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도가(證道歌)>는 영가현각(永嘉玄覺)스님이 서기 705년 경 찬술한 저술로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히는 중요한 선서(禪書)다. <증도가>는 남종선의 시조인 6조 혜능(慧能)에게서 선요(禪要)를 듣고 하룻밤에 증오(證悟)를 얻었다고 해서 일숙각(一宿覺)이라고도 불리는 영가현각 스님이 그 대오(大悟)의 경지, 즉 도를 이룬(證道) 요지를 247구 814자의 고시체로 읊은 일종의 시집이다. 유려한 문체일 뿐 아니라 선의 진수를 기술한 것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선문(禪門)에서 널리 독송·해설되어 왔다.

성철 스님도 <증도가>를 접한 후 출가를 결심했고, 실제로 성철 스님은 <증도가>를 해설하고 강독하기도 했다. 이러한 <증도가>의 실제 판본은 고려 무신정권 때 강화도에서 찍은 목판본 1책이 남아 있는데 송나라 남명선사 법천이 쓴 증도가 해설서 <남명천화상찬송증도가>가 그것이다. 이 책은 보물로 지정돼 현재 삼성출판박물관(관장 김종규)에 소장돼 있다. 이 책의 후기에는 ‘처음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을 1239년 목판에 옮겼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적혀 있다. 이 후기의 내용은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의 존재를 밝힌 것으로, 고려시대에 이미 금속활자본이 통용되었음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기사다.

이 후기대로라면 국제적으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1377년)보다 138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1455년)보다 200년 이상 앞서는 기록이다. 다만 그 금속활자나 금속활자로 찍어낸 서책이 발견돼지 않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지난 2010년 9월 남권희 경북대 교수가 <증도가>자의 금속활자 실물로 볼 수 있는 금속활자라며 일단의 금속활자를 공개했다. 당시 언론과 문화재계는 흥분했다. 만일 이것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금속활자라는 사실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세계의 인쇄사가 바뀌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획기적인’ 금속활자 실물공개는 소장자와 최초 발견자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로 인해 그 의미가 축소되었고, 곧 잊혀져갔다. 국내 학자들은 이 금속활자에 대한 소모적인 진위논쟁만 벌였고, 오히려 외국에서 관심을 갖는 기현상이 전개됐다. 당시 국내에서 벌어진 가짜 논쟁의 핵심적인 내용은 “서법적(書法的)으로 다르다는 것과 활자 형태와 부식 정도, 출처가 분명하지 않아서 진품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몇 년을 끌다가 최근(2월 초)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강순형)의 의뢰로 ‘경북대산학협력단이 금속활자의 연대 등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를 한 보고서 <증도가자 기초학술조사연구>가 문화재연구소에 전달된 것이 보도되면서 이른바 <증도가자>를 둘러싼 논란이 또 다시 빚어지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활자에 묻은 먹 성분의 탄소연대를 분석하고 목판본과의 서체를 비교했으며, 활자의 금속성분 X선 분석 등 과학적·서지학적 검증을 거쳤다. 그 결과 대부분 활자가 1033년에서 115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논쟁의 종지부를 찍으며 국보지정으로 다음 단계를 예고했는데도 논란이 언론과 문화재학계에서 예전보다 더 거세게 벌어지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대이니 어떤 사안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을 탓할 수는 없으나 본질을 벗어난 지엽적인 논쟁이 본질의 가치마저 덮어버린다는데 문제가 있다. 조사 내용에, 즉 유물의 진위, 또는 진위를 가려낸 조사 내용의 정확성 등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의 여부가 논쟁의 중심이 아니고, 소장자와 발견자에 대한 개인적인 이런저런 문제, 인신공격성 논쟁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간지 등 언론에서 제기되는 논쟁의 핵심은 유물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연구내용이 사실로 판명될 경우 세계 인쇄사를 바꿀 ‘세계적 문화유산급’이라는 점, 그런 가능성이 큰 <증도가자>에 대한 연구조사 내용의 적합성 및 신뢰성을 따지는 것보다는 매우 지엽적인 문제에 관심이 모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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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조사를 담당한 경북대 산학협력단의 남권희 교수는 고활자(古活字) 연구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번 조사에 참여한 연구기관들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서울대기초과학공동기기원, 일본의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기관으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paleo labo’ 등이다. 이런 기관들이 조사를 한 결과에서 고려시대에 제작된 연대가 나온 것이므로, 발견자가 이번 용역연구자와 겹친다는 것을 두고 조사결과를 사장시키는 우려가 들 만큼의 시비를 벌일 일은 아니다.

시비를 벌이더라도 국내외 최고의 권위 있는 기관들이 함께 연구조사한 결과이지만 발견자가 용역조사의 대표자가 되어 있어 그 결과를 100% 신뢰할 수 없으니, 다른 기관이나 다른 학자들로 하여금 재조사를 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외국의 학자나 기관에 추가 정밀조사를 해보자는 쪽으로 논의의 방향이 잡히는 게 정상적일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의 가치를 감정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컨대 히틀러가 유물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유물이 아닌 것이 아니고,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라고 해서 다 세계적인 것이 아닌 것처럼, 이번 논란을 계기로 유물 그 자체를 가지고 유물을 판단하려 하지 않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을 필요도 있을 것이다.

