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10번이나 채집하는 보이차가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어져서 우리나라에 들어온다. 단순히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사를 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대량으로 배를 타기도 하고 항공기에 올라타서 사람과 함께 오기도 한다. 생각 같아서는 도착하자마자 그냥 바로 차를 우려서 마시고 싶겠지만, 보이차를 아는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어떤 이는 차를 모셔놓고 정중히 절을 하며 마치 신랑이나 신부를 맞이하듯 예를 다해 집으로 들인다. 왜냐하면 목숨을 다 바쳐서 나를 진심으로 섬겨줄 친구이기 때문이다. 까닭에 멀리서 무사히 찾아와 준 도반에게 감사의 뜻을 그렇게 전한다. 이 도반은 앞으로 한국이라는 다른 환경과 교류하면서 시집온 새악시나 회사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처럼 1,2년은 지나야 완전히 친숙해 질 것이다. 이 과정을 거풍이라고 하는데 적어도 그 맛은 1,2년 정도 지난 후에 평가해도 늦지 않을 듯싶다. 들뜸이 있기에 좀 가라앉힌 다음에 스스로 자기 모습(향)을 찾고 자존감을 갖고 제 맛을 드러내게 될 때 그때가 돼서 평가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병차에서 해괴(덩어리를 푼다는 뜻)해서 자사차통에 넣어 두면, 숨 쉬는 통기성이 좋은 반결(물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공기는 통하는 고어텍스 같은 결정체)의 차통이어서 그런지 그 안에서 발효 및 숙성이 잘 진행된다. 맛이 업그레이드되고 활성화되고 상승되면서 기운도 많이 달라진다. 보이차에는 몸의 온도를 높여주고 몸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며 조화롭게 하고 해독기능을 가진 곰팡이 균이 살고 있다. 거북이 등처럼 쫙쫙 갈라진 논에도 비가 오면 어디 숨어 있었는지 올챙이들이 나타난다. 이처럼 이른바 떡차(병차)로 만들어진 차는 도반(차주인)과 만날 날을 기약하며 모든 향과 맛을 감춘다. 겨울 동면에 든 곰처럼 저체온을 유지하듯이 말이다.
보이차는 현대사회에서의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전통사회에서부터 사람과 같은 생명체로 다뤄진 고귀한 존재이다. 포자형성을 해서 정지상태에 있다가 자사차호에 들어가게 되면 15년 이상 된 보이차라면 단지 2,3주만 지나도 자신을 만날 도반이 밖에 와 있음을 알고 최소한 먹을 만하게 변해 준다. 참으로 깜찍한 친구가 아닐 수 없다. 4계절을 어찌나 잘 아는지 1년에 2번씩 여름과 겨울에 맞춰 맛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 하면서 확 변한다. 바뀌는 도중에는 차맛이 없기도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 봄이나 가을이 되면 참으로 더 성숙해진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일신우일신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 보이차는 겸손하게 끊임없이 성장을 거듭한다.
보이차 생차는 만든 지 1,2년이 되면 비린내가 나고 텁텁하다. 아직 긴압(눌러서 압축) 등을 거치면서 강제로 형태가 성형된 탓에 그런 아픔을 드러낸다. 어쩌면 엄마의 뱃속 같은 차에서 떼어져 세상으로 나온 솜털이 뽀송뽀송한 아기처럼 전혀 진정되지 못하고 그렇게 울어댄다. 그래도 차답지는 않지만 차같은 맛은 낸다. 그런데 3년차가 되면 갑자기 맛이 이상하게 변한다. 5년 정도 될 때까지 차맛이 불명확해지거나 맛이 끝없이 떨어지고 전혀 상쾌하지도 않고 오히려 밍밍할 정도가 된다. 이때 차를 버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보이차를 몰라서 하는 일이다. 보이차 생차의 음용 시기는 살짝 비릿한 풀향기 즉 비린내가 없어지는 시기가 되어야 한다. 인생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 잎으로 나서 차가 되어 2년이 지나면 햇수로 3년을 힘들며 걸어왔으니 그만큼 휴식도 필요한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르고 쉬면서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이제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우리의 인생과 같은 삶을 사는 보이차는 60세가 되면 조금씩 시들기 시작하나 보다. 그리고 100세가 되면 보이차로서의 생을 마감한다. 100년이 넘은 보이차는 더 이상 균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생명의 신비이다. 따라서 100년 넘은 보이차는 골동품의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마시는 차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인간의 형해화한 욕망일 따름이다. 욕망과 집착이 고통의 원인이듯이 100년이 지난 보이차는 이미 그 약효가 상실된 것이다. 3000만원을 호가하는 홍인청병의 포장지가 500만원에 거래되는 곳이 중국이다. 과욕을 부리는 사람은 그 욕망을 보는 이들의 노예가 될 따름이다. 에디슨의 독이라는 개념이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은 다 독이라고 보고 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하나씩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 마치 한편의 인간극장을 보여주는 우리의 도반 보이차의 일생을 더럽혀서는 안 될 것이다. 차나무는 불혹에 해당하는 40년 이상이 돼야 노수라고 하고, 100년 아니 7,80년 이상은 되어야 고차수라고 한다. 마치 요즘 노인정처럼 80이 안되면 명함도 꺼낼 수 없고 아이취급 받는 곳이 바로 차나무의 세계이기도 하다.
