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나도 아주 떠나지는 않는다. 영영 떠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누군가는 여전히 남아있다. 혹 떠났어도 습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라 습관처럼 되돌아와 채 사라지지 않은 땅을 일구기도 한다.

‘내성천 지킴이’ 지율 스님이 떠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왔다. 영주댐 공사로 인한 수몰지구에서 여전히 땅과 삶을 일구고 있는 이들을 앵글에 담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내성천, 물 위에 쓰는 편지>다.

지율 스님은 2013년 다큐멘터리 영화 <모래가 흐르는 강>을 통해 4대강 사업으로 망가져가는 강의 변화를 한국 사회에 고발했다. <내성천, 물 위에 쓰는 편지>는 <모래가 흐르는 강>의 후속작이지만 이번에는 그 느낌이 퍽 다르다. 투쟁과 같던, 스님의 창과 방패였던 카메라는 파괴에 대한 들끓는 저항감을 살포시 내려놓은 듯하다.

카메라는 지율 스님의 눈이 되어 강을 보고 귀가 되어 이야기를 듣고 입이 되어 감정을 전한다. 투박하지만 거칠지 않고 강렬하지만 담담하다. 사람들이 떠난 내성천 강변 마을에는 아직도 장판댁 할매가 있고, 이녘댁 할매가 있고, 노인회장 부부가 드나든다. 지율 스님도 내성천 둑방 위 텐트에서 마을을 드나들며 할매들과 끼니를 나누고 남은 이 없는 주인집을 지키는 개의 식사를 챙긴다.

암호 같은 할매들의 사투리에 대한 힌트를 주듯, 이번 영화에는 모든 음성에 대한 자막을 더해 영상에 대한 인지성을 높였다. 1년여의 촬영, 2개월간의 편집, 오롯이 지율 스님의 손길을 통해 이뤄진 것들이다.

러닝타임은 60분여. 상영보다 기록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공식 배포는 않는다. 상영 요청이 있는 곳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창을 제공하는, 이른바 공동체 상영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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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1일, 지율 스님이 조계종 종무원조합의 초청으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찾았다. 지율 스님은 영화 상영에 앞선 기자간담회를 통해 영화와 활동에 대한 소회를 털어놓았다.

지율 스님은 이번 영화를 따뜻하고 애조가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스님은 “6~7명의 할머니들이 남아 마지막까지 텃밭을 버리지 않고 곡식을 심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만들었다”며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할머니들을 보면서 나도 등 구부러질 때까지 땅을 만지고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율 스님은 또 “‘영화를 만들겠다’가 아니라 절박해서 만들었다”고 했다. “고발이라기보다 알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사람은 피해를 입으면 소리낼 수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이런 것들을 객관적으로 보는 작업”이라고도 했다.

내성천, 그 이전에 천성산. 지율 스님이 환경 문제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율 스님은 그것이 ‘세상에 진 빚’ 때문이라고 답했다. 스님은 “생태적 감수성보다는 내가 누리는 것들이 떠나고 무너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이 일이 고행이고 역행이기보다는 내가 원해서 한 것이었으니까 순행이었다. 지나와보면 아름답고 감사하고 따뜻한 기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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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스님은 이 자리에서 영주댐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 결과를 전했다. 1심 결과는 기각. 그러나 희망마저 기각당한 것은 아니다. 법원은 채권자로 소송에 참여한 ‘내성천의 친구들’의 당사자 적격 판결을 내렸다.

지율 스님은 “환경소송에 있어 제일 큰 부분은 원고 적격의 문제이다. 이해 당사자만이 소송의 자격이 있는 것이라 소송 결과보다 우리가 원고 자격을 받을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그런데 이번 소송 판결에서 법원이 그 부분(원고 적격)에 대해선 전적으로 우리 편을 들어줬다”고 설명했다.

즉 환경문제에 있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자연환경을 향유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단체나 개인에게도 권리를 부여해, 내성천의 친구들이 본안 소송으로 갈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판결이다. 이들은 영주댐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 항고는 물론, 영주댐 중지 및 철거 본안소송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편 지율 스님은 4대강 기록관 건립을 위한 ‘내성천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4대강 기록관은 내성천과 낙동강의 변화에 대한 기록을 전시하고 교육하기 위한 공간이다. 올해 말 부지 매입을 목표로 쉽고 작고 아름다운 기록관을 지율 스님은 꿈꾸고 있다.

지율 스님은 “기록관에는 2009년부터 지금까지 낙동강이 변해가는 전 과정과 강과 들과 문화가 변화는 것에 대한 기억이 담길 것”이라며 “정부의 4대강 관련 배포자료도 함께 전시된다. 정부의 홍보 동영상, 시뮬레이션, 언론 보도도 함께 간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내성천을 찾아 지율 스님을 격려했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도 아직 동참하지 않은 내성천 한 평 사기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율 스님은 “종단에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장 스님이 한 평 사기에 곧 지원을 일부 하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내성천 지키기 운동에 타종교도 함께하고 있다. 오는 11월에는 가톨릭과 불교 수행자들이 환경에 대한 인식 증대를 위해 회룡포 강변에서 범종교적 인간띠 잇기 행사를 개최한다. 낙동강 도록과 내성천 자료집, 내성천 생태 세밀화 화집도 11월 중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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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강을 모른다. 사람이 떠나도 아주 떠나지는 않는 것처럼, 자연이 떠나도 영영 떠나지 않는지. 그래서 지율 스님은 다시금 내성천에 대한 관심을 호소한다.

“영주댐이 착공되고 물길을 막은 이후 아직 담수하지 않은 공사 중인 시점에도 불구하고 내성천 하류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강을 얘기할 때 그들은 땅을 보고 개발을 생각합니다. 강에 들어간 물이 어떻게 되는지, 강의 원래 기능보다 사람의 생활을 위한 기능으로 변화하면 어떻게 되는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