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종 기자
urubella@naver.com 2014-10-20 (월) 14:37가을이 짙게 드리운 10월 18일, 구산선문 종찰 가지산 보림사(주지 일선 스님)에 2천여 인파가 모여들었다. 근래 들어서는 최대 인파로 기록될 만큼 많은 선남선녀들이 모여든 것은 세월호 참사로 인해 온 국민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려는 보림사 주지 일선 스님의 원력의 결실이었다.
일선 스님이 불자 및 일반 국민들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행사는 ‘템플스테이&명상치유 산사음악회’. 이날 일선 스님은 힐링의 명사 두 분을 이날 가지산 보림사에 어렵게 초청했다. 한 분은 ‘국민 멘토’로 널리 알려진 혜민 스님, 또 한 분은 음악을 통해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임동창 선생이다.
일선 스님은 이날 마련한 소중한 무대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 세상은 고통을 참고 견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계라고 해서 부처님께서는 사바세계라고 하셨다”면서 “두 분의 명상치유 강연과 음악에 흠뻑 젖어서 그간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훨훨 내려놓고 가시라”고 당부했다. 그리고는 조계선문의 구참 수좌의 면모를 드러내 보이는 멋들어진 선시(禪詩) 한 편을 읊었다.
천년 세월 변함없는 선차의 향기를 듣고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보배인 성품을 보니
티 없이 높은 하늘 가 없어 지극히 청정하고
문앞 탐진강은 장광설을 토하며 바다로 달리네
일선 스님의 사바중생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간절한 원력에 감동한 김성 장흥군수와 이 지역 국회의원인 황주홍 의원, 장흥군의회 곽태수 의장 등 지역 유지들도 이번 행사에 힘을 보탰다.
김성 장흥군수는 “세상사에 지친 주민들의 힘든 마음을 보림사의 청량한 기운, 부처님 말씀과 음악으로 어루만져 주고 치유할 수 있는 장”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황주홍 의원도 “오늘 차의 향기와 가을 산사의 정취를 느끼며 부처님의 말씀과 음악에 취하여 신선이 되어보시라”는 뜻을 전했다.
보림사의 이날 명상치유 음악회는 ‘선차의 향기를 듣는다’는 주제로 1부 청태전 차문화 축제 및 장흥 특산물 홍보, 2부 혜민 스님 법문, 3부 임동창 선생의 음악회로 오전 11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장흥지역 신도 및 주민은 물론, 서울, 진주, 광주, 나주, 강진 등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대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와 박수 속에 등장한 혜민 스님은 ‘자존감은 높이고 우울감은 낮추자’는 주제로 법문했다. 기지 넘치는 유머와 자유자재한 언변으로 2천여 대중의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은 혜민 스님은 “과도한 경쟁과 정보의 홍수로 인해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 당하고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마음이 우울해지는 경험을 한다”며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어 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베품의 보살행으로 극복해나가자”고 당부했다. 최고의 힐링 멘토라는 이름에 걸맞게 1시간 가까이 강연이 진행되는 동안 대중들은 스님의 멋진 말씨와 몸짓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연이 끝나자 수십 명의 인파가 혜민 스님을 에워싸고 기념촬영을 하는 등 ‘걸 그룹’ 못지않은 열기가 도량에 가득 찼다.
이어 임동창 선생이 지휘하는 산사음악회가 시작됐다. 1부는 임동창 풍류 ‘영산회상’이 임동창 선생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로 진행됐고, 이어 역시 임동창 선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소프라노 박성희 씨가 아리아리랑과 오페라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를 연주했다. 3부와 4부 순서 역시 연주와 노래, 춤 등으로 산사의 가을밤을 신명나게 장엄했다. 특히 4부 순서에서는 임동창 선생이 작사, 작곡한 ‘장흥아리랑’이 연주돼 큰 호응을 받았다.
구산선문의 종찰이자, 보조국사의 선(禪) 정신이 어린 장흥 가지산 보림사는 어쩌면 개창 이래 가장 떠들썩하고 분주한, 그러나 가장 즐겁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며 ‘명상치유 전문도량’으로서 거듭났다.
환히로운 잔치가 벌어지던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청아한 푸름으로 도량을 빛냈고, 가지산은 송광(松廣)의 서늘한 기운으로 선기(禪機)를 마음껏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