불교계에서도 이 문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대할 일이 아니다. 석가탑에서 발굴된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 고려의 <직지심경>, 이번에 논란이 된 <증도가자>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전적들이 국내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인쇄사를, 국외적으로는 세계의 인쇄사를 선도해 왔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문화재만이 성보가 아니라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는 다 성보라는 인식의 전환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조사결과에 대한 합리적인 이의 제기나 반론이 아닌, 소장자나 출처, 처음 발견하여 학계에 알린 학자를 대상으로 한 인신공격적인 비방 내용으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세계의 기념비적 문화유산이 될지도 모르는 <증도가자>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덮어 씌우는 일은 중단되어야 마땅하다.

오직 유물은 유물로서 바라보는 풍토의 조성이 미흡한 것이 아쉽다. 소장자가 누구든, 연구·조사자가 누구든 그들이 내놓은 유물이 가치가 있으면 함께 격려해주고 인정해주는 풍토가 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지금은 조사연구보고서가 제출된 유물의 가치를 따질 때이지, 부수적인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로 유물의 가치조차도 훼손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아니다.

<증도가자>의 출처는 나중에 따져도 될 일이다. 또 출처가 설사 중국이나 북한이라고 해도 유물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개성에서 출토된 고려청자들을 우리는 다 소중한 국가문화재로 지정하고 있지 않은가. <증도가>에는 “남을 비방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장막 뒤에 숨어서 인신공격적 방식으로 본질을 가리는 것은 온당한 행동이 못 된다. 그런 행동은 구업을 짓는 것이고, 문화유산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오늘(2월 11일) 2시부터 문화재위원회가 열리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문화재위원회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 결과를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순리다. 조사보고서에 과학적 조사로 얻어진 결과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그 점을 간과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하는 행위는 순수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직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유물 자체에 신빙성이 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심의조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기록될 수도 있는 소중한 문화재를, 그것도 한 두 점도 아닌 109점을 검사하여 나온 결과를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잣대로 심의하지 않고 여론에 휩쓸리는 결론을 낸다면 문화재위원회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먹물 묻어있는 29개의 금속활자의 먹물을 채취해 탄소연대를 측정한 연대가 서기 1033~1155년이 나왔다는점에, 이를 조사한 기관이 국내 최고의 기관이며, 일본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그 신뢰도를 95.4%로 추정하고 있다는 점, 이것저것 다 고려해도 이 활자들이 고려시대 것이라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 문화재위원회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일부러 가짜 먹을 묻혀서 조사를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보고된 <증도가자>류가 고려시대 활자라는 점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따라서 조사와 관련된 부분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담당할 내용이고, 그것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문화재위원회에서 다시 하면 된다. 문화재위원회에서 필요하다면 재조사를 의뢰해 보고서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심의에 들어가면 될 일이다.

조사를 누가 했느냐가 조사결과 부인으로 연결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누가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실적이 가장 많은 사람이 조사했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연구소에서 조사용역단체를 선정할 당시에 객관적으로 절차를 걸친 것인지, 즉 경험과 연구 실적이 가장 우수한 곳에 의뢰했는지를 점검하고, 그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그 때 가서 따지면 될 일이다. 아울러 만일 다른 팀, 즉 상대적으로 이 분야의 연구실적이 없거나 부족한 팀에게 맡겼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것이 아닌가.

연구조사단체가 어디든, 탄소연대 측정으로 <증도가자>류의 시기가 고려시대로 밝혀진 것은 현재로서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자료이며, 이 결과를 볼 때 <증도가자>류는 세계적인 활자로서의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김 아무개라는 고미술상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이라고 해서, 발견해서 발표했던 학자에게 조사를 맡겼다고 해서 유물의 가치까지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소장자 김 씨는 <증도가자>류의 진위를 시급히 관계기관에서 가려줄 것을 바라고 있다. 지금 현재 중국, 일본, 독일에 <증도가자>류의 가치를 평가하고 구매의사를 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만일 이 <증도가자>가 문화재청이나 학계에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된다면 이를 원하는 나라에 매도할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증도가자>들이 진품일 수 있으므로 그가 한국사람이고 우리 것은 우리가 소장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아직은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또 이번에 책임조사를 한 남권희 교수가 아닌 누구라도 검증하겠다고 나서면 기꺼이 <증도가자>들을 내줄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관련 학자들 아무도 조사와 연구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소장자 개인적 성향이나 그동안의 행적, 또 연구자 남권희 교수의 전력 중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문화재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더 큰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정말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여부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구결과가 과연 적정한 것인가에 대한 점검과 심의의 철저한 진행, 부족하다면 또 다른 팀에 의한 연구의 팔요성도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만에 하나, 이 유물이 정말로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맞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인 것인 사실이라면 어쩔 것인가.

애당초 이른바 <증도가자> 류에 대한 조사는 그 형태를 삼성출판박물관 소장 <남명천화상찬송증도가>의 활자와 비교했을 때, 형태, 조판모습, 획의 모습, 간격이 거의 같다고 판단되어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외 권위 있는 기관의 조사분석에 의해 탄소연대가 고려시대로 나오는 등 고려시대 금속활자일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간단하게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 

백보 양보해서 109점의 조사대상 금속활자 중에 단 1점이라도 고려 것이 있더라도 세계적인 의미가 있다. 부디 이 유물을 누가 가지고 있고, 누가 연구했느냐 따위의 지엽적인 문제를 떠나 모든 학자가 다 달려들어서 고려활자인지를 정밀하게 확인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학계나 문화재학계, 문화재위원회의 신중하고도 합리적인 행보를 촉구한다. 아울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도 <증도가자>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