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의 마음이나 외양을 보면 안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전에 왜 보려고 하는지 뭘 알려고 하는지를 스스로 뒤돌아봐야 한다. 마음에 어떤 것이 일어났기에 그런지를 고요하게 바라봐야 한다. 욕심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 욕심이 삶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고통의 원인도 된다. ‘호기심’(好奇心)도 예외는 아닐 듯하다. 호기심이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왜 알고 싶은 걸까? 나는 왜 차 특히 보이차를 알고 싶은 걸까? 왜 꽂힌 걸까?

호기심이 생기면 대수롭지 않게 이것저것 묻는 사람도 있다. 대수롭지 않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다. 하지만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애착의 유무로 달라진 걸까? “이게 뭐하는 데 쓰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몰라도 돼”라는 대답을 간혹 듣기도 한다. 약간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그런 좀 정떨어지는 삭막한 대답 전에는 부담스러운 질문이 전제된 것을 보게 된다.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것을 물었나보다. 그냥 살다보면, 겪다보면 알게 될 것을 속성으로 급하게 알려고 하는데서 생기는 ‘시간차’에 대한 부담일 것이다. 성급함이 있다. 정제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세련되지도 못했다. 굳이 말하면 독단이고 강제이며 강요며 잘못이기도 하다. 그렇게 잘못을 했으면서도 ‘대답’이 무례하다느니, 건방지다느니 시비를 거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집착까지 있는 듯하다. 더 말할 필요조차도 굳이 없는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받아들인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혼자 북치고 장구 친다고 소리(파동)이 발생한 이상 주변에 파급이 간다. 이미 남에게 고통을 준 것이다. 왜냐하면 배려를 하지 않은 실경(失敬)은 스스로의 수행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나만을 위해 살지 않겠다’는 이가 굳이 남을 부담스럽게 불편하게 고통스럽게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알고 싶다면 그냥 공부하다보면, 배우다보면 그렇게 하나둘씩 머리로서가 아니라 손으로 발로 배로 그리고 가슴으로 실천하면서 체득되는 듯하다. 보통 머리로 배운 것을 알음알이라고 한다. 머리의 앎보다도 더 값지게 손, 발, 배, 가슴으로 체득한 것은 세월이라는 시간성과 균형 있게 조화한다. 결국 점점 습관이 되어 지식을 넘은 지혜의 터전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 ‘삶의 지혜’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차를 우리면서 “많이 알면 뭐하는가? 알아서 뭐하겠는가? 왜 알려고 하는가?”며 생각을 내린다. 그렇게 조금씩 전도된 꿈과 같은 생각인 ‘전도몽상(顚倒夢想)’을 고요하게 가라앉혀 간다. 돈이 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며 약이 있다고 병에 안 걸리는 것도 아니다. 우린 이미 넘치도록 충분히 가지고 있다. 오히려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 치여 불행해도 참 많이 불행하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태어난 이 삶에서 또 다시 나를 찾을 시간을 잃어버려 출구도 찾지 못한 채 계속 헤맨다. 이렇게 삶을 택한 이유조차 잊어버리고 또 한생을 허비한다. 그것도 망각했으면서도 뭘 그리 더 알고 싶은 걸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마음의 빈터는 그런 식으로 충만해지지 않는듯하다. 오히려 ‘이뭐꼬’화두를 잡고 왜 알고 싶은지 깊이 명상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차를 보고 알고 싶은 마음이 마치 샘처럼 솟는다면 그건 단순한 지적호기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지속적인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고집멸도의 사성제의 길은 아닐까? 끝없는 고통의 원인을 찾아 해결해 가는 과정이 연기고 다 사라지게 하는게 해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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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차를 알고 싶었던 것이 ‘욕심’이라는 이름의 호기심이 아니라면 또 다른 무엇일까? 혹시 내가 아닌 ‘차’가 먼저 내게 손짓한 것을 내가 못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 내가 아니라 ‘차’가 먼저 나를 알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나마 엉뚱하지만 초보적인 물아일체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차는 원래 있었다. 왜 지금에 와서야 알고 싶은 걸까? 이제야 차와 만날 ‘시절인연’이 무르익은 것은 아닐까? 김춘수의 ‘꽃’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게 ‘의미’가 되어 다가온 차를 나도 모르게 이미 내가 받아들였다. 그렇게 모르는 부지불식간에 차는 이미 내게 와서 내가 되어 있었다. 이걸 세월이라는 몸으로 알아가는 것이 생활선행인가? 오늘도 난 겸허하게 ‘차’와의 오래된 만남을 기뻐한다. 그렇게 보이차는 숙세의 친구처럼 내게 다시 다가왔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보다 나다운 때에 그(차)를 만나 기쁘기 그지없다. 정말 반가운 재회다. 그래서 ‘차 마시자!’고 권했나보다.

