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불교정화운동 당시 조계종 초대종정이었던 동산 스님은 한국불교의 기둥이 될 불법승의 삼보 스님으로 각각 탄허 스님과 운허 스님, 관응 스님을 꼽았다. 유식학의 거봉으로 최고의 포교사이자 대강백으로 학덕이 높고 계행에 철저한 관응 스님을 승(僧)이라고 했다.

관응 스님은 상좌들에게 정화 이후에도 “절대 주지를 맡지 말라”고 가르쳤다. 주지를 맡아 결국 시비에 걸리면 승려의 본분을 잃게 되고 그러면 중노릇을 못하게 된다고 했다. 그런 관응 스님도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본찰 주지를 세 번이나 맡았다. 첫 번째는 1959년 서울 조계사, 두 번 째는 1963년 수원 용주사, 세 번 째는 1981년 김천 직지사였다.

수원 용주사 주지 시절인 1965년 관응 스님은 머물던 방문에 백일기도에 들어간다고 써 붙이고 행장을 꾸린 뒤 제자들에게 “주지를 사임하겠다”고 선포했다. 임기가 아직 1년이나 남아 있고 절은 날로 융성 발전하고 있었는데도 모든 것을 버리고 무문관 수행을 떠나시겠다는 것이었다. 이날 이후 상좌 덕해 스님은 용주사에서 도봉산 천축사까지 정해진 날에 관응 스님을 찾아뵙는 일을 6년 내내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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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들의 안식처인 영각당을 설립하는 과정에도 지극한 인연이 있었다. 2000년 여름 안양시청 공무원들이 찾아와 경내에 납골당 시설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말이야 고맙지만 공원 입구라서 시에서 허가해 줘도 주민들의 민원이 쇄도할 것이라며 정중히 거절했다. 공무원들은 물러서지 않은 채 기왕이면 대규모로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들의 부탁대로 납골당을 운영할 수만 있다면 각종사업에 필요한 재원을 충당할 수 있어 좋은 일이었다. 그들의 요청을 여러 번 거절했지만 그 정성에 못 이겨 일단 승낙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2000년 8월 허가와 함께 착공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단 한건의 민원도 없었다.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이듬해에 완공법회를 갖고 문을 열었다. 모두가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덕해 스님은 1995년 불교대학원대학교 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해 이듬해 설립계획서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서울 금천구 독산동 YWCA자리 건물을 매입해 증개축을 하고 2002년 9월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개교식을 가졌다. 개교 초부터 6년간 매달 막대한 재원을 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직접 몸으로 뛰어야했다. 70중반의 나이에 목탁을 치며 천도재를 올리고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제사를 올리는 등 어려움이 보통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간 학교에 2009년 1호 박사가 탄생했다. 가톨릭의 수녀님이었다.

덕해 스님은 여든이 넘은 연세에도 조석예불을 거르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일상생활이다. 종이 한 장, 휴지 한 장 헛되이 쓰지 않고 폐지를 쓰는 근검절약의 정신은 무서울 정도다. 스스로에게는 가혹할 만큼 근검절약하면서도 교육과 포교를 위해서는 아낌이 없었다. 후학들은 이를 두고 “제대로 중노릇을 하라”는 관응 스님의 말씀을 받들기 위해서라고 해석했다.

관응 스님은 10년 전 입적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그림자와 같으니 그림자는 그림자를 낳지 않느니라.”라는 열반게를 남겼다. 그때까지 50년을 넘게 노장님을 모신 이는 속가의 조카이면서 절집에서는 상좌가 된 덕해 스님이다. 덕해 스님은 자신의 그림자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던 어른 스님의 족적을 언급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짓이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후학들의 간청이 있었고,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노장님의 행장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모든 것이 인연이었다. <관응 스님의 큰 그림자-인연의 강>(소금나무)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관응 스님에 대한 기록이 매우 드문 현실에서 덕해 스님의 회고담은 더욱 값진 자료다. 218쪽,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