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명심(陸明心, 1932~ ) 서울예대 명예교수. 그는 ‘우리나라 사진의 살아있는 역사’로 일컬어지는 원로 사진가다. 집안의 대(代)를 이어야 한다는 부모(조부)의 성화를 이기지 못한 스님(父)의 아들로 태어나면서 태생적 불연(佛緣)을 가진 그는, 홀어머니 슬하에 자라나면서도 숙명처럼 출가를 꿈꿨다. 나이가 30대 중반이 가까워질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말없이 순종적인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뤘고, 아내가 혼수품으로 가져온 카메라와 만나면서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사진가의 길을, 무려 반세기 이상 걷고 있는 중이다.

팔순을 훌쩍 넘긴, 또 미학(美學)에 정통한 교수로서 대한민국 사진이론의 기틀을 다진 석학인, 동서양의 철학을 두루 섭렵한, 그리고 불교에 또한 깊은 조예를 가진 그가 경기도 용인의 비구니 사찰 화운사에서 개설하는 ‘부처님의 생애’ 강좌를 수강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듣고는 한번은 꼭 만나보고 싶다는 마음을 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제법 맵던 지난 3월 15일, 수강신청을 위해 육명심 교수가 절을 찾는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용인 화운사로 달려갔다. 원로 사진가의, 사진이 아닌 삶의 여정과 불교에 얽힌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다. 

크게보기

원로사진가의 첫 인상은 따뜻했다. 매스컴에서 본 모습 그대로 멋들어진 콧수염에 온화한 눈빛이 인상적이다. 마침 점심때여서 자연스럽게 화운사 주지 선일 스님과 함께 점심공양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직접 뵙게 되어서 영광이라며 인사를 드리자, 놀랍게도 기자의 이름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며 반색을 하신다. 첫 만남이라 어색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이 순간 훌쩍 사라졌다. 

육명심 교수는 불교매체의 기자임을 의식한 듯 동남아 불교권 국가를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지중한 불교인연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미얀마에 가면 텔레비전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이 많아요. 그래도 그곳이 그렇게 편해. 미얀마에는 두 번 갔다 왔어요. 라다크에도 갔다 왔고, 내몽골도 다녀왔습니다. 제가 이 나라를 찾아간 이유는 불교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불교사진을 찍을 생각입니다. 사실 화운사 선일 스님의 ‘부처님 생애’ 강의를 수강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런 생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빠알리어 전공자인 스님의 강의를 통해 부처님의 생생한 모습, 인간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생생하게 느껴질 때, 신이 아닌 인간으로 내 가슴 속에 다가와 하나가 될 때 불교사진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육 교수는 연세대 영문과 나와 명문사립 배재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을 했다. 사진을 시작한 것도 배재고 교사 재직 시절,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난 원래 장가갈 생각이 없었지. 그런데,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났는데, 영 말이 없더라고. 말은 안 하고 눈으로 말을 해버려. 그래서 관심이 더 갔어요. 그래서 나중에 단독으로 만났지. 그런데도 말이 없어. 그런데 이상하게 난 그게 편했어요. 마음이 편하게 가라앉고. 그날 서너 시간을 서로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 아주 편한 거예요. 그러고 난 후 얼마 후에 3번째로 또 만났지. 그날 그 자리에서 ‘당신하고 나하고 결혼하자’고 청혼을 했어.”

육 교수가 아내를 만난 지 작년에 꼭 50주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내는 지금도 여전히 말수가 적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집사람이야말로 머리 깎고 스님이 될 만한 여자라는 생각이 든단다. 부부는 이제껏 토닥거리며 싸운 적도 없고, 말도 많이 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고 있다.

“난 사실 마누라한테 꼼짝 못해. 거기엔 이유가 있어. 마누라는 설사 자기의 의견에 맞지 않더라도 나를 따라와 주기 때문이에요. 정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꼭 해야 하겠느냐?’고 묻는 정도가 고작이거든. 그것도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신이 꼭 원하면 싫어도 동의해주겠다, 뭐 그런 거지. 그러니 꼼짝할 수가 있겠어요? 하하”

크게보기

육 교수는 오래 전 불교텔레비전 출연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 이계진 아나운서가 MC를 보던 프로그램이었는데, 방청석에는 학교 제자들이 있었다. MC가 방청객 제자들에게 평소 교수님께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하니까 한 제자가 일어나서 물었다. “교수님은 입만 떼면 사모님 자랑인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라고. 그때 그는 “그래 내가 3불출이 아니라 300불출이다”라고 답했다. 원로 사진가의 유별난 아내사랑은 시나브로 불출이 아니라 부러움으로 다가온다.

