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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품이 인품이다

하도겸 | dogyeom.ha@gmail.com | 2014-11-15 (토) 11:19

차분하고 조용한 차와 같은 인품을 한 차예사는 “2002년부터 지유명차에서 판매하여 꾸준하게 소비되어진 원미소타차를 일렬로 가지런히 줄을 세우면 얼마만큼 먼 거리를 갈까? 지구를 한 바퀴 돌릴 수 있을까? 적어도 한반도 동해에서 서해까지는 몇 번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로 원미소타에 대한 소개를 시작한다. 원미소타는 진기(빈티지에 해당)가 약 12년이 되는 생차(조금)과 숙차(많이)를 적절한 비율(3.5:6.5 정도의 비율로 추측됨)로 섞은 반생반숙의 작은 타차로 지유명차가 성차사 차창에 2002년에 주문제작한 차다. 그래서 그런지 달달하고 구수하면서도 생생하고 깔끔한 맛을 소유한다.

 

보이차 전문점 어딜 가든 10g밖에 안 되는 작은 버섯모양의 이 소타는 많다. 대엽종의 차를 작은 덩어리인 소타로 긴압하기 위해서는 잎을 잘게 썰어 넣게 된다. 같은 소타차라도 차엽의 배분 등이 달라서 모양은 같지만 맛은 천차만별이다. 진국과 같은 인품을 가진 보이차의 매력과 묘미가 거기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사람과 같이 외모뿐만이 아니라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깊은 향과 맛이 보이차의 품격을 결정하기도 한다. 보이차는 외모를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해서는 잘 알 수 없고, 실제로 우릴수록 그 ‘진국’과 같은 차의 품성(인품)을 살필 수 있나보다.

 

모든 배움이 그러하듯이 보이차를 시작하는 이에게 비싼 보이차를 처음부터 접하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 또는 재앙일 수도 있다. 와인을 처음 접할 때 그 비싼 로마네콩띠부터 마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보이차는 어쩌다 마시는 기호식품이 아니라 생활음료이다. 아무리 좋은 물이라도 몇리터씩 매일같이 계속 마시면 손발이 부어오르는 수독증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보이차는 그렇지 않다는 게 그렇게 10여년간 계속 마셔본 사람들의 일반적인 산 경험이며 평가이다. 그렇기에 매일 몇리터씩 마셔야 하는 보이차를 처음부터 고가품을 접하는 것은 그리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매년 중국 운남성에서 생산되는 수천수만 가지의 보이차의 세계에서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보이차의 ‘맛’과 ‘향’ 그리고 ‘효과’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접할 수 있는 차를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택된 이들만을 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하늘로 섬기는 민본주의 즉 인본주의 사회에서 ‘보이차’는 우리에게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도반’이 되어 줘야 한다. 보이차 특유의 내재되어 있는 발효균들이 살아 숨 쉬면서 나와 만남 이후로 나날이 발전해줘야 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장소에 좋은 자사로 만든 항아리에 몇 년 간 보관해가면서 마시면 나날이 부드러워지면서도 깊어지는 맛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친구여야 한다. 그런 보이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원미소타차라고 보이차를 접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지유명차 종로점의 문대혁 대표는 다른 비싼 보이차들은 조금씩 마실 만큼만 풀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따로 모아 두지는 않지만, 가장 저렴한 ‘원미소타’만은 몇 킬로씩 사서 잘 보관을 한다고 한다. 앞으로 몇 년 후에 변할 맛이 기대된다면서 스스로도 그런 보이차를 맞이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일일신(日日新)’을 다짐한다.

 

처음 보이차를 접하는 사람은 원미소타차를 꾸준히 6개월만 마시는 게 좋다는데 동의한다. 다른 차에 대한 공부가 쌓였거나 어느 정도 보이차를 접한 사람이라면 약 1개월만 마셔도 보이차에 대한 바른 기준을 세우는데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하면, 보이차에 대해 처음처럼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원미소타차’는 보이차의 이른바 ‘국정교과서’나 ‘매뉴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원미소타처럼 저렴하면서도 맛의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 보이차로 시작하며 일상화하는 게 좋다”고 지유명차 양재점 박종하 대표는 전한다. 양재점에서 우연히 한 손님이 맡기고 마시던 ‘설인’이라는 차를 함께 한 적이 있다. 박 대표의 설명처럼 보이차 생차가운데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인정받는 그런 ‘노차’를 마시면 산삼의 향기가 난다. 노차 특유의 일명 ‘삼향’이라고 하는 맛과 향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렇다.

