欲窮斯道掩禪扃  이 도를 깨치려고 선방 문도 닫아걸었는데
一貫千殊妙忽明  온갖 변화를 하나로 꿰니 묘법이 홀연 밝구나.
無相可名崔鄭朴  최씨며 정씨, 박씨라 이름 할 상도 없고
有神能體馬牛鯨  말이며 소, 고래를 한 몸에 담을 신은 있네.
冬寒夏熱天呼吸  겨울 춥고 여름 더우니 하늘의 호흡이고
葉落花開地死生  잎 지고 꽃 피니 땅의 죽고 삶이로다.
萬像森羅都自己  세간의 삼라만상이 모두 내 안에 있으니
何須出戶謾馳行  무엇 하러 문 밖을 나가 부질없이 뛰어 다닐꼬.

-허응보우의 <꿈을 깬 뒤 행복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한 수를 읊어 마음을 보이노라(夢破餘 不勝自幸 快詠一律 以示心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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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교사를 살피면 이른바 요승(妖僧) 또는 괴승(怪僧)으로 불리는 스님이 세 분 있다. 고려 중기의 묘청(妙淸, ?-1135) 스님과 고려 말기의 신돈(辛頓, ?-1371) 스님, 그리고, 조선 전기의 허응보우(虛應普雨, 1515-1565) 스님이 그분들이다. 묘청 스님은 칭제건원(稱帝建元)을 내세우며 평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전해지고, 신돈 스님은 공민왕의 심기를 어지럽혀 나라의 뿌리를 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공민왕의 뒤를 이은 우왕(禑王)과 창왕(昌王)의 친부친조(親父親祖)라 해서 두 임금을 폐위하는 데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우스님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불교 말살 정책에 과감하게 맞서 분열되어 있던 조선 불교계를 통일하고 다양한 개혁을 시도하다가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비명에 세상을 떠난 분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을 어지럽혔다는 미명 아래 요승의 대명사처럼 불린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할 일은 과연 이들이 세상의 지탄을 받을 요승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악명을 붙여준 이들은 모두 유가(儒家) 사대부들이다. 불교계에서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한 승려가 고승인지 요승인지는 사대부들이 판단할 몫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 세 분을 요승이라 불렀고, 우리는 무심결에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이들이 이런 비난을 듣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유가들의 이익에 정면으로 도전했기 때문이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사람은 김부식이고, 그는 당시 유가 정치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신돈의 행적은 남은 것이 많지 않지만, 고려 말 나라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이성계 일파의 입장에서 고려 왕실의 정통성을 부정하려는 음모 때문에 애꿎게 스님이 몰매를 맞은 가능성도 농후하다.

당연히 보우 스님은 말할 것도 없다. 유교 왕국 조선에서 선교 양종을 부활하고 승과(僧科)를 실시하여 도첩제를 추진했으니, 서슬 퍼런 유림들에게 매도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요승이라 불리던 스님들의 실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억울한 누명을 벗어주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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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을 시는 그렇게 요승의 누명을 쓰고 수백 년 동안 수모를 당한 보우스님의 작품이다. 과연 그가 요승이었는지 이 시로 헤아려보자. 제목이 다소 긴 편인데, 스님이 일군 깨달음의 경지를 엿볼 수 있는 선리시(禪理詩)다.

선방 문을 닫다 건다고 깨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닫힌 공간이고 폐쇄된 밀실이다. 내면을 반추하기 위한 자세이긴 하지만, 만 가지 변화를 한 이치 속에 꿰고 보니 그제야 오묘한 조화가 환하게 밝아진다.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폐쇄된 밀실에서 광명의 세계로 옮겨온 것이다. 무명(無明)과 해오(解悟)의 차이를 첫 두 구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최씨니 박씨니 하는 차별상도 사라졌고, 소나 말이 가진 만상의 이치가 한 몸으로 체득되었다. 그리고 자연은 우주와 일체가 되어 만물 생성 변화의 원리를 자각하게 된다.

겨울의 추위와 여름의 더위는 자연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과정의 산물이며, 잎이 지고 꽃 피는 것은 대지가 죽었다가 다시 사는 생명 행위라는 것이다. 참으로 웅장한 깨달음이다. 마음에 얽매임이 없는 청정한적(淸淨閑寂)한 깨달음의 세계를 이처럼 멋지게 표현한 시구를 우리는 쉽게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이치가 내 안에 있는데, 다시 무엇 하러 문 밖을 나가 헤매느냐며 당당하게 외친다. 번뇌의 세계를 떨치고 해탈의 경지에 들어선 스님의 파안대소(破顔大笑)가 우렁차게 들려오는 시다.

자, 그러니 다시 한 번 따져보자. 과연 보우 스님이 저자들이 뇌까렸던 요승이란 말인가! 아니면 저들이야말로 세상을 그르친 마유(魔儒)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