육 교수는 ‘명심’이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기생 이름 같아서 참 싫어했던 ‘명심’이라는 이름이 평생 지기(知己)였던 이원섭 선생으로부터 설명을 들으면서 갑자기 좋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날 시인이자 학자였던 이원섭 선생과 함께 도봉산을 올랐는데, 이원섭 선생에게 ‘명심’이라는 이름이 아버님께서 지어준 이름이라는 설명을 해주자 “그 이름이 참 좋은 이름”이라고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이원섭 선생이 밝을 명자(明), 마음 심자(心), 즉 명심은 <화엄경>의 ‘명심성불’에서 따온 말이라고 알려주셨어. 여기서 심(心)은 마음이 아니라 ‘근본 심자’로 ‘근본을 밝히라’는 뜻이라고 가르쳐 주시더군. 그 때 비로소 내 이름의 진가를 알게 되었지요.”
 
육 교수의 불연(佛緣)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걸레 중광 스님과의 인연이야기, 수덕사의 법장 스님, 수덕사 방장 원담 스님 이야기, 그리고 원담 스님으로부터 법영(法永)이라는 법명을 받았던 이야기 등등 이야기가 흐르는 물처럼 줄을 잇는다.

시종 여유만만, 편안하게 말씀을 이어가던 선생이었지만, 막상 아버지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가가 가늘게 흔들렸다.

“우리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법주사에서 사미승을 했던 분이에요. 아버님은 3형제 중 막내인데, 큰 형님이 폐결핵으로 돌아가셨고, 둘째 형님은 딸만 있어서 대를 못이었어. 알다시피 옛날엔 아들 없으면 큰일이었잖아. 그래서 조부께서 절에 있던 우리 아버님을 불러서 나를 잉태하게 한 거라.”
 
아버지에 대한 육 교수의 기억은 아삼하다. 7살 때 절에서 괘종시계와 목탁, 표주박 등 3개의 물건이 아버님의 유품이라며 집으로 왔는데, 아직 어렸던 터라 그것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깨버리거나 잃어버렸다.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크게보기

“우리 아버님이 어릴 적 겁이 많았다고 그래. 한 밤에 오줌이 마려워도 무서워서 바깥에 나가지 못할 정도였는데, 한번은 오줌을 방안의 화로에다 누다가 화롯불과 재가 폭발하듯 날아올라와 난리법석이 났었던 적도 있었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절로 가더니 그 많던 겁도 없어지고 사람이 180도 달라졌더라고 할아버지가 말씀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는 아버님 이야기를 거의 안 했어요. 한이 많았던 탓이지. 애 하나 덜렁 만들어 놓고 평생 나타나지 않았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 사실 난 출가를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장가도 늦게 간 거거든. 한 번은 어머니에게 출가의 뜻을 비치자 우리 어머님 반응은 ‘너마저?’였어요. 도저히 출가를 할 수가 없었지. 우리 어머니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53세에 돌아가셨어. 하도 한이 많아서 오죽하면 기독교로 전향해버렸다니까.”

육 교수는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 남매를 두었다. “대는 이었지”라며 활짝 웃는 미소 속에 80이 넘은 고령인데도 천진한 기운이 남아 있다. 

“하여간 난 절에만 오면 좋아. 이상하게 그래. 티베트 갔을 때도 그랬고. 정년퇴임을 한 후 17년이 되었는데, 퇴임하면서 결심한 것이 마지막으로 수행을 열심히 하자는 거였어요. 그래서 원찰을 정하려고 했는데 참 어렵더라고. 한 20년 전에 봉화에 각화사라는 곳에 가봤는데, 그때 그곳에서 선풍이 일어났었지. 나도 신심이 나서 소장하고 있던 우리나라 국보급 민화 호랑이 그림을 그 절 산신각에 기증하기도 했어. 그런데 얼마 안 가서 선풍이 싹 꺼져버리더라고. 몇 년 후에는 분쟁도 일어나고. 기운이, 그 좋던 기운이 싹 사라졌어요. 오늘 여기 화운사에 와서 이렇게 훌륭한 선일 스님도 뵙고 그랬으니, 앞으로 원찰을 화운사로 해볼까? 하하. 그렇지만 한 번 실패를 했으니 신중하게 결정해야겠지.”

