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양의 해 동안거 해제일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교계에서는 지난 90일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한 선방의 선지식을 찾아 청량법음을 청하는 관례가 있다. 불자들에게 주로 짜증스럽고 면구스러운 소식을 전하다가 모처럼 마음을 정화하는 선지식의 법문을 전하는 기회인지라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수행도량을 찾는다.

양의 해를 맞아 올해는 양의 전설이 내려오는 고불총림 백양사를 찾았다. 백양사는 열반하신 서옹(西翁) 큰스님께서 주창하신 참사람 결사의 근본도량이다. 큰 스승의 향훈은 열반하신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도량 곳곳에 남아 있다. 그 뜻을 계승하는 후학들의 정성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서옹 큰스님께서는 생전, 무위진인을 '참사람'이라고 풀어 후학과 불자들에게 '참사람이 돼라'고 가르치셨다. 참사람이란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에서 진리를 드러내라는 임제선사의 가르침이다.

서옹 선사의 유지를 계승해 참사람을 양성하고 지도하고 있는 고불총림 방장 지선(知詵) 스님을 동안거 해제 하루 전날 백양사에서 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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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불총림 백양사의 방장스님은 1970~89년대 독재시절에 민주화를 위해 최선봉에 서서 포효하던, 그리고 1994년 조계종의 개혁을 위해 죽음을 불사한 단식에 들었던 스님이시다. 민주화 투쟁 시절 지선 스님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온 국민의 믿음직한 보루였다. 당시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지선 스님을 보면 구세주를 만난 듯 환호하며 합장 반배를 했다. 스님을 향해 두 손을 모아 박수를 치며 합장 인사를 하는 이른바 '지선스님 박수'가 시민들 사이에서 유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라의 민주화와 종단의 민주화를 위법망구의 원력으로 성취해낸 지선 스님은 이후 대중의 눈길에서 사라졌다. 스님 스스로 내면의 성찰을 위한 시간을 갖겠다는 새로운 원력을 세웠던 것이다. 그 후 지선 스님은 20여 년 동안 세상에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 스님은 백양사 운문선원을 비롯해 제방의 선원을 돌며 참선정진에 몰두했다. 선방에서 참선정진을 시작한 스님에 대해, 사자처럼 저자거리를 포효했던 성정을 어찌 다스리겠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스님은 꿋꿋하게 정진을 이어갔다. 이후 40안거 이상을 거치며 차츰 명안종사의 위용을 갖추어나갔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끈 대표적인 운동가 지선스님은 시나브로 수좌 지선스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지난 해 스님은 고불총림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 방장으로 추대됐다. 광장에서 수십만 민중을 향해 내뿜던 스님의 포효는 이렇게 만 중생을 참사람으로 만들겠다는 사자후로 그 버전을 바꾼 것이다.

"한번만 해요, 난 삼배받는 것 아주 질색이야. 그런데 오늘따라 춥네. 백양사는 늘 손님만 오면 추어요. 어째."

스님은 세뱃돈 ‘천만원(천원짜리 지페와 만원짜리 지폐)’과 당신이 직접 쓴 글씨를 세뱃돈으로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도인이 많이 나온 도량으로 북의 마하연, 남의 운문암이 꼽힙니다. 예로부터 도인이 많이 나온다고 하지요. 또 태고암도 손꼽히는 선불장으로 일컬어집니다. 그런데 마하연은 분단이 되어서 가볼 수가 없고, 태고암은 불사를 많이 해서 원형이 많이 바뀌었어요. 오직 이곳 백암산 운문암만은 원형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도 바뀔 일은 없을 것 같고. 이곳이 천하명당은 명당인 모양입니다. 100년 내외로 종정이 7명이나 나오셨고, 조선 후기불교를 이끈 큰스님들이 배출된 곳이 백양사 아닙니까. 이런 기운 좋은 도량에 오셨으니 좋은 선근공덕을 듬뿍 받아서 가세요."

