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와 재가가 힘 모으면 대작불사가 일어난다

긴 불교사를 살펴보면 출가와 재가가 힘을 모았을 때, 큰 성취가 이루어지는 사례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부처님은 빔비사라 왕, 수닷다 장자, 프라세나짓 왕의 만남으로 인해 재세 시에 탄탄한 교단을 형성하며 전법에 전념할 수 있었다. 전륜성왕 아쇼카 대제는 승단 내에 외도의 무리들이 왕의 공양을 받기위하여 스님 모습을 하고 섞여 있어서 범성(凡聖)이 잡거(雜居)하여 진위를 가리기 어렵고 스님들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분쟁이 그치지 않아 포살을 7년이나 행하지 못하게 되자, 이 같은 분쟁을 꺼려하여 멀리 아호항산에 은거하던 목건련자제수라는 고승을 찾아가 간청 끝에 스님을 도와 승단을 정화하고 정법 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중국의 선사 대혜종고 스님과 거사들이 가졌던 수준 높은 교유는 ‘최상승법’으로 평가되는 간화선 수행법의 탄생을 견인했고, 한국승단은 재가불자들의 든든한 지원에 승단정화의 깃발을 들 수 있었다. 이에 앞서 승군과 이순신, 승군과 조헌의 만남은 풍전등화에 있던 나라를 구했다. 

이렇듯 불교사는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경과 배려, 존경과 귀의의 관계를 가질 때 불교는 물론 전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념스님과 정찬주 소설가 만나 한글창제의 진실 세상에 알려

최근에도 이 같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났다. 오랜 신뢰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소설가 정찬주 선생과 정릉 흥천사 주지 정념 스님이 손을 잡고 매우 의미 있는 ‘불사’를 이뤄낸 것이다. 

20여 년 전 전국의 암자를 다니면서 취재를 하던 중 법주사 복천암 월성 선사를 만나 신미대사의 한글창제 사실을 전해들은 정찬주 작가는 언젠가 이 이야기를 소설화하겠다는 마음을 화두처럼 들고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성숙하지 않아 작업은 자꾸만 미뤄졌다. 그러던 중 신미대사가 한글창제를 위해 세종대왕과 교유하면서 자주 머물렀던 흥천사 주지로 정념스님이 부임하면서 한글창제의 주역이 신미대사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크게보기

신간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살펴보고 있는 정찬주 작가와 흥천사 주지 정념스님.

“한글은 절에서 태어났다”는 이 소중하고 놀라운 이야기를 소설로 펼치는데 선뜻 흥천사 정념 스님이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정념 스님의 약속은 마침 흥천사가 신미대사가 주석하면서 세종과 교유를 했고, 한글창제를 위해 고심할 때 자주 머문 절이라는 인연도 있었지만, 흥천사를 중창하는 데 막대한 정재가 소요되어 수십억의 은행 빚을 진 어려운 형편에서 이루어진 어려운 결단이어서 감동을 더한다. 

 

한글창제 주인공이 스님이라는 사실에 불교계 자긍심 고조

 

정념 스님의 정찬주 작가 후원으로, 신미대사와 세종대왕이 의기투합해 한글 창제라는 불세출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너무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 사실이 지난 6개월 동안 <미디어붓다>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자들은 <미디어붓다>를 읽으며 한글창제의 주역이 신미대사라는 점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이 소설은 SNS를 통해 더 큰 세상으로 번져갔다. 

연재가 끝나면서 <미디어붓다>에 ‘천강에 비친 달’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신미대사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야기는 ‘한글은 절에서 태어났다’는 저명한 카피라이터 윤제림 시인의 기막힌 부제와 함께 <천강에 비친 달>(작가정신)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출간됐다. 

소설 출간을 맞아 상경(上京)해 문학전문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정찬주 작가 부부는 즉시 흥천사로 정념 스님을 찾았다. 

소설 ‘천강에 비친 달’ 낳은 정념스님 정찬주 작가의 ‘감동 조우’

이 소설이 탄생하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주신 고마운 정념 스님을 찾아 방금 인쇄된 따끈따끈한 소설 <천강에 비친 달>을 전달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서울 도심에서는 드물게 새소리가 들리고, 푸슨 숲속을 헤치며 청량한 기운을 듬뿍 머금은 청풍(淸風)을 만끽할 수 있는 절 흥천사에서 조우한 정념 스님과 정찬주 작가는 한 동안 손을 잡고 놓을 줄을 몰랐다. 

 

 

크게보기

흥천사 경내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정찬주 작가와 정념스님

 

“다 스님의 배려 덕입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무슨 말씀을요. 더 많이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스님이 계셔서 자신을 갖고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건이 되면 흥천사 경내에 소설 <천강에 비친 달> 기념비를 세우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더 없는 영광입니다. 스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도 1년에 한 두 번은 꼭 흥천사를 찾아 신도님들께 저의 문학과 불교를 주제로 한 강연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좋지요. 흥천사 신도님들도 좋아할 것입니다.”  

지기들의 조우처럼 듯 스님과 작가의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스님의 외부 약속이 없었다면 두 사람의 대화는 몇 시간이라도 좋을 듯싶었다.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 듯, 정념 스님이 정찬주 작가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정 선생님, 이 소설책을 흥천사 신도님들과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습니다. 불자의 자긍심, 우리나라에 불교와 스님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알게되면 자부심을 갖게 될 터이니,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천 권만 보내주십시오.”

영영 이별이 아닌 데도 두 사람의 헤어짐은 길었다. 흥천사의 사십이수관세음보살과 정념 스님의 배웅을 뒤로 하고 경내를 걸어 나오는 정찬주 작가의 발걸음이 새털처럼 가벼웠다. 328쪽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