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노동위원회가 지난해 49제에 이어 송파 세모녀를 위한 추모제를 봉행하는 이유는 복지사각지대의 제2, 제3의 ‘송파세모녀’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빈곤 문제 등 암울한 현실에 많은 관심을 갖고 국가에 책무를 촉구할 수 있도록 함께 나서 주십시오.”

매서운 바람에 체감온도가 영하권으로 떨어진 2월 27일, 광화문 해치광장에서 결의에 찬 호소가 서울시민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생활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모녀’와 인천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전신 피멍이 든 채 의문사한 고 이재진 씨의 넋을 기리는 자리에서였다. 그는 단순히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관심과 실질적 복지 정책 개선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조계종 노동위원회(위원장 혜용 스님)의 양한웅 집행위원장(56, 법명 正法)이다.

양 위원장은 조계종 총무원 사회국장 각평 스님, 동환 스님, 원성 스님, 선정 스님이 함께 한 추모의식이 진행되자 보도용 사진을 찍고, 몰려든 기자들에게 위령재 내용을 설명했다. 이어 진행 상황을 체크한 뒤 사회를 진행했다.

실상 ‘억울한 죽음이 이 땅에 되풀이 되면 안 된다’는 그의 외침은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도, 비가 쏟아져도 해고 노동자와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자리엔 양 위원장이 함께 했다. 앞서 2월 14일 3천여 명이 모인 팽목항 현장에 다녀오며 실종자․유가족을 위로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활동도 펼쳤다. 어디 그뿐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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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웅 위원장이 27일 광화문 해치광장에서 열린 송파세모녀 추모제에서 시민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국가적 책무를 촉구하고 있다.
 

“종교인들도 불평등하고, 잘못된 제도는 바꿔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스님들을 비롯해 목사님, 신부님들도 노동자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종교계가 진작 여법하게 노동자 여러분을 모셔야 하는데 이제야 이 자리를 마련해 죄송합니다.”

2월 12일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월 6일부터 SK, LG 비정규 통신 노동자 두 명이 고공농성을 벌이는 광고탑을 뒤로 한 ‘SK․LG 비정규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 3대 종교 연합문화제’ 무대 위에서 그는 노동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조계종의 입장을 밝히며 절규에 찬 인사말을 했다.

“굴뚝 위에서 시위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올라가 본 적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위험하고, 움직일 때마다 떨어질 위험이 있어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했습니다.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했던 노동자의 아픔을 이 땅에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은 모를 겁니다. 가난한 노동자,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온몸으로 대변해주는 정당도 없는 게 이 땅의 슬픈 현실입니다.하지만 조계종 등 3개 종교가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도, 길바닥에 신문지를 놓고 누워 있던 노동자들도 그의 진심 어린 응원에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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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웅 위원장이 지난 2월 12일 명동 중앙우체국 앞에서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격려하며 종교계가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파가 계속됐던 지난 1월엔 ‘쌍용차 해고자 복직과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노동자들이 차가운 땅바닥에 온몸을 맞대고 정진하는 오체투지라도 해야 언론에 사진 한 장이라도 보도되는 이 땅의 차가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단식, 고공 농성, 집회 등 온갖 것을 다 해봐도 해결되는 것이 없어 오체투지를 하게 됐어요. ‘처절한 몸짓’이었죠. 하지만 얼음장 같은 바닥에 엎드리는 것, 겨울 추운 길바닥에서 잠 잘 때, 경찰이 막았을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든 건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문제 등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이죠.”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자 복직을 위해 2012년 9월부터 12월까지 대한문 앞에서 100일 동안 매일 천 배씩 총 십만 배 기도를 하기도 했다. 그뿐일까. 지난해 7월부터 9월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 삼천 배를 6번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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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육체적 고됨을 뒤로 한 채 관련 일에 적극 뛰어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에 그를 만나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평생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살겠다는 원을 세웠어요. 그 약속이 조계종 노동위원회를 통해 실현되고 있어 기쁩니다.”

1986년 한국통신KT에 입사, 이듬해부터 노동조합활동을 시작한 그는 1994년 조계사에서 단식 농성을 하다 경찰에 잡혀간 적이 있었을 만큼 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2012년 6월 조계종에 들어와 그 해 8월 노동위원회의 설립과 함께 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이라면 어디든 뛰어들었다.

