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그 자체만으로는 다친 가슴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지혜와 자비가 함께 하는 마음챙김이라야 인간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마음챙김은 지혜와 자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크리스토퍼 거머, ‘마음챙김과 심리치료’ 한국어판 발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심리학 임상 지도자이자 명상의 원리와 수행을 심리치료해 통합하는 활동을 해온 크리스토퍼 K. 거머 박사(Christopher K. Germer, PhD. 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서양의 정신치료와 불교사상의 만남을 이론적으로, 또 임상 사례를 통해 조명한 책 <마음챙김과 심리치료>(학지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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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 박사는 1978년부터 명상과 심리치료의 연관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테라와다 수행과 티베트불교의 자비사상에 대해 공부했고, 최근에는 이 책의 역자인 서광 스님 등과의 만남을 통해 선(禪)에서 말하는 ‘비이원적 관계’에 골몰하고 있다.

 

책은 지난 2009년 하버드의대 소속 명상 심리치료 연구원 주최로 심리치료에서 ‘연민심’과 ‘지혜’의 역할에 대한 답을 찾고자 열린 콘퍼런스에서 제기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의 논의와 아이디어, 다각적 연구방법을 정리한 것으로, 불교심리학의 명상치료 기제뿐만 아니라 명상을 구체적 증상에 적용하고 종합적으로 다룬 실체적 종합서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미국에서는 임상 심리치료 전문가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책장을 덮을 필요는 없다. 역자인 서광 스님이 한국독자들을 위해 명상과 심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번역했기 때문이다.

불교심리학이 임상과학의 숨겨진 대세

 

거머 박사는 9월 17일 교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임상과학 분야에서 붓다의 지혜, 즉 불교심리학은 이미 핵심적인 위치에 있다”고 단언했다.

 

증상을 없애는 것이 중요했던 이전의 서양사상과는 달리, 심리치료에서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감정이나 힘겨움을 자각하고 연민심을 느끼는 것이라는 마음챙김 과학이나 연민의 과학이 대세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거머 박사는 이 연민의 과학이 기원전 623년 등장한 붓다에게서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통은 진화과정서 야기된 과정…행복해지는 훈련해야

 

그렇다면 심리치료가 존재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인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거머 박사는 “생존하는 데에 적합하게 구조화된 인간의 뇌에서 고통이 온다”며 “고통은 진화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우리의 뇌는 과거와 미래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고통이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진화된 것이지 행복을 위해 구조화된 것이 아니다. 고통은 진화과정에서 필요한 것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타고난 고통에 절절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정신을 활용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머 박사는 “우리 모두는 행복을 위해 정신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며 “그 정신 훈련은 마음이 과거나 미래의 문제에 떠돌지 않고 현재 순간에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것은 훈련 자체가 아니라 적이나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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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크리스토퍼 거머 박사와 책을 번역한 서광 스님.

 

지혜는 복합성에 대한 이해…자비는 고통받지 않을 자격을 아는 것

 

서양심리치료에서 지혜와 자비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지혜와 자비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거머 박사는 “지혜는 ‘이해’와 ‘행동의 기술’이라는 두 가지 영역으로 이뤄지며, 글로벌 통합시대에서 지혜를 정의하자면 ‘복합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어떻게 나아갈 지 그 방법을 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 자비란, 첫째 고통을 보는 것, 둘째 나와 타인의 고통을 느끼는 것, 셋째 나와 타인의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의 세 가지 부분으로 구성된다. 눈으로 고통을 느끼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행동하는 것, 즉 머리와 가슴과 손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머 박사는 “자비연민이라는 것은 우리가 고통하는 것을 알고, 우기가 고통하지 않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 세계가 세월호 슬픔 공감…고립감 떨쳐내야

 

현재 한국 사회에서 그 누구보다 심리치료를 필요로 하는 이들은 지난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 희생가족들일 터. 거머 박사는 “그들의 슬픔에 전 세계가 공감하고 있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어 임상 심리학자로서 “나만 혼자라는 고립감에 빠지지 말고 세상과, 사회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고통이 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연민심과 자비심, 그리고 친절함”이라며 “연민심의 가장 큰 요소는 ‘나 혼자가 아니라 사회와 연결돼있다는 것’으로, 자기만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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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머 박사는 “5년, 10년, 20년이 지나도 자식을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며, 슬픔의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려고 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듯,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심을 가지고 자신을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거머 박사는 “마음챙김의 뿌리를 알고 마음챙김을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 또 인간의 탐진치를 너그러운 자비와 지혜로 바꾸겠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했다”며 “마음챙김은 지혜와 자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 이 책을 통해 지혜와 자비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Christopher K. Germer , Roanald D. Siegel 지음 | 서광, 김나연 옮김 | 학지사 | 576면 | 1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