지유명차 양재점 박종하 대표는 보이차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중국에서 먹을 때는 그렇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 들여왔을 때는 또 달라질 수도 있다고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에 와서 그 맛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경험해 봐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전한다. 중국과는 다른 기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보관하면서 어떻게 변할지 기대가 된다고 하면서도 이 새로운 실험이 전혀 걱정은 안 된다고 한다. 이 차의 30년 후라는 ‘오래된 미래’를 믿고 모셔온 박현 회장을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0607무량산 생차’의 경우 모차가 06년 것으로 07년에 긴압한 것이다. 생산된 지는 8년차이고 긴압한 지는 7년차가 된 지금에서야 이제 좀 먹을 만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차가 들어오면 매년 서너 번씩 한 번씩 시음을 해보면서 그 변화를 흥미진진하게 기록하는 그는 보이차를 매우 과학적으로 정밀하게 접근하는 ‘맛의 감별사’다. 와인의 소믈리에처럼 아니 ‘신의 물방울’에 나온 주인공처럼 박종하 대표는 맛에 대해 정말 특별하다.
보이차에서 나는 매운맛(알싸한 맛, 쎈 맛, 쇠맛 등으로 표현되는 오행상 금에 해당하는 맛으로 차의 힘을 나타낸다)은 자기 키보다 뿌리가 긴 차나무 뿌리가 암반층에 도달했을 때만 나는 맛이다. 매운 정도에 따라서 그냥 차돌 수준인지 화강암이나 게르마늄 수준인지는 파워(강해짐)에 따라 구별가능하다. 특히 부싯돌향(화약향)은 차나무의 뿌리가 깊고 수확한 해에 일광이 매우 좋았거나 쇄청을 강하게 한 좋은 생차에만 난다. 떫은맛은 장기 숙성차의 특징이므로 긍정적이다. 뿌리가 암반에 닿지 않은 차에는 대추씨와 같은 신맛이 나고 뿌리가 깊어 암반에 닿은 차에는 살구씨 신맛이 나는 등 차맛으로 차나무도 알아낸다. 차를 우리고 나서 남은 차잎 즉 엽저(葉底)가 크고 두툼한 것이 고수차 특유의 모습으로 차엽이 펼쳐지는 탄력성은 대지차가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라며 이것이 고수차인지 대지차인지도 바로 알아낸다.
하지만 보이차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그리 길지 않다. 그래서 그 향과 맛을 적절하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사실 단어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다. 또 차 맛 자체가 주관적인 성향이 강해서 고정된 표현이 불가능하다. 특히 차맛은 향과 별도로 표현하기 어렵고 항상 맛과 향을 함께 표현할 수 있어야 적절하다. 맛(향)에 대한 느끼는 바가 사람마다 다르고 받아들임도 서로 달라서 서로 묻고 이야기할 필요가 크기도 하다. 특히 팽주(차를 우리고 나누는 사람)가 초보자를 대할 때는 차맛 등과 관련해서 상대의 세세한 반응 등을 묻는 그런 대화를 통해서 취향이나 몸에 맞는 차를 권할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차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약이 되기 위해서 살아온 우리의 도반이기 때문이다. 차를 일목요연하게 체계적으로 과학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면 박종하 대표를 찾아가 차 한 잔 나누면 될 일이다.
사람이 소중하기에 차도 소중하다. 옛날 중국에서 사람을 희생시키는 대신 차를 올리게 되었다. 차가 사람 목숨을 살렸다. 차가 바로 사람이다. 차를 사람처럼 융숭하게 대접하고 가장 소중한 효를 상징하는 조상 제사때 다례를 지낸 이유가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하도겸 | 칼럼니스트, dogyeom.h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