <홍길동전>을 지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열었고, 이를 김만중은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이라는 한글 장편소설로써 한 단계 성숙시켰다.

그런데 박지원에 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진다. 그는 선배들이 일구어놓은 한글 장편소설의 전통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김시습의 구각(舊殼)으로 돌아가 한문단편에 집착한다. 작품에 담긴 의의나 완성도는 차치하더라도 박지원이 호탕한 필력을 바탕으로 한글 장편소설을 창작하는 데 매진했더라면 우리 소설사는 훨씬 일찍 근대 한글소설이 꽃 피는 체험을 했을 것이다. 이 점은 박지원이 일구어놓은 문학적 성과와는 관계없이 대단히 애석한 현상이다.

그런데 이들 네 명의 소설가들에게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불교에 대한 대단히 호의적이었다는 점이다. 김시습은 반생을 승려로 보냈고, 허균의 불교 인식은 수준이 녹록치 않았다. 김만중은 불교의 무상관(無常觀)을 잘 소설화시켰고, 󰡔열하일기󰡕를 읽어보면 청나라의 문화 가운데서도 불교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은 쉽게 드러난다.

박지원은 좋은 산문은 많이 남겼지만 한시 창작에는 열성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모든 장르에 다 뛰어날 수는 없으니 아쉬워도 인정해야 할 일이지만, 그에게는 <해인사에서>라는 무려 198구에 이르는 장편 5언시가 있어 그의 불교에 대한 인식과 지향점을 살필 수 있다.

길이를 보면 짐작하겠지만 이 시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워낙 소설을 잘 쓰는 그였는지 시도 소설적인 구성으로 써나갔던 것이다. 대강 그 흐름을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속세에서 해인사로 올라가는 여정을 노래한다. 기이한 폭포나 거센 물줄기 등 아름다운 풍광도 노래하지만 과객들을 실어 나르느라 고생하는 스님들의 고충도 대변한다. 또 관가의 이런저런 물품 차출에 신음하는 현실도 지적한다. 이어 노승이 마중 나와 경내로 들면서 사찰의 규모며 사천왕상의 무시무시한 형상에 묘사가 이어진다. 한편 부처의 형상이 누추하게 생겼다 하여 보기 좋게 뜯어고친 중국인들의 한심한 작태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지혜로운 마음을 본받지 못하고 외형에만 얽매인 태도를 질타하는 것이다.

역시 해인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팔만대장경이다. 장경각의 당당한 모습에 감탄하고 경전을 살피면서 느끼는 경외의 마음, 또 이거인(李居仁)과 눈이 세 개인 개와의 인연을 서술한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국난을 이겨내려 했던 고려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 짐짓 유자(儒者)임을 자처하면서 판단을 유보하지만, 유가 경전인 십삼경(十三經)조차 중국에 가서 구입해야 하는 현실을 빗대 선비들의 위선을 은근히 나무란다. 신선 세계로 가버린 최치원(崔致遠)의 고사를 반추하면서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시인의 느긋하고 상쾌한 마음을 읊는 것으로 작품은 대미를 거두어들인다.

법보사찰 해인사의 장엄한 모습과 가치가 잘 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