 

너무나 비싼 가격 때문에 접한 것만으로도 일종의 ‘행운’이 되는 이런 노차를 만나게 되면 나라고 할 만한 그런 내가 없음을 얼른 알아차리고 바로 몸과 마음을 비우고 무조건 받아들여서 채워 두면 좋은 듯하다.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을 할 수는 없지만, 왠지 알 수 없게 두고두고 몸 안에서 다시 음미되는 그런 차이기 때문이다. 온몸이 따뜻해지고 신진대사가 원활해지는데 그런 현상이 하루 종일 가는 수도 있다. 단침이 계속 나며, 입안뿐만 아니라 몸 가득이 은은한 향이 나기도 한다. 그렇게 노차는 자신의 몸 안의 모든 발효균들을 통해서 부족한 도반(나)의 몸과 마음을 맑고 밝게 해준다.

 

‘설인’ 등의 노차를 마시다보면, ‘삼향’을 비롯해서 구수한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등의 맛이 어우러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렸을 때 생이별했다가 수십 년 만에 재회한 다섯 명의 형제들이 만나서 옥신각신하면서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잊지 않은 것이 ‘원미소타’다. 그리고 그 형제들이 같이 살다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30년간 가까운 이웃마을에 살면서도 그 우애를 잃지 않고, 한데 어우러져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 나며 ‘하모니’(조화)를 이룬 게 ‘설인’이 아닌가 싶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낙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지나면 즐겁고 좋은 일이 오기 마련이라는 말의 이 말도 ‘보이차’의 맛을 잘 설명해 준다. 생생하고 매운 맛을 내는 생차를 몇 번씩 우려내다보면 어느새 달달한 단맛을 선사해준다. 그런데 인생에서 쓴맛을 모르고 단맛만을 안다면 어떨까? 또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가 아니라 단 것이 다한 후에 오는 쓴맛은 어떨까를 생각해 본적은 없는가? 인생이 항상 드라마처럼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붓다는 카필라성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이 있기에 그 후에 찾아온 ‘행복’이 보다 값진 것은 아닐까? 처음에 ‘원미소타’를 접하지 않았다면 ‘설인’을 마셔도 그 맛과 향 그리고 진가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원미소타’를 알았기에 ‘설인’이 보다 더 고마웠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원미소타’를 단순하게 고통으로 보는 것을 생각을 정리하면 안 될듯하다. 깊고 맑고 밝게 통한다는 의미로 성인이나 임금을 뜻하기도 하는 ‘예(睿)’를 쓸 정도로 차를 우리는 차예사는 차를 가지고 밝은 마당을 만들어가야 한다. 진정한 차예사(茶睿士)라면 ‘원미소타’를 ‘설인’처럼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원미소타’에 깊이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설인’이 사치품일 따름이다. 그냥 돈과 권력을 탐닉하는 그런 속인(俗人)들의 장신구에 지나지 않을 따름일 수 있다.

차를 마시는 습성을 보면 그 사람이 읽힌다. 그래서 차품이 인품이라고 하나보다. ‘원미소타’는 가난한 살림을 함께 꾸려온 아내인 조강지처(糟糠之妻)다. 그래서 매일 ‘설인’을 접할 수 있는 그런 ‘능력자’가 되더라도 매일 보온병에 원미소타를 싸가지고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범상치 않게 다가온다. 글을 쓰다 보니 게르마늄 주전자에 다린 ‘원미소타’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늘도 충분히 시간을 만들어 지유명차 인사점의 3대미인 가운데 한명인 변지애 차예사가 내어주는 ‘원미소타’를 마셔야겠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

 


* 이 글은 차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일부 전문가들의 이해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형식으로 작성됐다. 이는 일방의 의견일 뿐 다른 해석도 반론도 충분히 가능하다. 일부 내용은 취재당사자가 한사코 사양하여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으니 이점 양해바란다.

 

* 사진은 문대혁 대표가 제공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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