비록 원찰은 정하지 못했지만, 육 교수는 원찰 아닌 원찰을 이미 가지고 있다. 퇴임 후 마련한 역삼동 소재 한 오피스텔에서 17년 동안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12시까지는 전화도 안 받고 수행한다. 그러니까 2시 45분 기상해서 3시부터 새벽수행을 하고 아침식사 전에 양재천변을 포행한다. 오피스텔에 8시 이전에 출근해서 12시까지는 수행의 연속이다. 수행이 끝나면  오피스텔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채우고 1시부터 사진 관련 책을 보거나 불서, 철학서적, 종교 관련 서적 등 인문학서를 읽는다. 오후 4~5시에 퇴근해 집에 가서는 9시에 자고 다시 새벽에 일어나 수행을 하고 오피스텔로 ‘출근’하는 수행일과를 여태껏 빠뜨리지 않고 지키고 있다. 

“어쩌면 스님들과 똑 같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지. 나는 내생에는 꼭 출가해서 스님이 될 거야. 그리고 금생에는 마지막으로 불교사진을 찍을 계획을 세웠어. 티베트도 그래서 찍은 것이에요. 이제부터는 우리나라 절을 찍을 차례지. 하여튼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 주셔야 돼.”

그렇다고 무작정 불교사진을 찍을 생각은 없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하고, 수행정진을 통해 사물과 통하는 경지에 닿아야 사진을 찍을 생각이다. 불교신문과 인터뷰 한 기사를 보고 수덕사에서 사람을 보내 수덕사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지만, 아직 가지 않고 있는 이유도 스스로 준비가 덜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덜커덕 가서 셔터를 눌러댄다고 사진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서로 좋아지고 통하는 것이 먼저이며, 그래야 사진도 잘 찍힌다는 것이다. 선생은 “그런데 오늘 화운사 스님들 뵈니까 아주 오래 안 거 같다”며 조크를 던진다.

“내가 오늘 화운사에 처음 왔거든. 화운사 스님들을 뵈니까 좋은 인연일 것 같아요. 특히 신격화한 부처님, 그래서 우리네 중생과 멀어진 부처님이 아닌 생생하게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부처님을 선일 스님의 안내로 만날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맨 앞줄에서 열심히 배울 테니까 필기 안 한다고 야단치지는 마세요. 원래 내가 필기 보다는 듣기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서…”

크게보기

육 교수의 이야기보따리는 그야말로 청산유수처럼 흐른다. 오랜 만에 마음에 드는 절접에 찾아오니 신바람이 나신 모양이다.

“대학 시절에 나는 노장 사상, 불교, 유교를 환히 꿰뚫어 아셨던 이화여대 교목 김흥호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 이화대 교목이셨지. 나는 영문과 학생인데도 철학과에 가서 무려 4학기를 김흥호 목사의 강의를 들었어. 그만큼 푹 빠져든 거지. 그 분은 거의 한 소식 하신분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찾아가서 교수님에게 ‘한 소식 하신 분’ 같다고 했더니, ‘한 소식이 뭡니까?’라고 되물으시더군. 그리고 또 한 분. 변선환 목사도 나와 매우 가까웠던 분이에요. 평생 지기지우였지. 그는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불교를 가지고 논문을 썼는데 이기영 박사와도 교류를 했습니다. 그 친구가 불교를 너무 좋아하셔서. 감리교 신학대 학장을 하던 중에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했다가 쫓겨나고 말았지. 쫓겨난 후 경동교회에서 설교를 한다고 해서 내가 갔었어요. 얼마나 감동적인 설교를 하던지….”

당시 변선환 목사가 경동교회에서 한 설교는 편협한 기독교계에 대한 일대 할이었다. 그의 설교에 정통 기독교인들은 열광과 지지를 보냈다. 육 교수가 전하는 변 목사의 설교 요지는 이렇다.
 
