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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여 사랑방

작은 인문학
서여 민영규 지음, 조흥윤 정리‧엮음, 민족사
228쪽, 15,000원

올해는 서여(西餘) 민영규(閔泳珪) 선생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서여는 연세대 사학과에서 정년을 맞고, 이후 명예교수로서 연구와 탐사에 정진하다가 2005년 타계했다. 동양사학자ㆍ한국학자ㆍ불교학자ㆍ서지학자ㆍ강화학자ㆍ민족학자로 불린다. 일찍이 연희대학에서 위당 정인보 선생의 제자로서 조선조 우리 학문의 정신인 강화학(江華學)을 만났고 그 성격과 틀을 바로 세웠다. 그의 학문의 정신과 방법은 방대하고 정밀하거니와, 그의 주옥같은 논저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년을 맞은 2년 뒤인 1982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선생 댁을 중심으로 공부하는 모임인 사랑방이 만들어졌다. 초기 멤버는 유완근 판사(변호사 개업 후 은퇴)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김지견 교수(작고) 두 분이었다. 이 책을 엮은 조흥윤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1990년에 합류했다. 그 뒤 문화일보 김징자 논설위원, 위당 정인보 선생의 딸 정양완 교수, 송광사의 현봉 스님 등도 숙세의 지극한 인연으로 그곳을 드나들었다.
 
 1990년부터 6년에 걸쳐 선생은 초기 선종사의 바른 법맥과 신라ㆍ고려 불교의 성격 규명을 위해 중국 학술 탐사에 나섰고, 이어 그 정신을 계승한 근대 한국 불교의 경허당 연구에 매진했다. 서여 사랑방에서는 선생의 연구 주제를 자연스럽게 토론했고, 선생은 그와 관련해 세 차례의 강연을 가졌다. 이 책은 그런 것을 제자 조흥윤(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박사가 정리한 것이다.
 
책에는 5개의 글이 실려 있다. 첫째는 <이류중행(異類中行)의 실종과 그 행방>이다. 1994년 1월 21일 송광사에서 스님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것을 녹음해 풀어썼다. 두 번 째는 <경허당(鏡虛堂)의 북귀사(北歸辭)>로 1994년 5월 13일 충남대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세 번 째는 서여 사랑방의 <담론 노트>이다. 1990년 중국 북경의 한 호텔에서 시작해 1999년 4월 3일 서교동의 한 커피숍까지 대략 9년의 시간이 녹아 있다. 네 번 째는 <서여(西餘) 민영규 선생과 천학(川學)>이라는 논문이다. 조흥윤 박사가 2006년 4월사천연구회의 학술지 <사천문화> 2집에 실었던 글이다. ‘천학’이란 중국 사천성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학을 의미한다. 다섯 번 째로는 <서여(西餘) 민영규 선생 약보(略譜)>가 실려 있다.

고려 일연 스님의 조동선은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3백년 뒤 조선의 매월당 김시습에서 되살아났다. 그리고 450년 쯤 지나 조선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경허 스님이 그 정신을 다시 일궜다. 서여 선생은 만년에 어느 사랑방 모임에서 당신이 “일연과 매월당의 재발견자로 기록되길 바란다.”고 했다.

구도자의 자세로 학문 탐구에 매진했던 노 학자의 모습을 강연과 담론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