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5백 년 전 고승이 전해주는 ‘짧은 글 긴 울림’
최승천 기자 hgcsc@hanmail.net 2014-11-04 (화) 15:23
운서주굉은 명나라 말기의 스님이다. 열일곱 살에 이미 ‘사전’이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로 박학했고 문장과 덕행이 뛰어났다. 서른한 살에 출가해 제방을 행각하다가 항주 운서산에 일대총림을 창설하여 크게 종풍을 떨쳤다. 명나라 4대 고승으로 꼽히는 그는 계율의 부흥과 정토법문의 제창, 살생 금지와 방생 권장 등 선과 염불과 계율에 두루 관심을 갖고 활약했다.
<죽창수필>(불광)은 주굉 스님의 수필집이다. 426편의 주옥같은 글이 담겨 있다.
81세에 입적한 스님은 그 이전 해, 자신이 살아온 일흔아홉 해를 뒤돌아보며 후학들에게 꼭 전하고픈 이야기를 죽창 아래서 붓 가는 대로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스님이 살아오며 보고 느낀 소소한 경험담이 있고, 구습을 바로잡기 위한 비판과 수행자들에게 내리는 따끔한 경책, 그리고 일상의 깨달음이 담긴 단상까지 다양하다.
모두 생활 속에서 절실히 느끼고, 진지한 고민과 성찰에서 나온 글이다. 글의 힘은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독자의 마음을 붙들어 맨다. 좋은 글, 좋은 생각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생명력을 지닌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하는 책이다.
2005년 절판돼 아쉬움을 남겼는데 연관 스님이 다시 나섰다. 잘못된 번역은 바로잡고 한문투의 어휘나 어법을 쉽고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가다듬으며 주석도 대폭 보강했다.
이 책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다. 연관 스님이 원고를 USB 메모리에 저장해 지난 8월 18일 출판사를 찾았다. 그날 오후 스님이 주석하는 실상사 수월암에 낙뢰가 떨어졌다. 암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깡그리 전소되고 말았다. 스님은 ‘개정판 죽창수필 역자 서’에서 “불길 속에서도 장엄하게 피어난 화중연화(花中蓮花)”라고 했다. 지혜의 책 <죽창수필>은 이렇게 10년 만에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646쪽, 3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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