“태양을 어떤 개인에게 준다고 해서 개인이 태양을 사유할 수 있는가? 태양을 어떤 종족, 나라에 준다고 해서 소유할 수 있는가? 하물며 하나님을 어느 하나가 독점할 수 있는가?”

육 교수는 변 목사의 설교를 대단한 법문이라고 시종 지칭했다. 그리고는 김흥호 목사, 변선환 목사와 같은 열린 석학들을 어릴 적부터 만난 자신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18살에 변 목사를 만나 지기지우가 되었고, 대학에서 김흥호 목사를 만났고, 김 목사의 소개로 다석 유영모 선생을 만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흥호 목사는 ‘양복 입은 도인’으로 알려진 다석의 제자였다.

“어느 날 김흥호 목사가 수업 끝난 후 나를 데리고 세검정으로 갔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있는 어느 작은 집에 갔는데, 짱구머리를 하고 있는 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시더라고. 이분이 바로 다석 선생이라면서 김 목사가 인사를 드리라고 해서 큰 절을 했다. 김 목사가 나를 가리키면서 ‘이 사람을 저의 뿌리이신 유영모 선생님께 인수인계하려고 데리고 왔습니다’라고 하시더군. 그래서 그 문하에서 노자를 공부했지. 나는 이렇게 인연이 아주 좋았어. 20대부터 사람 복이 많았지. 그 덕에 그 때 이미 종교의 벽을 넘었지.”

육 교수는 스님 중에는 호진 스님이라는 분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직접 만나 뵙지는 못했지만 호진 스님이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글을 쓴 것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육 교수는 지금도 호진 스님의 글을 찾아 읽는다. 이유는 부처님을 있는 그대로, 한 분의 인간으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육 교수는 이어 경봉 스님과의 인연 이야기도 들려준다. 경봉 스님에게 차를 배웠다며, 불가의 인연이 상당함을 은근히 자랑한다.

“내 불가의 인연이 어디까진가 하면 양산 통도사 경봉스님이 쓰시던 찻잔 2개를 가지고 있을 정돕니다. 하하. 한 번 내 오피스텔에 오시면 그 잔에 차 한 잔 내 드릴께.”

극락암을 자주 찾았던 육 교수는 그 인연으로 경봉스님의 제자 명정 스님과도 인연이 있다. 명정스님이 몇 해 전에 경봉차를 다시 살려야겠다는 원력으로 경봉차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때 경봉스님이 사용하시던 다구가 차회 시연장에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극락암에서는 이 다구를 신주단지 위하듯이 소중히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경봉스님이 사용하던 찻잔 2개나 가지고 있으니 예사롭지 않은 인연인 것만은 분명하다. 

“살다보면 사람관계가 제일 중요해요. 이 또한 불교의 가르침이지. 나는 사람을 보면 ‘와 이 만남의 인연이 어떻게 펼쳐질까’ 늘 궁금해요. 부처님 말씀에 연기법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누구와 만남이라는 것, 이것이 연기법이라고 생각해요. 연기법이 다른 게 아닙니다. 오늘 화운사에 와서 스님도 만나고 이름으로만 알던 기자도 만나니까 기대감이 넘칩니다. 앞으로 이 인연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까? 하는 기대죠. 멋있게 우리의 만남을 펼쳐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게 삶의 발자취더라고요. 만남이 서로 간에 어떻게 좋은 관계로 이어가는 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참 불교 좋아하거든. 정말로 살아 있는 가르침이에요. 그러니 내 인생에 불교는 아주 대단한 것이지.”

육 교수가 이번에 선일 스님 부처님 생애 강의를 들기로 결심한 이유도 분명하다. 선일 스님을 향해 수강신청을 한 이유를 설명하는 육 교수의 눈빛이 진지하다.

“톨스토이는 대문호이자 착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성경에서 4복음만 믿었던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이후는 다 제외했어요. 부활이니, 승천이니 그런 것들은 다 유보했다는 말이지요. 톨스토이는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철저하게 크리스천으로 살았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톨스토이가 그랬던 것처럼 부처님이 어떻게 사셨을까가 몹시 궁금해. 신화적인 것 말고, 정말로 우리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런 부처님의 모습이 좋은 것이지. 평상심 속에서 참다움이 있다고 하잖아요. 이런 관점에서 부처님의 생애를 공부하고 싶어서 오늘 화운사로 와서 스님께 인사를 드리는 겁니다.”

