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시지각설(視知覺說)에 대해 인지과학적 해설을 도입함으로써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한 논문이 발표됐다. 윤영호 박사(동국대 불교학부 강사)는 선리연구원이 공모한 학술상 수상논문이기도 한 ‘불교 시지각설에 대한 인지과학적 해석-근견가(根見家)와 식견가(識見家)의 논쟁과 그 비판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논문을 지난 9월 29일 오후 서울 성북동 정법사에서 열린 ‘제8회 선리연구원 학술상 시상식 및 학술회의’에서 발표, 눈길을 끌었다. 

훈고학, 서지학적 한계를 잘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불교학계의 현실에서 윤 박사의 이 논문은 불교학과 현대과학의 접목을 통한 불교학의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자체로서 신선함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불교에서 시지각에 대한 논의는 「잡아함경」 제13권에 설시된 “眼色緣生眼識, 三事和合觸, 觸俱生受想思”라는 교설에 대한 해석에서 촉발되어 아비달마 불교의 근견가와 식견가의 논쟁을 통해 본격적인 담론으로 정립되었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근견가와 식견가들은 시지각의 본질을 ‘관조(觀照)’를 특성으로 하는 안근(眼根)으로 볼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식별[了別]을 특성으로 하는 안식(眼識)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첨예한 대립을 벌였다. 

근견가는 자파의 법상관(法相觀)에 근거하여 시지각의 성립조건인 3사, 즉 안근은 ‘보는 작용[能見]’, 색경(色境)은 ‘보이는 작용’[所見], 안식(眼識)은 ‘식별하는 작용[能了]’을 각각 구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지각의 본질을 안식과 합하는 상태[合位]의 ‘안근’으로 간주한 반면, 식견가는 식별작용을 특성으로 하는 ‘안식’으로 간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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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박사(사진)는 이러한 시지각을 둘러싼 논쟁이 오늘날 학계의 화두인 ‘통합’과 ‘융섭’을 선도해나가고 있는 인지과학(認知科學, cognitive science)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해석할 경우 저마다 일정부분 그 타당성을 지기고 있다는 데 착안,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재해석을 시도함으로써 불교 시지각설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하고자 했다. 

윤 박사는 인지과학에서 시지각에 대한 연구성과를 상술하면서 후벨(Hubel)과 위즐(Wiesel)이 시지각에 대한 인지과학에서의 연구성과와 담론을 토대로 시지각을 시각뇌(視覺腦, visual brain)의 신경정보 처리과정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는데, 이들의 이러한 인지신경적 탐구는 임상병리학적인 실험들을 통해 뇌손상 환자의 다양한 시지각 관련 병증들을 분석함으로써 시지각의 과학적 정초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했다. 

윤 박사는 “이러한 인지과학의 연구성과와 특히 맹시(blind sight) 등의 시각뇌 손상 환자들의 시지각 관련 병증들을 중심으로 불교 시지각설을 해석함으로써 불교 시지각설이 지니는 의의와 가치에 대해 재조명했다. 윤 박사는 불교 시지각설에 대한 3사에 기초한 설명방식은 복합적인 인지과학의 시지각 프로세스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이 된다는 데 주목하고 자신의 논지를 펼쳤다. 그는 특히 근견가와 식견가의 시지각 주체를 둘러싼 논쟁을 현대 임상병리학적 실험을 통해 밝혀진 ‘맹시’ 등의 병증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할 경우 불교의 시지각설과 인지과학의 친연(親緣)관계는 더욱 확증된다는 데 주목했다.

윤 박사는 맹시에 대한 사례 분석 결과를 상술하면서 “맹시의 병증은 근견설과 식견설 가운데 근견설을 지지하는 중요한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맹시의 병증 사례는 눈에 의해 전달된 시각정보에 대한 의식적인 시각적 지각[眼識] 없이도 시각적 행동, 다시 말해 시각적 정보처리[見]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는 대상으로부터 수용한 시각정보를 식별하는 안식 없이 대상을 관조하는 안근만으로도 시지각의 성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윤 박사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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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리연구원장 법진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그는 특히 “바수반두(세친)는 「구사론」에서 근견가와 식견가를 양립할 수 없는 대립관계로 기술하고 있지만, 논자가 볼 때 근견가와 식견가는 모두 세존(석가모니)의 교설을 근거로 시지각의 성립 조건인 근과 식의 화합을 통해 시지각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 동일한 지반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근견가는 안식과 합하는 상태에서의 동분의 ‘안근’을 시지각의 주체로 간주했던 반면, 식견가는 안근을 매개로 하여 보는 작용을 수행하는 ‘안식’을 시지각의 주체로 간주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윤 박사는 “근과 식에 있어 자파교학체계의 정합성에 따라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근견가와 식견가의 차이가 있을 뿐, 근·식의 화합을 통해 설명하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며, 이렇게 해석할 경우 맹시 환자의 사례가 근견설의 완벽한 이증이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윤 박사의 논문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논문 기술 가운데 인용한 각주 48의 「순정이론(順正理論)」 7(「大正藏」 29, 366c), “…雖說我終不說有能了者.”에 대한 한글 번역부분인 “나는 끝내 식별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하지 않는다”는 우선 그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 비문(非文)인데다가 그 의미도 “비록 ‘나는 결코 능료자(요별하는 주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라고 설하지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온당해 보인다. 소장학자에게 모든 것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인 듯하지만, 향후 학문적 성숙을 위해서라도 한문 원전의 정교한 번역을 위한 공부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