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法誰承鉢與衣  법을 바르게 하여 누가 의발을 계승할까
古今人別道相違  고금의 사람이 다르니 도가 서로 어긋났네.
猿心世學巴歌衆  원숭이 마음 같은 세상의 학문은 천한 노래 부르는 무리고
龍藏眞經雪曲稀  용장의 참된 경전 읽어도 깨끗한 곡조가 드물구나.
鼠穴蝟形那可擇  쥐 굴에서 고슴도치 형상을 어찌 가릴 수 있겠으며
虎皮羊質一皆非  호랑이 가죽이든 양의 바탕이든 모두 그릇되었네.
家風衰旺隨時轉  가풍이 쇠하고 왕성해지는 것이 때에 따라 달라지니
應有其人更發揮  응당 그 사람이 나온다면 다시 발휘하겠구나.
 

                                  -오암의 <경학이 쓸려 없어진 것을 탄식하면서(歎經學蕩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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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암의민(鰲巖義旻, 1710-1793)은 조선 후기 때의 고승이다. 그러나 아직 스님은 세상에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집인 󰡔오암집(鰲巖集)󰡕이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채로 전하고 있는 탓도 클 것이다. 스님이 살았던 시기는 바로 조선 후기 문화가 한껏 꽃을 피었다고 하는 영조와 정조의 통치 기간이다. 그런 시대를 스님은 시와 문장으로 이름을 남겼고, 당대의 사대부 지식인들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살아갔다.

󰡔오암집󰡕에는 시가 272편 실려 있고, 문장은 14편이 된다. 83살이라는 세수(世壽)를 누린 스님이고, 수행에 정진하면서도 문인들과의 교유도 빈번했던 스님이었기에 이보다 더 많은 작품을 실제로 남겼겠지만, 우리가 현재 찾을 수 있는 작품은 󰡔오암집󰡕에 실린 시문에 국한된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도 우리는 스님의 법력(法力)과 문학적 성취를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스님의 󰡔오암집󰡕을 번역했는데, 새삼 스님의 시대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자기반성, 아름답게 형상화된 문학 유산들을 접할 수 있었다.

스님의 시를 읽으면 자연을 관조하면서 얻은 차분한 심정을 그리거나 사대부들과 시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망념(妄念)을 깨주려는 내용을 담은 작품도 보이지만, 가장 치열하게 쓰여진 작품은 역시 당시 불교계의 타락한 현실이었다. 스님은 남을 계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부터 청정수행(淸淨修行)을 실천해야 한다고 보았다. 내게 있는 문제는 돌아보지 않고 남의 허물만 헐뜯는 것은 올바른 수행자의 길이 아니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의 시에는 자기반성에서 우러난 작품이 의외로 많다. 오늘 읽은 작품이 그 한 예다. 이 작품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 공부는 등한시하는 태도에 대해서 일갈(一喝)한 것이다.

정법과 의발을 이어받아 세상을 정화하려는 참된 선지식은 찾을 길 없고 원숭이 무리처럼 흉내만 내면서 신성한 경전을 더럽히는 이들에 대한 준열한 비판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제 본분은 잃어버리고 거짓된 형상에만 집착하여 가풍(家風)을 혼탁하게 만드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형세였다. 그러나 이런 혼탁한 세태라 하더라도 바른 정신 맑은 눈을 가진 사람은 있기 마련임을 스님은 의심하지 않았다. 말세의 더러운 풍조를 일소하고 바른 기운을 불어넣을 이가 반드시 나타나리라고 스님은 확신했다. 물론 스님은 자신이 그런 역할을 맡기를 피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사실이었다. 많은 제자를 기르면서 세상을 광정(匡正)할 인재를 육성했던 것도 그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런 한편 불교가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 상황을 빚어낸 유가 지식인들과의 대화와 교화에도 성심을 다했다. 그러면서 스님은 어리석은 논리로 불교를 헐뜯는 속유(俗儒)들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吾道人間自不妨  우리 도가 인간 세상에 원래 그르칠 게 없는데
俗儒何事語偏傷  속된 선비는 무슨 일로 못된 말을 하는가
那堪惡業歸幽趣  어찌 악독한 행동이 그윽한 정취로 돌아가리오
願借芳姿化馬郞  원컨대 꽃다운 모습을 빌려 마랑이 되길 바라노라.

                                     -<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비난하는 것을 비웃음(笑世人詆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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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랑(馬郞)이란 옛날에 묘이(苗彛) 등 종족의 여자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귄 정인(情人)을 일컫는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과 정성을 다하듯이 서로 융화하면서 살아가자는 의미를 답은 시어다.

부처의 가르침에 세상을 그르칠 말이 한 마디도 없는데 아집과 독선에 빠진 선비가 억지 논리와 세속의 권세를 이용해 불교에 대한 비난과 억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스님은 분명하게 지적한다. 유교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런 항변조차 용기와 결단력이 없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무욕과 청렴을 가장하면서 자신의 언행을 미화한다고 해도 악업(惡業)이 그윽한 정취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미욱한 길로 빠지지 말기를 스님은 간절하게 부탁한다. 서로 함께 어우러져 밝은 세상을 여는 등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놓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