저명한 학자이자 우리나라 사진의 대부인 육 교수의 말을 들은 선일 스님이 4월부터 시작되는 부처님의 생애 강의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묵묵히 차를 내어주시던 스님의 힘 있는 설명 속에 내공이 느껴진다. 

크게보기

“제가 강의하는 부처님 생애는 조금 다를 거예요. 원전을 공부하지 않았다면 다른 분들이 말하는 부처님 생애와 같을 거지만 말이죠. 저는 대승에서 말하는 부처님 생애를 보면서 신화적인 이야기로 들었어요. 대승에서는 부처님을 전지전능한 분으로 그리고 있잖아요. 그런데 빠알리어 경전을 공부하면서 부처님이 정말로 인간으로 다가오더라고요. 당신이 당신 생애를 말씀하시고, 또 제자가 스승의 생애를 말하고, 그리고 재가자가 부처님의 생애를 이야기하는 것이 있는데, 저는 이것을 구분해서 읽어나갈 거예요. 부처님께서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같이 공부해보자. 또는 제자들이 보는 부처님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등 이런 취지로 부처님 생애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선일 스님은 우리나라에서도, 유학을 했던 인도와 스리랑카에서도 오직 공부하는 것 이외에 거의 돌아다니지를 않았다. 학교와 도서관, 숙소를 오가는 심플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경에서는 자유자재로 다니지 않은 곳이 없다. 선일 스님이 공부하는 동안 느낀 부처님은 항상 내가 지금 여기서 만나는 부처님이셨다. 부처님은 알면 알수록 이런 분처럼 되어야지 하는 모델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기쁨이 생기고, 기쁘니까 나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일어났다. 부처님을 온전히 느끼는 이것이 바로 정진으로, 즉 위리아를 갖게 하더라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자꾸 부처님을 따라하게 되더라고요. 바로 이것, 이 느낌을 불자님들께 전하고 싶어요. 내가 많이 아팠을 때, 부처님께서 웨살리를 떠나시면서 내가 이곳 웨살리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라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픔을 같이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셨다는데 정말 그랬을까는 늘 제겐 화두였지요. 이것이 경 어디에 쓰여 있을까? 궁금했어요. 그런데 이 내용은 붓다께서 당신이 당신의 어렸을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신 말씀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는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부처님의 이야기를 할 때에만 나옵니다. 저는 빠알리 원전을 직접 읽으면서 이것을 알았어요. 당신이 깨닫고 나서 옛날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지 이것은 경 어디에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사실 이것은 제가 경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경을 공부하는 자세는 마치 노인들이 호두를 손에 쥐고 하루 종일 놀듯이 담마를 하루 종일 갖고 노는 것이에요. 이것이 곧 수행이고 정진이기도 하고요. 이런 자세로 부처님 생애를 강의할 예정이에요.” 

그렇다. 깨달은 자가 보는 것과 범부가 보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부처님께서 당신의 생애를 보는 것, 그리고 제자가 보는 것, 또 재가자가 보는 것을 각각 다르게 추려내서 공부해보자는 것이 선일 스님의 부처님 생애 강의 계획이다. 빠알리 경전에 나오는 내용만으로 부처님의 생애를 생생하게 구성해보겠다는 것이다. 선일 스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제 경우도 가급적이면 신화적인 요소가 거두어진, 인간적인 붓다, 인간붓다를 알고 싶었습니다. 빠알리 원전을 읽으면 이것이 참 생생하게 다가와요. 경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나도 등이 아프다’고 말씀하셔요. 또 ‘나도 이제 80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80년 된 몸뚱이가 낡은 수레가가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하시지요. 참 인간적인 모습이지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은 똥도 안 누시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이에요. 부처님께서 ‘이런 데서 공부하면 똥 누는 것도 편하다’는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부처님이 펄펄 살아서 내게로 다가오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수행해본 사람이라면 이 말씀의 간절함을 누구나 알 수 있거든요. 부처님의 말씀 하나 하나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간절한 외침인가를 부처님의 생애를 강의하며 온전히 드러낼 생각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이야기들의 출전을 밝혀 드릴게요.”

