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천 기자
hgcsc@hanmail.net 2015-03-03 (화) 15:56성지에서 쓴 편지
호진·지안 지음, 봉현 그림, 불광출판사
240쪽, 15,000원
“초기불교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나는 역사적인 붓다의 모습을 추구하는 데 골몰해 왔습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알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부처님, 당신은 도대체 누구십니까”라는 한마디입니다. 모든 것을 현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어 ‘붓다의 땅’으로 왔습니다.“ (22쪽, 죽어도 죽지 못하는 자-호진 스님)
동국대 교수를 역임한 호진 스님은 지난 2008년,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인간 부처의 원형을 찾아 인도로 갔다. 초전법륜의 길(보드가야-사르나트) 278km, 열반의 길(라즈기르-꾸시나가라) 353km를 두 발로 걸었다. 그 옛날 부처님이 걸었을 길을 고스란히 따른 것이다.
목적은 분명했다. 역사적인 현장에서 부처님의 참모습을 되살려내고, 불교의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다. 50도에 육박하는 한낮의 열기도, 부서질 듯 파고드는 다리의 통증도 스님을 멈추지 못했다. 오히려 몸의 고통은 부처님이 겪었을 그것과 대비되어 스님의 각오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뿐이었다.
“스님이 연구하는 부처님의 인간적 참모습은 지금까지 이해해 온 과거의 설들과는 비록 다르게 서술되는 점이 있더라도 객관적 정황의 보편적 인식 기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을 이해하는 각도가 사람의 주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스님처럼 순수한 이성적 판단에 입각해 객관적 정황을 무리 없이 이해하도록 설정해 주는 것은 불교의 새로운 이해를 도와주리라 믿습니다.” (219쪽, 죽음은 단지 죽음일 뿐-지안 스님)
『성지에서 쓴 편지』(불광출판사)는 호진 스님이, 1년 동안 1,600리 길을 순례하며 대강백인 지안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글을 정리한 책이다. 호진 스님이 순례 과정에서 체험하고 사색한 내용과 이에 대한 지안 스님의 답문으로 이뤄졌다.
전체적인 구성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그려지는 두 스님의 모습은 입체적이다. 특정 주제에 관해 상반된 견해로 대립할 때면, 각자가 지닌 학자로서의 열정과 고집이 드러나는 반면, 서로의 안부를 걱정하며 그리움을 전할 때는 진한 우정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서로를 둘도 없는 의지처이자 자극제로 삼아 살아가는 두 도반 스님의 다채로운 모습을 엿보는 것 또한,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두 스님의 대화는 「불교신문」에 연재되고, 5년 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여러 사정으로 절판 됐다가 올해 초 새로운 숨결로 다시 태어났다. 진리를 향한 두 스님의 탐구심과 열정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깔끔한 일러스트로 새 옷을 입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