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책을 읽고는, 산에는 꽃이 피고 물이 좋다는 건 팔자 좋은 소리라고 출판사에 항의를 했던 여자가 있었다. 절간에 방 한 칸을 얻어 쉬고 있을 때에도 예불이며 울력은 남의 얘기였던 사람. 첫사랑은 예수님이고 민중교회에 몸담으며 집사 소임을 보았노라 짜긋이 웃으며 고백하는 이 사람. 지금은 조계종 노동위원회에 몸담고 소외된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있는 박문진 노동위원이다.

박문진 위원은 조계종 노동위원이라는 이름보다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대구 영남의료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부터 보건의료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해 고군분투해왔으니 노동운동을 한지는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2012년 조계종 노동위원회 1기가 출범할 당시 집행위원으로 함께했고 최근 2기 체제를 시작하면서는 노동위원으로 그 직함이 바뀌었다.

10월 19일 일요일 오전,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세월호 천막농성장이 마련되어 있는 서울 광화문광장이었다. 괘불 부처님이 벽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광화문 법당에 그가 앉아있었다. 며칠 전 인터뷰 요청을 하는 전화에 대고, 어째서 본인인지 도대체 무얼 인터뷰하겠다는 것인지 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를 하였던 그에게 대뜸, 노동이란 무엇이고 노동운동은 왜 필요하느냐는 질문을 투척했다. 잠깐 웃고, 곰곰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척박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현장을 딛고 있는 일상생활, 또 일하는 곳에서부터 조금 더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생활과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그러기 위해서 노동운동을 하는 거죠.”

종교가 민중의 삶으로 뛰어들고 노동운동에 조력했던 근현대기의 시간동안 불교는 묵묵했다. 내부적 현안에 급급해 외부를 넘어다볼 여력이 아니 됐다 하더라도 밖에서 불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을 이들에게는 얼마나 애 닳는 시간이었을지. 박문진 위원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 위원은 “불자로서 불교의 손길이 필요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가톨릭이 부러우면서 불교계에 서운하기도 했다. 스님들이 중생을 위해서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지만 일반 대중이나 노동자들에게는 그 자비가 미치지 않았고 느끼지 못했다”고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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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나마 조계종이란 불교계 최대 종단에서 공식적인 노동기구를 설립한 것은 다행인 일이다. 박 위원은 노동위원회의 출범에 “음으로 양으로 제 자리에서 활동하신 스님들이 계시지만 공식적인 기관이 출범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불교는 뭐해’라는 물음에 조금씩 대답할 수 있고 활동해가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의 대답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단초’이다. 단초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나 사건을 풀어 나갈 수 있는 첫머리’를 말하는데,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그야말로 앞길이 구만리,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다.

그간 노동위원회는 투쟁중인 사업장을 방문하고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특히 도철 스님의 단식을 통해 서울권에는 그 이름을 조금씩 알리고 있지만 지방에서 조계종 노동위원회는 존재감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 박 위원의 판단이다.

노동위원회의 역량 부족. 그러나 그것이 노동위원회의 무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박 위원은 노동계의 위축이라는 외부문제와 노동위원회의 인력풀 부족이라는 내부문제가 결합된 것으로 진단했다.

“활동가들끼리 모여 앉으면 노동운동의 침체기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협화음, 사회적 문제를 투쟁으로 만들지 못하는 문제, 자기문제를 가지고 겨우 활동하는 현실. 이런 상황에서 불교가 노동위원회를 구성했다 하더라도 침체기에 놓인 노동현실에 어떤 사업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현재 노동위원회에서 지친 노동자들을 위해 명상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는데 너무 좋은 사업이지만 참여율 자체가 저조해요. 쌈박하게 뭔가를 하기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노동문제 현안에 대해 연대하고 투쟁 사업장에 동참하고 무차대회를 하면서 노동자의 소외된 마음을 위로하며 뿌리내려야겠죠.”

