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보성선원 스님과 불자들이 모여 자비의 김장을 담갔다. 배추 3150포기를 3일간에 걸쳐 담가 보성선원 근처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280가구와 매주 제공하는 반찬 도시락 배달 대상자 30가구, 총 310가구에게 자비의 감장을 나눠주었다. 올해로 7년째 김장을 나누고 있는 보성선원의 김장김치는 천연 무공해 국산 재료로만 담가 맛 좋기로 소문이 났다. 올해는 특별히 보살행을 위해 고생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지켜본 주지 한북 스님이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김장 나누기 이야기를 글로 썼다. 보성선원 웹하드에 올라 있는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불교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님의 허락을 얻어 글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자비의 김장나누기’를 마치고 나서

우리 보성선원에서는 그제, 11월 26일부터 오늘(28일)까지 김장을 담갔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했으니 일곱 번째입니다.

26일 오전 7시쯤, 3150포기를 실은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150포기는 덤으로 보내온 겁니다. 해남에서 출발하여 밤새 트럭을 몰고 온 기사는 절 부근에 도착하여 해가 뜨길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새벽 일찍 나온 우리절 운영위원장 김종후 불자님의 인도로 간신히 경내로 들어왔습니다. 도로 양쪽에 차들이 세워져 있어 어렵게 들어온 겁니다. 절이 도심에 있다는 게 가끔은 불편할 때도 있는데, 이런 경우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평소에 잘 오지 않는 남자 신도님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배추를 내렸습니다. 배추는 그물망에 세 포기씩 담겨 있었는데, 올해는 농사가 잘 되어서 아주 튼실했습니다. 배추가 크고 속이 꽉 찬 건 좋은데 무거워서 내리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거사님들은 배추만 내리고 대부분 일터로 가시고 다음은 보살님들이 나섰습니다. 흙이 묻은 배추 아랫부분을 잘라내거나 거친 푸른 잎을 떼어내고 반으로 쪼갠 후 배추꼬랑이 부분에 칼집을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차곡차곡 쌓아두었습니다.

해남에서 무도 함께 싣고 왔습니다. 무청은 잘라내 끈으로 엮어 법당 처마 밑에 걸어두었습니다. 겨울바람에 얼었다가 녹았다가 하면서 잘 마른 후에는 된장을 풀어 국을 끓일 거라고 신도들은 말합니다. 무를 깨끗이 씻어 칼로 가로세로 3센치 크기로 토막토막 잘라냈습니다. 이건 방앗간에서 갈아와 양념을 만들 때 넣을 겁니다. 하루 종일 손질한 배추와 무를 비닐과 천막으로 덮고 첫날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이튿날 오전 10시경이 되어서야 신도님들이 도량에 모였습니다. 게다가 고작 스물 댓 명에 불과했습니다. 올해는 유독 신도님이 적어서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더니 김종후 운영위원장이 말합니다.

“경기가 워낙 안 좋다보니 한 푼이라도 벌려고 일하러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A 보살도 그렇고, B 보살도 그렇고, C 보살도 그렇고...”

믿어야 할지 믿지 않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쁜 인간들 때문에 불교 이미지가 실추되어서 신도들이 신심을 잃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가 ‘내가 요즘 신도관리에 소홀했나?’라는 생각도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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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포기가 넘는 배추를 정갈하게 씻어 양념을 버무리는 보성선원 신도들의 모습. 사진=보성선원 제공

커다란 고무통에 물을 채우고 끓는 물을 부어 미지근해지게 만듭니다. 찬물에는 소금이 잘 녹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금을 녹인 물에 손질한 배추를 담갔다가 건져내 듬성듬성 배춧잎 사이로 소금을 뿌리고 자른 면을 위로 보게 하여 소금 한 줌을 올려 골고루 배도록 흩어줍니다.

올해 김장에는 2012년 봄 송홧가루가 날릴 때 채취한 해남에서 곧바로 실어온 천일염을 썼습니다. 작년까지는 2009년 소금을 썼는데 이제 다 떨어지고 없습니다. 이번 소금도 2년 반 간수를 뺀 것이어서 떫은맛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우리절 김치가 맛있다고 하는데 간수를 충분히 뺀 좋은 소금을 쓰는 것이 그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절에는 배추 2200포기를 절일 수 있을 만큼의 고무통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비닐입니다. 폭 80센치, 길이 1미터 정도의 투명한 비닐자루에 소금에 절인 배추를 담고 서너 시간 지나 뒤집어줍니다. 배추에서 물이 배여 나와 배추가 알맞게 숨이 죽습니다. 그런 후에 씻으면 됩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몰라도 비닐자루을 이용하여 배추를 절인 것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배추가 숨죽기를 기다리면서 신도들은 마늘꼭지를 잘라내거나 무를 듬성듬성 썹니다. 이렇게 썬 무를 배추김치 아래 넣어두면 배추김치에서 흘러나온 국물이 저절로 무에 뱁니다.

점심 공양 후에는 아침 일찍 절인 배추부터 씻기 시작합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 세 개를 한 줄로 놓은 후 물을 채웁니다. 1번 통에서 1차로 씻은 배추를 2번 통으로 옮겨 헹구고, 3번 통에서 마무리 헹굼을 합니다. 약 10포기 정도를 씻고 나서는 1번 통의 물을 비우고 3번의 자리로 옮깁니다. 2번 통을 1번 자리로 끌어오고, 3번 통은 2번 자리로 옮깁니다. 기다란 호스로 물을 끌어와 세 군데에서 동시에 배추를 씻는 작업을 합니다.