“가만히 앉아 수십 억을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뼈 빠지게 일해도 한 달에 돈 백만 원도 못 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를 임금 받는 인부가 아닌, 자본으로부터 생기는 구조적 산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호도 국가로부터 구출되지 못한 재난이지요. 인권 면에서 가장 많은 핍박을 받는 성소수자들도 도우려고 합니다. 마땅히 조계종 노동위원회가 함께 할 부분이에요.”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약 10개월에 걸쳐 매주 1주일 한 번 팽목항을 방문했던 그였다. “요즘도 한 달에 한두 번 내려간다”는 그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사고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을 밝히고,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데도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세월호 원인 진상 규명을 위해 반드시 인양돼야 합니다. 초기 경전에 자식을 잃은 아픔이 가장 크다고 나올 정도로 자식을 잃은 아픔이 큰데 그 고통을 지켜보는 마음도 굉장히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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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앉아 있는 일상보다 잦은 출장과 집회 동참 등으로 외부에 나가 있는 일이 더 잦은 그를 지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양 위원장은 “국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아무도 책임지지 않지만 종교인이라면 반드시 관심을 갖고 함께 한다는 약속과 언제든지 ‘제2의 세월호’가 생길 가능성이 있어 공업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의 삶에서 ‘문제의식’과 ‘현실 참여’는 빠지지 않는 화두였다.

이 같은 불교적 사고는 절실한 부모님으로부터 비롯됐다. 동국대 일반대학원에서 학부전공(전자통신)과 다르게 불교학을 전공할 만큼 불교에 많은 애정을 가진 그였다.

양 위원장은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외칠 때 때론 지치기도 하지만 연기법과 공사상과 같은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하다 보니 큰 충돌 없이 지낼 수 있었다고 감사해했다.

그는 부처님 가르침은 현대의 비정규직 양산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이 카스트제도의 하위 계층인 불가촉천민도 출가를 할 수 있고 아라한이 될 수 있다며 계급에 따른 인간 차별을 거부하고 평등을 외쳤기 때문이란다.

그럼에도 교계는 이웃 종교인 천주교에 반해 뒤늦게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진 점이 안타까웠단다.

그는 조계종 노동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쁘지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들의 요구가 빗발치는데 손발이 모자라 많이 못 도와주는 게 가장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관심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스님이 적은 상황이 힘들다면서 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했다.

“조계종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위한 대응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얼마 전 천주교 서울교구 노동사목위원회에 다녀왔는데 깜짝 놀랐어요. 노동사목위원회 건물이 조계종 전법회관만하더라고요. 이주 노동자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실무상근자가 10여 명 정도였습니다. 천주교는 40~50년 간 노동자의 편에 선 힘으로 성장했다고 봅니다. 불교는 청정계율을 지키고 수행을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잘못한 부분을 꾸짖는 사회적 책무도 있습니다. 노동․인권․빈곤․성소수자 등 사회에서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기구가 필요하고, 그 속에서 전문 스님들 등 활동가가 양성돼야 합니다. 지역별․교구별로도 이 같은 기구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는 노동위원회가 확장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활동하고, 타 종교와 견주었을 때 실력이나 내용에서 앞장설 수 있는 그날이 오길 희망했다. 이어 재가불자님들도 노동자, 비정규자, 빈민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도와 활동에 동참할 길을 함께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또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역할도 강조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한국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3대 종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빈곤자 등 사회적으로 극심하게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지원해야 합니다. 종교인으로서 지원도 당연히 해야겠지만 이들이 그렇게 내몰리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를 인지하고 국가가 책임을 지게끔 촉구하는 것도 종교계가 할 역할입니다.”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유발한 해당 기업에도 하고픈 말을 기자에게 전했다.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이 있기에 기업이 이윤을 많이 창출하는 겁니다. 그렇기에 기업들은 이제 노동자를 자기 자식과 형제처럼 생각하고, 이들에게 다시 이윤을 돌려주는 등 많은 부분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는 이제는 기업이 대자본의 탐욕과 강한 소유욕을 과감히 내려놓고 피와 땀으로 일궈낸 노동자들에게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고 감사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조계종 노동위원회를 찾아주는 노동자”라고 단언했다. 이어 전국 노동자들에게 지면을 빌려 하고 싶은 말을 힘차게 전했다.

“각계각층의 노동자들과 밤낮 가리지 않고 언제든지 함께하겠다는 자세로 적극 대처하겠습니다. 노동자가 주인 대접 받고, 인간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절대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같이 어깨를 맞대고 골고루 잘 살 수 있는 그날까지 노동자들과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걸어갈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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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웅 위원장을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들과 각 종교의 노동 인권위 수장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