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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에 대해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 아니 과거의 진실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과거에 역사를 기술했던 사람들, 또 그 일차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한 사람들, 그렇게 해석된 역사를 진실인양 포장해 학설로 주장하고, 그 주장을 사실이라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 이들은 과연 그 ‘진실’이라는 무게의 힘을 제대로 재보고 견뎌냈던 것일까?

과거의 기록을 무조건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의심이 없다면 우리는 어떠한 진실에도 다가갈 수 없다. 반성적인 사고나 비판적인 분석 없이 과거를 믿는 것은 눈을 가리고 외줄타기를 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 아닐까?

정찬주의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의 눈을 가린 거짓과 왜곡의 어둠을 벗겨주어 진실에 눈을 뜨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어둠을 갓 벗어난 진실이기에 빛은 더욱 눈부시다.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의 도움을 받아 한글, 훈민정음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 왔다. 역사가 그렇게 기록했고, 이 기록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일부 의식 있는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제안하기도 했다. 훈민정음은 세종 자신과 일부 왕실 사람들, 그리고 범자(梵字)에 해박했던 승려 신미대사의 피나는 노력 끝에 창조된 문자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주류 학자들에 의해 귀 담아 들을 필요 없는 낭설로 치부되곤 했다. 그들이 내세운 가장 큰 무기는 ‘기록’이었다.

정찬주는 그런 다수의 주장과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의 의혹은 단순한 반론이나 항변에 그치지 않아 설득력을 가진다. 소설은 허구의 산물이지만 때로 어떤 기록이나 논증보다 진실에 접근하곤 하는데, 그는 이런 어려운 작업을 진지하고 객관적인 태도로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의 소설은 창작물이 가질 수 있는 미려한 수식이나 그럴 듯한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는 자칫 소설로서 미덕이 될 수 없는 우려를 자아내지만, 그는 사실을 허구로 봉합하여 독자의 눈을 흐릴 생각을 처음부터 가지지 않았다. 그 역시 기록의 자장(磁場)에서 진실을 그려나간다. 그런 진정성과 뚝심이 오히려 이 소설이 허구를 넘어 진실에 다가갔음을 믿게 만든다.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연대기(年代記)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찬찬히 탐색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이미 주어진 사실에 의혹을 품게 만들고, 독자 스스로 진실의 향방과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끔 이끌고 있다. 고정 관념을 깨고 변화와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저항과 위협, 이에 따른 고통과 의지를 꾸밈없이 재현했다. 그런 갈등의 현장을 선악의 대결처럼 흑백논리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현실의 강고한 난관을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의 지평을 열려는 사람들이나 이를 부정하고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 모두를 공정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정찬주는 스스로 ‘오류의 동굴’ 속에 빠지지 않았다.

정찬주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구도(求道)의 작가’라 부른다. 이 평어는 결코 그가 불교적인 깨달음이나 그 깨달음의 도정에서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한 사람들을 소설 속에서 즐겨 다뤘기 때문에 붙은 것이 아니다. 그는 불교라는 소재가 아니라 진실이라는 주제에 더 큰 매력을 느꼈고, 행동보다는 동기와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부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거짓된 세계의 허구성을 반추하여 진실의 문을 열고 독자들과 함께 탐색하려는 열린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소설들은 이런 고민의 산물들이다. 그런 사실 때문에 그에게 붙은 ‘구도’라는 범상치 않은 언어가 공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천강에 미친 달>은 역경과 저항을 이겨내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고, 신미대사 또한 속세를 떠나 또 다른 구도의 길을 나서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그러나 이 소설과 작가가 추구하는 ‘구도의 길’은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작가 정찬주에게 ‘구도’는 항상 현재진행형이고 미래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의 소설이 말하고 있는 진실에 대해서도 검증하는 태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보는 잣대가 편향적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읽고 난 뒤 우리는 진실의 힘에 대해 새로운 전망을 가지게 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점이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진정할 가치일 것이다.

훈민정음이 완성을 본 세종의 시대가 백척간두에 서서 진일보(進一步)한 원형복원의 치열한 과정이었다면, 이후 전개될 세조의 시대는 암중모색의 시기를 넘어 한글 시대를 꽃피우고 그 궁극의 의미를 탐색하는 변곡점이 될 것이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걸어온 수난의 여정을 기억하면서, 작가 스스로 약속한 이 소설의 후속편이 어서 빨리 결실을 보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비단 몇 사람만의 발원은 아닐 것이다.

                                                                                          임종욱(소설가, 한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