방장스님의 비교적 빠른 말씀은 여전하시다. 그래도 세속 나이 일흔을 맞으셨으니 긴 세월이 모습에 성기게 배어 있다. 이전보다 많이 야윈 모습이라 건강하시냐고 물으니 "괜찮아. 58킬로그램밖에 안 된다"고 답변하신다. 그래도 스님의 이런 모습이 좋다. 기름진 얼굴과 불뚝한 배를 가진 스님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청량한 수행자의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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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거 동안 선방에서 수행하는 것을 '정처(靜處)수행'이라 하고, 해제 후 만행을 나가 하는 수행을 '요처(鬧處)수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처수행과 요처수행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에 나아가서 수행을 하는 것일뿐 수행은 마찬가지지요. 오늘 해제를 하고 수좌들이 산문을 나가 정진하는 것은 곧 시끄러운 곳에서 수행을 하되, 정처수행할 때 이룬 자신의 안목과 경지를 점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것은 채우고, 더 갈고 닦아야 합니다. 수행이란 한 마디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수행 아닌 것이 없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경전 교리를 공부해서 하는 수행이 있고, 불립문자 견성성불이라고 하는 참선수행이 있지요. 참선은 바로 마음을 닦아서 깨닫는 수행을 말합니다.".

방장스님의 참선론이 이어진다. "문자, 언어 따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깨달음으로 가는 것이 선이에요. 교와 선은 다 같이 좋은 것이고 필요한 것이지만 각자의 근기에 따라서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사실 선은 아주 쉬운 수행법이지요. 중국의 선지식들께서 불교를 쉽게 가르치고 실천하는 길로 제시한 것이 선인데, 어째서 지금은 가장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어요."

스님은 한 가지 예를 들어 선을 설명하신다.

"어떤 젊은이가 한 선사를 찾아왔습니다. 선사가 '너는 누구냐?'고 묻자 젊은이가 '오온(五蘊)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어요. 선사가 다시 묻기를 .'오온인줄 네가 스스로 안 거냐? 아니면 배워서 안 거냐?'라고 묻자 젊은이는 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교리로서 자신을 알았기 때문에 말문이 막힌 것이지요. 그런데 선(禪)은 그렇지 않아요. 네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예컨대,  ‘4*5=20, 또는 9*9-81’이라는 식으로 답변을 하는 겁니다. 선과 교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직관으로 답하는 것이 선이에요."

젊은 시절,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며 불의와 독재에 맞서 최일선에서 싸웠던 스님이기에 자연스럽게 세상 걱정으로 말씀이 전환된다.

"지금이 수행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요. 왜냐? 탐진치(貪瞋癡) 삼독이 인류역사상 가장 치열한 시절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대 최고의 처방은 수행입니다. 오늘날은 자본주의가 극치에 이르렀습니다. 물량 중심의 사회가 되어버렸어요, 인문학은 숨을 죽이고 있고요. 이런 시절이 계속된다면 인류가 행복해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탐진치 3독을 추구하고, 무한한 욕망을 향해 부나방처럼 달려가는데 행복할 리가 없지요."

20여 년을 좌복에 앉아계셨지만, 중생의 고통을 걱정하는 그 마음만은 그대로다. 지선 스님은 탐진치 삼독을 추구하는 오늘날 인류에게는 욕망과 탐욕을 절제하는 장치가 없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개탄했다. 전쟁과 같은 죽임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고, 종교전쟁이 횡행하는 시대, 자본주의가 지나쳐 돈이 신이 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다 돈과 물량, 세속적 오욕락에 매몰되어 있으니, 이래서야 쓰겠나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없고, 사실 내가 옛날 재야 활동할 때도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수행하는 사람들이 현실의 질곡 해소를 위해 참여할 경우 얼마만큼 개입할 수 있는가? 수행과 현실참여는 동시에 가능한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을 굉장히 고민을 했어요. 감옥에 갇혀서도 갈등을 많이 했습니다. 참 어려운 문제였지요. 그런데 이런 고민은 정처수행과 요처수행을 함께 했다면 해결이 가능합니다. 아라한들의 수행법인 정처수행만으로는 어려워요. 오직 대승의 보살행으로 수행을 삼았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스님은 인류의 미래는 수행에 있다고 확신한다. 수행을 하면 오늘날 수많은 사회적 문제, 전지구적 문제들의 해결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웰빙이니, 명상이니 하는 것들이 나오고, 유행하는 것도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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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하지 않으면 공존공생의 길 갈 수 없습니다. 방하착 하고, 수행의 길로 가야만 행복해질 수 있어요. 수행은 인류가 가야할 살 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어요. 아시아에서 발생한 종교들은 수행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있잔아요. 불교의 명심견성 유교의 존심양성, 도교의 수심연성 등은 다 심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은 것입니다. 이런 시절 동네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보고 '저 아이는 심성이 참 착해, 이 아이는 심성이 틀려먹었어'라고 말씀하셨던 것은 심성의 문제가 인간의 근본에 해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심성이란 말은 예전에는 상용어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유무식의 차이를 넘어 마을 어른들이 자주 사용하던 말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듣기가 어려운 말이 되었습니다."