선일 스님의 이번 강의에 대한 설명을 경청한 육 교수의 대답은 “아주 잘했다. 이번에 강의 수강신청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였다. 구체적인 존재상황과, 거기에서 모든 의미나 가치가 창출되는 것이라는 당신의 평소 소신을 선일 스님이 그대로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원로 교수에서 수강생의 신분이 된 육 교수가 스님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스님, 그런데 저는 원래 강의시간에 필기를 안 합니다. 대신 부지런히 듣겠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웬 늙은이가 맨 앞에 앉아서 적지도 않고 듣는다고 야단치지 마세요. 사실 나는 교수시절에 학생들에게 시험도 잘 치르지 않았어요. 대신 학생들에게 질문하라고 했지요. 열심히 읽고 와라, 열심히 읽으면 질문이 절로 나온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죠. 그러니까 내 강의는 더 큰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시키는 것이 내 핵심이었습니다. 지식을 깨우쳐서 지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하여간 야단은 치지 마세요.”

육 교수의 강의론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니까 활용하는 것이죠. 오직 우리가 공부하는 것은 방법론일 뿐이에요. 제가 우리나라 사진이론의 개척자입니다. 그런데도 시험을 치지 않았어요. 왜냐. 직관이 주요하다는 것을 대학시절부터 절감했기 때문이죠. 지식교육에서 지혜교육으로 한 단계 나아가야 합니다. 인생? 그거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면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열심히 살면 왜 사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따위의 질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모든 교육이 그렇습니다. 불교적인 세계는 더 그렇다고 생각해요. 김응호 교수에게 논어를 배울 때 첫 장의 삼락(三樂)을 배우면서 너무나 기뻤어요. 사실 진정한 기쁨은 카라일과 에머슨의 만남처럼 대화도 없이 멋지게 만나는 것이거든. 삼락? 말귀 알아듣는 놈 가르칠 때의 기쁨, 참 진리의 세계를 접했을 때의 가르침, 참 벗이 찾아왔을 때의 기쁨 이거 기가 막힌 것이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카라일과 에머슨의 만남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이심전심 통하고 있었다. 노 교수의 교육론에 선일 스님도 맞장구를 친다.

“한국에서 배울 때에는 대반열반경의 대반이 무슨 뜻인지 도저히 몰랐어요. 큰 쟁반이 무슨 뜻인가? 반열반은 또 뭔가? 하여간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빠알리어를 공부하고서야 그 뜻을 알았습니다. 아하, 큰 완전한 열반이라는 뜻이구나, 하는 것을 안 것이죠. 빠알리어를 공부한 후로는 한문, 논어 등 기존에 있던 지식들은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새로운 것이 들어오니까 지난 것은 다 가라앉더라고요. 저는 늙어서 빠알리 경전을 읽으면서, 음~ 맞아. 맞아. 부처님 가르침이 어쩌면 이렇게 대단할까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육 교수는 작년부터 노자, 장자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늙으면서 생각의 평수를 저 하늘 끝까지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냈기 때문이다. 호수처럼 깊고 넓은 고전을 읽으면서, 서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책들이 얼마나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있는지 새삼 절감한다고 털어놨다. 육 교수는 불교에 대해서도 한 마디를 했다.

“과학의 시대에 언어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연기법이라는 것도 화이트헤드의 아주 다이내믹한 표현, 즉 ‘존재는 생성이다’라고 표현하는 식의 일대전환이 필요하죠. 존재는 생성이라는 것, 연기법이 확연히 들어오는 기막힌 표현 아닙니까. 무엇 하나가 인연 따라 달라지는 것, 이것을 ‘공’이라고 해버리는 데, 이것을 현대어로 ‘존재는 생성’이라고 하면 공이라는 것의 답도 저절로 나온다고 봐요. 이렇게 표현하면 무아도 저절로 해결됩니다. 무아를 보고 왜 고민을 하나. 어떤 종교도 이 무아라는 문지방을 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인데 거기서 걸린다. 불교도 젊은 세대들에게 현대적인 말로 불교를 설명하는 노력을 해야 해요. 존재는 생성이라는 말, 멋지지 않아요.”

용인 화운사에서 열리는 부처님 생애 강의는 오는 4월 4일 개강해 매주 토요일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