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물빛 그리움
김영미, 물레출판사
186쪽, 12,000원

뿌연 새벽의 기차에서 내려 고개를 떨어뜨리고 무겁고 피로한 몇 걸음을 옮겨놓을 때, 내 귀를 찾아온 것은 나의 이름이었다. 개찰구에서 기다릴 것으로 상상하였던 남편은 객차 앞에 와서 웃고 있다. 어느 도시나 그곳에 접근하는 교통기관의 선택에 따라서 그 도시의 인상이 달라진다. 그 특유의 정서가 그 도시의 모습을 결정한다고 보면 옥천역(沃川驛)은 사전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푯말의 이름처럼 ‘물이 있는 기름진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2쪽, 기차역)

김영미 작가(50·사진)는 서울 변두리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이다. 나이 삼십 중반을 넘어 옥천의 부름을 받았다. 대학교수인 남편을 따라 14년 전 이렇게 옥천에 정착했다.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잦아질 때면 걸었다.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산을 오르내렸다. 산에 오르는 것과 글을 쓰거나 읽는 것이 정상을 향하고 다시 내려오는 일임을 느끼게 됐다.

산이나 글은 모두 사람의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할 뿐 아니라, 삶을 조망하기에 적당한 거리감을 준다. 거기에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혹은 낯설게 관조할 수 있는 긴 여정이 필요할 뿐이다. 글도 그 과정 중의 하나이다. 다시 오르고 싶은 산이 있고 다시 읽고 싶은 글이 있다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이다. (5쪽, 작가의 말)

옥천의 하늘과 강 그리고 공기를 사랑하는 작가의 다른 호칭은 ‘옥천댁’이다. 안부를 물어오는 서울 친구들이 붙인 별명이다. 찾아온 친구들과 작은 둑길을 지나 옥천에서 맛좋기로 소문난 아귀찜을 입술이 뻘게지도록 먹으며 웃음보따리를 푼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로 돌아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더는 부럽지 않게 됐다. 스스로 영원한 ‘옥천댁’으로 남아있을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옥천, 물빛 그리움』(물레)에는 그녀의 잔잔하고 따스한,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녀는 옥천을 흐르는 아름다운 금강과 올목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사람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순수하고 정직하게 풀어나간다. 인간과 사물에 대한 그윽하고 인자한 시선, 미감(美感)으로 빛나는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한 정감에 젖게 해준다.

재래시장 특유의 활기찬 풍경(20쪽, 오일장)을 그리고, 옥천이 고향인 시인 정지용의 ‘향수’를 읊으며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을 안내(38쪽, 향수 100리 길)한다.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 금강 유원지의 이모저모를 살피며(43쪽, 금강휴게소) 금빛모래 반짝이는 강 마을의 정취를 전한다. 2백 년 된 고택이 있는 춘추민속관으로 한옥 마실을 가는 그 날의 울렁이던 그리움(47쪽, 마당)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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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행복 속의 단란함이다. 책의 2부에 있는 ‘어머니의 누룽지’(53쪽), ‘위대한 유산’(58쪽), ‘식탁’(66족) 등의 글에서 막내딸로서의, 또는 나이 든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며느리로서의 효(孝)와 성(誠)의 이야기가 애잔하게 기록돼 있다.

그녀의 수필은 일상적인 것을 소재로 한다. 특히 사물을 보는 착한 시선이 켜켜이 수 놓인 세상과 만난다. 책의 3부에 있는 ‘목련’(99쪽), ‘비즈공예’(102쪽), ‘끈’(115쪽), ‘추억의 이름으로’(106쪽), ‘충동’(124쪽) 등이 바로 그 한 예다. 4부로 편집된 책에는 모두 36편의 글이 실려 있다.

문학평론가 이재인 전 경기대 교수는 “김영미의 수필은 정직하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작가 정신이 순수성에 닿아 있다.”고 평했다. 이어 “세상의 진리는 성현의 말만 늘어놓는 사람보다는 일상에서 흔히 겪는 고민과 싸우고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느껴질 것”이라면서 “김영미의 작품이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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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와 시인으로 활동하는 김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옥천문인협회 감사로 2012년에 ‘명작선 한국(韓國)을 빛낸 문인(文人)’에 선정됐다. 또한 ‘정지용 시에서의 주체 형성 과정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전대학교 외래교수로도 출강 중이다.

김 작가는 “과거에서 배워 미래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세상에서 만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사랑이었다.”며 자신의 글쓰기를 “사랑으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긴 여행”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