심성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선 방장스님의 지론은 정연했다. 심성론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심성 좋은 것이 없다. 예로부터 득지본유 실지본무(得之本有 失之本無)라는 말이 있는데 득지본유, 즉 내가 얻은 것은 없던 것을 얻은 게 아니라 본래 있던 것을 얻은 것이며, 실지본무, 즉 얻은 것을 잃었다고 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본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지선 스님은 이어 요즘 타락하거나 혹세무민하는 종교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인간이 신을 만들어 거기에 엄청난 것을 부여해놓고, 거기에다 대고 무엇을 해달라고 빕니다. 그런데 이 괴물 같은 신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허구에서는 어떤 해결책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욕망의 화신이기 때문이지요. 오직 수행만이 인류가 지향해야 할 길입니다. 수행 안 하면, 설사 이 지구에서 가장 돈이 많더라도 불안합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죠. 바쁘게 사는 가운데에서도 수행하는 그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같은 스님들이야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지만, 세속에 사는 분들도 열심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론의 펼치던 방장스님이 돌연 '5포 세대' 이야기를 펼친다. 연애, 결혼, 출산, 내집 마련, 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를 풍자한 사회적 이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스님의 관심과 사랑이 여전하다는 것을 웅변한다. 

"5포 세대. 이것의 내용을 살펴보니까 바로 중(僧)이라. 우리들과 다를 게 없어요. 다만 5포 세대는 욕망을 자포자기식으로 포기한 것이니까 다른 것이지, 만일 이들이 무상을 느껴서 이런 것들을 놓아버렸다면 자유롭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우리 수행자들처럼 말이죠. 기회가 되면 5포 세대들 다 모아놓고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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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5포 세대와 같은 불행한 세대가 발생한 것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의 탓이 가장 크다고 개탄한다. 요즘 기득권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저들이 어째서 저럴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토로한다. 그렇다면 입전수수를 하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스님은 솔직하게 답했다. 

"입전수수? 그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아직도 갈등을 많이 합니다. 그러니 여전히 범부인 것이죠. 우리 세대가 민주화 운동을 할 때는 돈도 없고 또 굉장히 위험할 때였어요. 돈을 마련하려고 불화가 수안 스님을 찾아 가서 그림을 몇 점 얻어서 팔아 돈을 마련했고, 또 운동을 하다가 공권력에 잡혀가면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어렵고 끔찍한 그런 시절이었지요. 6월 항쟁과 같이 아주 중요한 집회에 나갈 때는 반드시 유서를 써놓고 나갔습니다. 죽을지 살지 모르니까요.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요즈음, 역사가 후퇴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지선스님은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고 했다. 방장을 맡고 대종사가 되어도 하나도 기쁠 것이 없다고 털어놨다. 세상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기뻐해야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범부에 머물러 있다고 자처했지만, 스님의 마음은 중생이 아프니 보살도 아프다는 보살심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옛날(독재시절)로 돌아가려는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으니 기가 막힐 슬픈 일이라는 스님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간에 옛날의 구태들이 다시 등장해서 과거로 회귀하려 하는 그런 세상이니, 산중에 있어도 안타깝기가 짝이 없다고 개탄한다.

