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오전, 종로 탑골공원 일대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연등을 든 원경 스님(원각복지회장, 심곡암 주지)이 거리 행진을 하며 울리는 소리였다. 보명화 심곡암 신도회장과 강위동 후원회장, 자원봉사자, 원각사 신도들도 함께 했다. 이들은 ‘원각사 무료급식소를 재개했다’는 피켓을 들며 어르신들을 향해 거리 홍보에 나서고 있었다. 어르신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물끄러미 피켓을 바라보자 이들은 “점심 드시러 오시라”고 안내했다.

스님 일행이 원각사지십층석탑을 탑돌이하고 돌아오자 원각사 건물 인근으로 삽시간에 어르신들이 모여들었다. 잠시 후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줄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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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홍보 행진에 나선 원경 스님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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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 스님이 원각사 인근을 찾은 어르신에게 "오셔서 점심 드시라"고 권유하고 있다.

이날 메뉴는 미역국과 나물비빔밥, 두부부침. 원각사 ‘터줏대감 노보살’로 불리는 이여여심(84) 씨 등 7명의 신도가 오전 8시부터 준비한 음식이었다. 원경 스님은 앞치마를 두르고 이들에게 밥을 손수 퍼주며 “많이 잡수라”고 덕담했다.

18평 남짓한 급식소에는 이날 하루 200명에 달하는 어르신이 몰렸다. 심곡암과 원각사 신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의 급식과 배식, 설거지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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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공양 중인 어르신들에게 많이 드시라고 덕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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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식 중인 원경 스님과 강위동 후원회장(스님 오른쪽 두 번째) 및 자원봉사자들.

22년 간 끼니가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큰 위안이 됐던 서울 종로 원각사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원각사는 전 주지 보리 스님의 원력으로 1994년부터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150~200명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해왔으나 올 2월 보리 스님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지난 3월 2일을 마지막 식사로 대접하며 문을 닫게 됐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5년 간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해 온 신도 강위동 씨로부터 전해들은 북한산 심곡암 주지 원경 스님은 당초 들어올 세입자에게 위약금을 지불하면서까지 원각사 무료급식소 재개를 위해 힘을 쏟았다.

원경 스님은 “하루 한 끼로 연명하는 어르신들이 다시 줄 서 세 번 밥을 먹으며 하루를 나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다”면서 “보리 스님의 뜻을 잇고 이들의 허기를 달래주기 위해 급식소를 재개하게 됐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은 제도권 안에서 수혜를 받을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에 계신 이 사회의 그림자로서 우리가 함께 감싸 안고가야 할 분들”이라면서 “이곳이 없어지더라도 수혜자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아픔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급식을 통해 어르신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을 상실하지 않도록 마음 쓰고 정서적 공감을 통해 희망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기존의 보리 스님을 모시며 신행활동을 해 온 100수에 가까운 노보살들과 묵묵히 일해 온 자원봉사자들, 후원자들의 공덕이 없었다면 원각사의 자비행이 20여 년 이어질 수 없었다며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북한산 심곡암에서 17년째 산사음악회를 개최해오며 ‘산사음악회의 개창자’로 불린 스님은 원각사 인근에 문화예술인을 초청해 대중과 함께 하는 자선음악회 개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시인과 에세이집을 펴내는 등 문화포교에도 앞장서 온 스님은 신행단체가 이곳에서 모임을 갖기를 원한다면 언제든지 문화 공간으로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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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에서 식사 중인 어르신들.
 
스님은 “소외된 분들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이곳뿐이기에 이곳을 잘 운영해야 한다”면서 지속성 확보 방안을 앞으로의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삼았다. 한 달에 유지비용만 1,500만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이지만, 제도적으로 사회복지재단 산하로 등록이 될 수 없는 상황이라 강위동 씨를 후원회장으로 두고, 다양한 후원자를 찾으며 안정적 재정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이다. 스님은 앞으로 100일 간 원각사에서 100일 기도를 하며 직접 어르신들을 만나 뵙고 이들의 정서 파악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스님을 뒤에서 묵묵히 지원한 강위동 후원회장은 “2월 7일 민족의 얼이 살아있는 이곳이 중단되고 커피숍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15년 간 존경해 온 스님을 통해 급물살을 타며 일이 추진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한편 원각사는 그동안 30개의 자원봉사단체들이 6~10명씩 팀을 이뤄 매일 봉사에 참여해왔으나 현재 15팀이 남고 4팀이 새로 들어와 아직 11팀이 부족해 자원봉사와 후원이 절실한 상태다.

후원 및 봉사 문의 02-762-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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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급식소를 찾은 어르신들이 1층 계단을 지나 건물 밖 멀리까지 줄지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