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이들이 부석사를 찾는다. 그러나 95%가량은 그저 왔다가 가는 바람처럼, 혹은 의무감에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간다.

그러나 사전에 뭔가 조금이라도 알고 간다면 누군가 말했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사랑한다’고 했던가 여기게 더 덧붙인다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

부석사는 정말 그런 곳이다. 너무나 잘 알려져서, 너무나 잘 알고들 있어서 부석사를 말하지만 정작 그네들이 말하는 부석사는 1/10이나 알까. 어느 광고의 카피처럼 ‘니들이 ○맛을 알아’.

부석사의 입구에서부터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유물이 있다. 나무 그늘에 가려져 잘 안보이지만 분명히 있다.

부석사에서 가장 첫 번째로 만나는 유물을 바로 바위에 새겨진 글씨다. 매표소로 진입하기 전 할머니들 노점이 있는 작은 바위에 새겨진 글씨. ‘허문동천(虛門洞天)’

‘허문’은 문짝이 없는 빈 문으로 아마도 일주문을 말하며 ‘동천’은 신선이 사는 세계를 일컫는데, 즉 신선의 세계로 가는 문이란 뜻이 된다. 여기부터가 바로 부석사의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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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입구의 작은 바위에 새겨진 ‘허문동천’. 여기부터가 부석사의 시작이다.

이후 쭉 올라오면 사천왕문아래 보물 제255호 당간지주를 만난다. 경전에는 당간에 대한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데, 60권본『화엄경』‘승도솔천궁품’에는 ‘백만 억 보살은 법지혜를 성취하여 보배당기(幢旗)처럼 일체 불법을 널리 나타내고, 백만 억 보살은 여래의 경계를 모두 나타내어 보였다’며 불법을 상징하였고, ‘노사나불품’에는 ‘열 가지 온갖 보배 당기’라 하여 부처님세계를 장엄하는 장엄물로도 등장한다. 지금은 잘 다듬어진 돌기둥 두 개가 우뚝 서 있지만 그 옛날 아름답고 웅장한 장엄물로 장식된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음을 상상한다면 불국토 연화장세계가 따로 없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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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55호 당간지주.

부석사에는 현재 4개의 돌로 만든 수조(水槽)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부석사를 찾는 사람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무량수전 동쪽에 있다. 사시사철 맑고 시원한 물이 넘쳐나는 이 수조에는 출생증명서가 있다. 남쪽으로 향한 수조의 바깥 면 오른쪽에 ‘숭정기원후 99년 병오 5월 사내합성(崇禎後 九十九年 丙午 五月 寺內合成)’이라는 돌에 새긴 글씨가 있다.

이는 1726년 병오년 5월에 부석사 대중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제작연대를 밝힌 돌수조는 드문 편이다.

출생증명서가 있는 또 하나의 수조는 자인당 서쪽에 있는 돌수조다. 여기에는 ‘옹정(擁正) 12년… 태백산(太白山)….’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1734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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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년과 1734년에 만들어진 돌로 만든 수조.

한편 많은 이들이 무량수전을 보면서 ‘배흘림기둥’, ‘주심포양식’을 말하지만 무량수전 기단에 새겨진 글씨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에는 ‘충원 적화면 석수 김애선(忠原 赤花面 石手 金愛先)’이라 새겨져 있다. 지금까지는 이 명문을 근거로 무량수전 기단을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았으나 고려시대 군현제도에서는 ‘면(面)’이 사용되지 않았고 조선시대인 15세기 중반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따라서 ‘충원’이라는 지명을 들어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특히 2002년 문화재청에서 발간한 『부석사 무량수전 실측조사보고서(본문)』에서는 ‘충원도(忠原道) 적화면(赤花面) 석장수(石匠手) 김애선(金愛先)’이라고 각색을 하여 더욱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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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기단에 새겨진 ‘충원 적화면 석수 김애선(忠原 赤花面 石手 金愛先)’. 충원이라는 명칭을 들어 무량수전 기단이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조선시대 경내 중수를 할 때 참여한 석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비록 명문은 없지만 부석사 종무소 앞에는 한 사람이 돌리기에는 너무나 큰 맷돌이 하나 있어 과거에는 소가 이 맷돌을 돌렸다는 말이 전해온다. 여기에는 크고 작은 맷돌이 몇 개 더 있어 과거 부석사의 사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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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 돌렸다고 전해오는 대맷돌. 크기가 가로 152㎝, 세로 195㎝, 곡식을 가는 부분의 원형 지름은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