"고민이 많아요. 우리 같은 사람이 또 (사회로)나가야 하는가? 정말 고민이 많아요.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고, 구조적 모순으로 사실상 죽임을 당하는 세상이 이렇게 다시 오고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에 함께 투쟁했던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고, 그들 가운데 몇몇 분들이 찾아와서 무엇인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내게 물어오곤 합니다.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자는 제안도 합디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라요. 솔직히 나이가 70이 되니까 용기가 부족해진 것도 있고, 또 해본들 국민들이 얼마나 호응을 해주겠나 하는 계산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도 있고 그래요. 그래서 찾아온 이웃종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지금 다시 세상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느냐. 저 사람들 또 나왔네, 할 것 아닌가. 나는 안 할 것이니까 당신들도 새로운 스님과 신부, 목사들이 나서도록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처럼 잡아다 패고, 죽이고 하는 시절은 아니니까,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선방에서조차 저 빨갱이를 받지 말라고 할 정도의 시절은 아니니까 젊은이들이 용기 있게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도 입전수수를 하셔야 하지 않느냐는 재촉에 대해 스님은 ‘입전수수라니, 말도 아니야. 지금도 갈등과 반성 속에서 살고 있는데…'라며 손사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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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 취임을 극구 하던 지선 스님이 대중의 요구로 방장 직을 수락하고, 안하겠다는 취임식도 대중의 요구를 꺾지 못해 받아들인 후 막 행사준비를 하는 시점에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사중 일각에서도, 종단에서도 취임식을 취소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민은 되었지만 세월호를 의식해 예정된 행사를  안 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판단에 세월호 희생자 추모식의 형식으로 방장취임식을 진행했다. 취임식을 마친 후 스님은 바로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현장을 보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구나 하는 비참함을 느꼈다고 스님을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고불총림의 가풍을 소개해달라는 말에 스님은 '반선반농'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찍이 백양사는 반선반농의 가풍을 유지해왔는데, 그 이유는 다른 절에 비해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다른 절에서도 자신들의 가풍을 반선반농이라고 하니까 내놓고 우리 총림의 가풍이라고 말하기가 그렇지만, 백양사는 일제강점기의 31본산 가운데서 가장 가난한 곳이어서 자급자족이 부득이한 측면도 있었다고 설명한다.

"백양사의 살림이 참 어려웠어요. 의성 고운사와 함께 밥 먹는 것조차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고운사는 그나마 송이버섯이라도 났지요. 공양을 할 때는 세 홉의 밥을 찌그러진 양은 바릿대에 받았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몰래 밥을 꾹 눌러서 퍼곤 했어요. 그러다가 들키는 날이면 혼쭐이 났지. 그러면 바릿대를 다른 사람과 바꾸도록 했어요. 그 정도로 엄격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밥을 팔아서 가까스로 절이 운영되는 시절이었습니다. 거의 절이 관광호텔 수준이었다고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절에서는 더욱 더 빡빡하게 일과를 돌렸어요. 예불을 거의 2시간 가까이 했고, 일과 참선정진과 경전공부가 계속 맞물려 돌아가니까 번뇌를 품을 틈이 없었지요.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하고 포난(飽暖)에 사음욕(思淫慾)한다는 명심보감의 가르침이 있지요. 맞아요. 풍족하면 도인 나오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지선 스님은 도인(道人)의 개념에 대해서도 당신의 견해를 밝혔다. 오늘날 우리 절집에서 도인의 의미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흔히 세상만사 물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건 잘못된 것이에요. 도인은 세상을 아주 잘 아는 사람(世間解)이어야 합니다. 세상물정 모르면 도인이 아니라 멍충이이지요. 안 그렇습니까. 도인은 길을 안내해주는 밝은 지혜를 갖춘 분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다만 알되 거기에 물들지 않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삶을 살 줄 알아야 하지요. 같이 뒹굴지만 물들지 않는 동사섭(同事攝)의 경지에 올라야 도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도인이 나오기도 힘들지만, 나오더라도 도인으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도인에 대한 생각은 이제 바뀌어야 해요. 지도자가 되었든 안내자가 되었든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스님은 동안거 정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함께 정진한 납자들에게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수행을 통해 얻어진 것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것을 당부하는 서산스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하진이라는 보석도 땅에 떨어지면 티끌과 섞이고
천년학도 집을 나서면 들짐승의 침노를 받는다
오랜 수행자라도 세간에 들어가 섭화중생하려면
산문밖에 나설 때부터 깊은 강물 위 살얼음 밟아가듯
조심조심 살피며 하고픈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수행자들의 고민이 여기에 있습니다.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5포 세대들의 고민도 나눠 가져야 하고, 불신 불안, 부조리, 불만 등 아니 불자가 만연한 세상에 뛰어들어야 하는데, 바로 그 순간에 수행의 결과가 점검되는 것입니다. 정처(靜處) 공부 10년이 요처(鬧處)공부 3년보다 못하다는 말이 선가에 내려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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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 스님은 우리 절집 안에 지도자가 많은데, 그러나 요처에서 확인되고 점검되지 않은 지도자는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바세계에서 점검되어야 하고, 신비화, 신격화의 허울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자리는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며, 지도자는 항시 수행했던 것을 남몰래 점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게 스님의 소신이다.