노동위원회 활동 자체의 미흡도 있다. 박 위원은 “위원회가 출범했으면 단 몇 명이라도 상근자가 있고, 분야별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양한웅 집행위원장 혼자 계시다시피 해 벅찬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노동위원회가 중앙에만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된다. 박 위원은 “서울에서 하는 상징적인 사업이 아니고 노동자를 위한 불교계 사업을 공유하려면 지역에서도 같이 움직여야 한다”며 “조직구성을 통해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나 사람이 중요한 것이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일반 현장의 노동자들이 자기네 문제가 있을 때 ‘불교에 노동위원회가 있었지’ 하는 것이 현장 속에서 확인되고 호흡할 수 있는 역량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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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서 말은 끌고 가도 중 세 명은 못 끌고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스님들은 연대하지 않는다. 적어도 노동현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절집안에서는 하안거가 끝났고 스님들은 해제를 했지만, 도철 스님이 단식을 하고 있는 광화문으로 만행을 나온 스님은 없었다. 괜한 기대였던 걸까. 중생들은 결국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기대에 배신을 당한 것이라 자조하며 애써 서운함을 삭여야 하는 것일까.

“노동위원회 관련 스님들 외에는 지지방문도 거의 없었습니다. 도철 스님이 단식을 하는 30여 일 동안 법회 한 번 하지 못하는 것이 불교의 현실이라는 회의감과 비애감이 들었어요. 지금은 일반 엄마들까지도 세월호 문제를 자기문제화 하고 세상을 달리 보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 법당이라는 돗자리를 깔아놔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 슬퍼요. 중생을 위해 회향한다는 말은 번지르르 하죠. 하지만 실천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운해요. 우리는 노조 간부 한 명이 움직이면 조합원 몇 십 명이 같이 움직입니다. 스님들도 신도 몇 십 명씩은 있지 않나요?”

인터뷰를 하기 전날인 25일 성공회 신부들이 팽목항에서 시작한 보도순례를 광화문에서 회향했다 하였다. 그러면서 박 위원은 “개인의 단식이 아니라 스님들이 주체가 되는 활동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스님들과 같이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 너무 정적이다. 깃발을 들고 절에서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나보다”라며 “불교계에서 한 49재와 천도재도 의미가 있지만 우리끼리만의 행사가 아니라 투쟁을 통한 감동이, 감동의 물결이 이어질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말하죠. 만약 우리 불자들이 부처님이 이루고자 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하고 기도했다면 맥이 끊이지 않고 확대돼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현재 불교계는 부처님 말씀답게 중생을 챙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불국토 세상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박 위원은 불교라는 종교 또 붓다라는 교주가 온 생애를 통해 보여준 정신이 발현되지 않는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하면서도, 이 세상이 불국토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불자라고 하는 모든 이들이 부처님 말씀대로 살며 참회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부터 부처님대로 살기 시작해 이 세상이 불국토 세상이 됐으면 해요. 여기 천막 법당도, 웅덩이를 파 놓으면 개구리가 와서 논다는 것처럼 법당을 차려놓으면 사람들이 오지 않겠어요. 지금은 멍석을 까는 게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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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꿈꾸는 불국토 세상이 특별히 찬란하거나 몹시 아름다운 곳은 아닐 것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인격까지 말살 당하지는 않는, 자기만의 색깔과 향기를 존중받을 수 있는, 다만 그런 세상일 것이다.

“가진 것 없는 노동자와 서민, 즉 민중들의 삶에서 적어도 주택과 교육과 의료에 대해서는 국가가 무상으로 지원해주는, 최소한의 기본권과 행복권을 가질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으면 해요.”

인터뷰를 마쳐도 여전히 오전이었으나 좀 전보다는 사람들의 활기가 더해졌다. 더러는 천막 주위를 서성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광화문 네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가면서 자꾸만 뒤돌아 천막 법당을 힐긋거렸다. 그는 여전히 거기에 앉아있었다. 꼭, 망부석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