자존감을 확인하면서도 겸허함을 잃지 않은 그럼 초심으로 ‘일기일회’하듯 간절하게 진실되게 차를 대한다. 아니 그렇게 나를 대한다. 이미 내게 들어온 차는 나의 일부이면서 전부로 펴져 자연을 바라보게 한다. 하늘[天]의 태양[日陽]을 받아들인 사람[人]과 같은 차나무의 커다란 잎사귀들[木]은 그렇게 따스함[火]를 내린다. 땅속[地]을 흐르는 물[水]을 받아들여 올리며 차는 드디어 스스로 젖이 된다. 차가운 기운을 올라가게 하고 뜨거운 기운은 내려가게 하는 건강하다고 한다. 그런 수승화강(水昇火降)을 하는 차나무가 바로 우리다.

차나무에게 대지를 적시는 비는 하늘에서 내린 젖[天乳]다. 인간이 심은 재배종 차나무는 하늘이 낳은 인간에 대한 고마움으로 두 팔을 벌려 하늘을 칭송한다. 그리고 무념무상을 실천하는 무심한 하늘과 대지를 대신해서 하늘(양)과 땅(음)이 잉태한 우리 인간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런 감사함으로 물과 불을 조화롭게 받아들여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지유(地乳)다. 이렇게 보이차가 마침내 우리 몸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하늘과 땅을 대신해서 이런 감로차를 마시게 된 나는 보이차의 희생에 미안하다.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차와 같이 하늘과 땅이 아닌 ‘인간’에게 감사를 전한다. 이렇게 세상을 해롭게 하는 독이 아닌 이롭게 하는 젖을 만들어 세상을 이롭게 해야 한다. 이게 귀중한 벗인 차의 희생에 대한 보은이며 ‘홍익인간’의 사명이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시면서 외친 “천상천하유아독존 사해개고아당안지”라는 중생구제가 다른 이가 아닌 바로 나의 일이다. 마고성의 사람들을 먹여 살렸던 지유는 그러게 오래된 미래를 위해 잠시 자취를 감췄나 보다. 그리고 보이차라는 이름으로 내 앞에 모습을 다시 드러냈다.

오래전부터 보이차와 나는 서로를 애뜻히 사랑하며, ‘천년’ 아니 ‘만년’의 약속을 말없이 했나보다. 오래된 미래가 되어야 할 오늘 우린 다시 만났다. 오랜 병상생활로 움직이지 못하는 늙은 아내를 목욕시키듯, 나는 수줍거나 창피한 얼굴을 하지 않고 다만 정성스럽게 대한다. 적당한 온도의 물, 적당한 크기와 재질의 욕조를 준비하여 온몸을 닦아주며 때를 불려 준다. 부드러운 수건으로 온몸의 물기를 닦아주며 편안한 잠자리를 챙긴다. 그렇게 나는 차호와 물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조화를 꾀한다. 차엽 구석구석 모든 곳에 공기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들어간 물로 충분히 적신 후 서서히 차의 맛과 향이 맘껏 자태를 드러내는 시기를 기대한다. 내가 차라도 이런 최고 아니 최선의 맛과 향을 낸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그때를 기다린다. 그렇게 차를 우린다. 아니 차가 나를 우린다. 맑고 밝아서 아름답기까지 한 그 맛과 향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는가? 한바탕 너와 나를 잊은 그런 사랑을 한 연인처럼 어느덧 온몸의 모공이 열리며 긴 호흡으로 팽창해진 폐 안으로 들어온 세상과 교류하는 자신을 서서히 드러내게 한다. 그렇게 물아일체의 조화로운 ‘차예(茶睿)’가 끝나면 나는 ‘차호’를 중생의 아픔을 어루만지듯 닦는다.

지초와 난초의 향기로운 사귐처럼 나와 차는 그런 지란지교도 꿈꾼다. 차는 내게 ‘지란지교’를 말로만 떠들지 말고 실천하라고 한다. 처음부터 ‘차’는 내게 ‘나태하게 살지 말라’고 무언의 암시를 했나보다. 아둔한 내가 몰랐을 뿐 차는 처음 만남처럼 그렇게 처음부터 오직 ‘지행합일’을 말했나보다. 지행합일도 못하면서 물아일체니 떠든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뭔가 아직도 더 알고 싶은가? 그럼 모든 문제는 스스로 직접 풀어야한다. 스스로에게 이미 답은 주어져 있다. 결자해지다. 다만, 못 찾고 방황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남에게 그걸 묻는다면 옛 선사들처럼 몽둥이찜질이 최고의 약이다. 그런데도 보이차는 나를 후려친 적이 없다. 긴압을 마친 보이차는 한껏 제맛을 내기 위해 30여년이상 모든 균을 다 받아들인다. 실개천이 모든 물을 받아들여 결국 바다로 가듯이 차 역시 물처럼 세상을 받아들인다. 보이차는 자신을 아프게 할지도 모르는 모든 균과 미생물을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그들을 조화롭게 한다. 균형이 잡힌 다섯 가지 맛의 장인은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그 풍미를 더해간다. 다 받아들인 그 자리에 이미 미생물이나 균이라는 이름은 없다.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오직 보이차만 우뚝 서 있다. 부처님이 그랬듯이 우리도 그렇게 우뚝 서서 세상을 밝힐 수 있기를 서원할 따름이다. 법등명자등명이다. 차가 법이다. 내가 등이 되어야 할 따름이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하도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