씻은 배추를 플래스틱 광주리에 담아서 어느 정도 물을 뺀 후 비닐을 깔아 비스듬히 놓아둔 평상 위에 차곡차곡 엎어둡니다. 배추에서 빠져나오는 물과 씻은 물이 밤새 빠지면서 배추는 양념하기에 적당한 상태가 됩니다. 이 작업은 밤늦게까지 이어집니다. 행여 밤새 바람이 불어 비닐 덮개가 날아갈까봐 끈으로 묶어둡니다.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므로 절인 배추에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잘 갈무리해둡니다.

부엌에서는 청량심 보살님을 중심으로 한 신도님들이 하루 종일 양념을 만듭니다. 세 군데 가스레인지에 커다란 솥을 올려두고 새우와 다시마, 양파, 무, 사과, 표고버섯을 펄펄 끓여 국물을 만듭니다. ‘육수’라는 표현을 쓸까 하고 사전을 찾아봤더니 ‘고기를 삶아 낸 물’이라고 정의가 되어 있어서 ‘국물’이라고 씁니다. 처음에 한 번 진한 국물을 내고, 건더기를 건져두었다가 2~3차례의 건더기를 모아 다시 한 번 국물을 더 빼내 한곳에 모읍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국물에 고춧가루, 젓갈, 방앗간에서 갈아온 무즙과 생강을 섞어 뭉치지 않도록 잘 저어줍니다. 올해는 고춧가루도 해남에서 샀습니다. 배추를 소개하는 무여 거사님이 장에 나가서 좋은 걸 골라서 보내주었습니다. 올해엔 일찍 서둘렀더니 고추가 한 달포 전에 도착했습니다. 날씨가 좋았던 어느 날 신도님 십 수 명이 둘러앉아 하나하나 고추 꼭지를 떼 내고 행주로 꼼꼼히 닦아내 빻아둔 겁니다. 고추가 좋아서 빛깔이 짙고 선명합니다. 다시마는 완도 신흥사 생협에서 주문한 것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양념은 밤새 숙성됩니다.

오늘 아침 8시쯤 신도님들과 봉사자 서른 명이 절로 모여들었습니다. 새벽부터 나온 운영위원장님과 법도 거사님이 천막을 치고 그 아래 탁자를 줄지어 놓은 뒤 깨끗한 비닐을 고정하는 등 준비를 다 해두었습니다. 천막 앞에는 ‘보성선원 자비의 김장나누기’라는 현수막까지 내걸었습니다.

신도님들은 비닐 앞치마를 두른 후 머리에 일회용 비닐캡을 쓰고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머리카락이 한 올이라도 떨어져 섞이게 되면 좋은 일하고 욕을 먹기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대화할 때 김치에 침이 튈까 염려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위생적으로 한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탁자 위에서는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다른 한 켠에서는 빨간 플래스틱 들통에 김치를 담아 전달식을 할 준비를 합니다. 맑은 비닐 아랫부분에 무를 일정량 채우고 세 포기 가량 담습니다. 그런 다음 입구를 잘 묶은 후 뚜껑을 덮어줍니다. 들통 외부에는 “자비의 김장나누기-100% 국산재료로 이웃 사랑의 마음을 담았습니다. (재)선학원 보성선원 053-621-3333”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김장을 많이 했습니다. 농사 작황이 좋아 배추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에 배추가 많이 팔리지 않고 남았습니다. 어차피 양념도 충분히 했으니 주위 사람들과 나눠먹을 요량으로 넉넉히 김치를 담갔습니다. 서민들을 생각하면 농산물 가격이 떨어진 것이 다행이지만, 농부 입장에서는 여간 죽을 맛이 아닐 것입니다. 비가 오면 집신 장수 아들을 걱정하고 볕이 좋으면 우산 장수 아들을 걱정하는 늙은 어머니 안타까움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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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가 되자 우리 동네 33개 통의 통장들 가운데 30명이 도착했습니다. 3개 통은 중산층이 거주하는 아파트여서 대상자가 없었습니다.

올해 전달식은 김형구 동장님만 오셔서 단촐하게 치렀습니다. 해마다 빠지지 않았던 구청장과 지역 국회의원은 오지 않았습니다. 기념사진만 찍고 통장들은 각자 배당된 들통을 가지고 배달하러 갔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280가구와 매주 제공하는 반찬 도시락 배달 대상자 30가구, 총 310가구가 대상자입니다.

올해는 모처럼 봉사자들에게도 김치를 두 쪽씩 싸드렸습니다. 우리절에서는 생배추와 절인 배추, 그리고 담근 김치를 팔아 그걸로 이웃돕기에 보탰었는데, 그러다보니 늘 부족해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배추가 남아 뜻밖에 인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내년에는 파는 걸 줄이더라도 봉사자들에게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전 8시에 시작한 김치 버무리기가 오후 2시 40분에 끝났습니다. 점심 공양 시간을 빼고 근 6시간 가량을 서서 일했더니 허리가 뻐근합니다. 저보다 더 많은 일을 하신 여러 신도님들, 특히 연세가 많은 분들은 오늘 밤에 몸살이나 하지 않으실지 염려됩니다. 이 자리를 빌려 몇 년간 힘들게 일해주신 우리 신도님들과 지역 주민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2014년 11월 28일
(재)선학원 보성선원 한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