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人身如雲  스님의 몸은 구름과 같아
飄然無所住  표연히 머무는 곳이 없구나.
飾心以忠直  충실과 곧음으로 마음을 꾸몄고
志操大堅固  그 지조는 오롯이 크고 단단하네.
問之所以然  어쩌면 그럴 수 있습니까 여쭈니
粲笑言不吐  밝게 웃을 뿐 말로 설명하진 않는구나.
上人非無言  스님이 말씀이 없는 게 아니니
不輕所答故  대답을 가볍게 할 수 없는 까닭이지.
平生雲水間  평생을 구름과 산수 사이에 살면서
快活淸閑趣  쾌활하게 맑고 한가한 운치를 즐겼지.
高蹤難可追  높은 발자취는 진정 좇기 어려우니
更入天山霧  다시 안개 낀 하늘 산으로 드시는구나.

-원천석(1330-?)의 <스님을 보내면서(送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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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1330-?)은 고려 말기를 대표하는 문인이지만, 행적으로 볼 때 여느 문인 정치가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적극적으로 정계에 진출하여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는 대신, 일찌감치 현실의 흐름에 실망하여 강원도 원주 치악산으로 은거하여 평생을 직접 농사를 지으며 숨어산 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지 못한다.

원천석은 비록 치악산에 은거해 세상과 등지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세속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저버린 것은 아니다. 그의 눈과 귀는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737제(題) 1,144수(首)의 한시가 실린 시집인 󰡔운곡행록(耘谷行錄)󰡕이 남아 있다. 그 시를 보면 참으로 다양한 시세계가 드러난다. 당시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국가의 운명에 대해 비통해 하고 일부 정치가들의 이기적인 음모를 날카롭게 비판하는가 하면 전원생활의 호젓한 낭만과 고통 받는 농민들의 참담한 현실을 그려놓고 있기도 한다. 그의 시는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를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시로써 역사를 쓴 시사(詩史)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불어 그의 시집에서는 당시 불교계의 여러 스님과 주고받은 시를 비롯해서 불교 및 자신의 신앙과 관련된 상당수의 작품들을 찾을 수 있다. 오늘 읽은 작품은 운수행각을 떠나는 스님을 배웅하면서 지은 것이다.

인생사를 살아가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가장 일상적인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후와 이별의 계기마다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일면 무의미한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만남과 헤어짐이 없다면 살아가면서 맞부딪치게 되는 충격이나 흥분은 쉽게 맛볼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만남은 헤어짐을 전제로 하고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 평범한 사건 속에서 우리는 때로 경이로운 상황을 목격하게 된다. 불가에서 인연의 사슬을 벗어나 오도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현상 자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변에도 경이로움을 무심히 보면서 무심함 가운데 경이로움을 깨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산야에 묻혀 살았던 원천석에게 있어서 만남과 헤어짐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났던 대상이 승려였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속인과의 만남이 아니기에 경박한 인사치레에 머물지 않았고,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토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천석의 시에 보이는 이러한 스님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양상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 살펴볼 수 있다. 얼굴과 얼굴을 직접 대면하는 만남이 하나이고, 글을 통해 주고받는 만남이 하나다. 대면의 현장에서 오고간 시를 송별시(送別詩)라 부른다면 글을 통한 교유의 흔적은 차운시(次韻詩)에서 찾아진다. 때로는 승속(僧俗)이라는 거리를 두고 때로는 승속의 거리를 떠나서 원천석은 불가의 인사들과 간단없는 교분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원천석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스님의 모습은 아무래도 수행자의 그것이었다. 세속적인 이익을 초탈하고 자연에 몸을 맡긴 승려들이기에 비슷한 행로를 걷던 그에게 우선적인 관심의 초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제목 그대로 먼 길을 떠나는 스님에게 준 작품이다.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다니는 모습은 승려의 당연한 행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충직하고 견고한 지조를 잃지 않으니 유랑의 이미지와는 다른 형상이다. 그 떠돎이 방황이 아니라 자유로움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속기가 가시지 않은 시인의 눈에는 특이한 사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까닭을 물어도 밝게 웃기만 할 뿐 대꾸가 없다. 대답할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대체 말이란 게 무의미하고 심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취한 방편이었다.

구름을 벗 삼고 자연을 소요하면서 한가로운 운치를 흠뻑 호흡하는 이에게 심각하고 진지한 자세는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당연히 웃음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웃음 속에는 이미 필설(筆舌)로 다하지 못할 내밀한 깊이와 오도의 경지가 숨어 있다. 이 때문에 시인은 웃음 뒤에 감춰진 높은 발자취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고, 스스로 그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갖지 못한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아련히 운무(雲霧) 속으로 스며드는 수행자의 거침없고 방일(放逸)한 자세에 경의를 표하는 작자의 애정이 작품 전면에 어린 시편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