“테라와다 불교권인 미얀마에서는 신도들이 보시를 해도 스님들이 전혀 고마움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고마움을 표시하면 복이 감해진다고 이들은 생각합니다. 이렇듯 우리는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개념, 인식을 타파해버려야 합니다. 고정관념들을 모두 놔버려야 해요. 그래야 도인이고 돈오인 것이지, 거기에 갇혀있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스님은 후학들에게, 그리고 재가자들에게 “늘 깨어있어야 하고, 고뇌, 사색해야 하고,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제발 검색만 하지 말고 사색하세요. 인간이 기계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재가자들은 신심을 가져야 하고, 소속 신행단체나 사찰이 있어야 하며 반드시 법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이것이 불자의 기본입니다. 그런 뒤에 비판도 하고, 요구도 해야 합니다. 나는 정말 불교를 제대로 믿고 실천하고 있는가? 공부하고 정진하고 있는가? 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한마디의 말에도 힘이 실리는 것이지요.”

지선 스님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회 대중들에게도 금과옥조 같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나라가 자꾸 뒤틀리고 어려워지고 과거와 현재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국민이어야 하고, 깨어 있으면 실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깨어 있는 국민, 실천하는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사는 것이지요. 청문회를 보면 우리 사회의 지도층이 거의 범죄 집단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선거 때면 지지를 요청하고 다닙니다. 이것이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는 행동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지도자가 아니고 지배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활개하는 것은 국민이 깨어있지 않은 탓입니다. 임제선사께서 남긴 가르침 중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선어가 있습니다. 어디에서든 주인이 되어야 하고, 그래야 머무는 곳에서 진실의 연꽃이 피어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이 가르침은 쉽게 풀이하자면 언제든 깨어있으라는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지선스님은 선원장 일수 스님 등 수좌스님들과 함께 운문암으로 올라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님의 장삼자락에서 임제의 향기가 물씬 뿜어져 나왔다.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지선스님은?

1946년  전남 장성군에서 출생했다. 1961년 장성 백양사에서 석산 상현스님을 은사로 득도했고 1964년 경남 범어사에서 동산 대종사를 계사로 비구계 및 보살계를 수지했다. 1972년 서옹 대종사를 법사로 건당했고, 영광 불갑사 주지를 역임했다. 1976년 조계종 제23교구 제주 관음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 공동대표를 역임하며 90년대 초반까지 사회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앞장섰다. 1993년에는 전국불교운동연합 상임의장을 맡았다. 1994년 제18교구 본사 백양사 주지를 맡았고 1999년부터 백양사 운문암, 김천 수도암, 오대산 상원사, 계룡산 갑사, 덕숭산 정혜선원, 용흥사 몽성선원 등에서 정진했다.
2004년 고불총림 백양사 유나, 2012년 고불총림 백양사 수좌로 추대된 후 2013년 8월 백양사 산중총회에서 방장으로 추대됐다. 2015년 1월 조계종 대종사 품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