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19 (토) 00:00
서울 도성은 1900년 7월 숭례문북쪽 성벽의 철거가 시작되었고, 이후 개화파와 대한제국을 좌지우지한 일본 제국주의가 추진한 경성 일대 도시계획에 의해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교통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철거 혹은 이전이 추진됐다.
그러나 근대적인 도시계획의 구상은 개화파인 김옥균이 1882년에 쓴 치도약론(治道略論)이다. 김옥균은 치도약론에서 도성내의 도로의 정비와 위생과 농업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개화파가 몰락하고 친일파가 득세하자 일제는 조선의 수도였던 한성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그 중 1916-1919년 제2대 조선총독으로 강압통치를 시행한 것으로 악명 높은 「하세가와 요시미치」는 1904년 9월부터 1908년 11월까지 조선군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숭례문파괴를 주장했으나, 숭례문과 흥인지문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두 선봉장인 가토 기요마사(1562-1611)와 고니시 유키나가(?∼1600)가 각기 이들 문을 통해 도성에 입성해 서울을 함락시킨 자랑스러운 전승기념물 이라 해서 보존된 것인 반면 서대문(돈화문) 등 다른 성곽은 일본왜구의 승리기록을 갖추지 못해 완전 철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또한 평양의 경우 평양성의 현무문과 칠성문, 보통문, 모란대, 을밀대, 만수대 등은 모두 청일전쟁 때 일본군의 승리와 연관되는 전승기념물이라 해서 고적(古跡)으로 지정돼 보호받았다. 일제는 1943년 숭례문을 폄하해서 남대문, 흥인지문을 폄하해서 동대문 등으로 불리게 하며 조선 문화재 제1호로 등록했고, 해방 후 우리나라는 아무런 역사적 사실이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조사나 연구 없이 일제잔재를 그대로 계승하여 숭례문을 국보 1호, 흥인지문을 보물 1호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국내 학자에 의해서 밝혀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본 도호쿠대학의 연구원인 오카 히데루가 2003년 “한국사론”이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동대문운동장은 조선 건국과 아울러 서울 도성이 있던 곳(현 축구장을 대각선으로 관통)이며, 도성을 경비하던 훈련도감이 있었던 곳이고 우리 정치사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사건들도 많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나라 체육이 엘리트 체육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세계 10위권의 체육 강국으로 발전한 것도 사실이며, 엘리트 체육이라는 이면에는 서울 시민이 쉽게 접근해서 즐기고 짜릿한 감동을 받은 곳도 동대문운동장이다. 즉 동대문운동장은 서민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공존한 보기 드문 공간 중에 하나이다.
혹자는 친일청산, 낡은 시설에 불과하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우리는 대개 문화유산 하면 국보나 보물, 가격은 얼마나 하겠는가만 생각하지만, 정반대의 것도 있다. 이를 부(負) 문화유산, 즉 네거티브 문화유산 이라고 하는데, 인류의 과오를 보여 주는 장소와 건물을 말하며 민족이나 개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건물이나 장소 즉 삼전도비, 조선총독부, 아우슈비츠, 바르샤바 역사 지구, 히로시마 원폭 돔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인류 역사상 더 이상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또한 친일화가 고희동집, 친일과 권력주변의 해바라기 서정주의 집, 친일파 지식인 이광수의 고택 등을 보존하자는 것은 그 집과 사람을 기념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자는 것이다. 즉 기념관 과 기록관을 분명히 구분하고 당사자들의 모든 공과 오를 기록하여 역사교육의 자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분명 동대문운동장은 불순한 목적으로 일제에 의해 지어졌지만, 그 내용만큼은 다르게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는 근대 체육 100년의 기록과 기념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1925년에 지어진 관중석에 해방 후 우리의 기술로 콘크리트로 포장은 되어있지만 그것 자체도 당시의 우리 기술로는 최고의 건물이다. 1960, 70년대의 콘크리트 체육시설 그 자체만으로도 보존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대문운동장은 공공시설로 다시 확보되어야 한다. 그리고 장소가 가지는 역사성인 도성이 복원되어야한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디자인센터는 또 다른 난개발 사업에 불과하다. 이는 문화적 감수성이나 역사성을 무시한 저급한 신개발주의 또는 우리의 진정성을 밀어버린 일제의 만행과 다름없다.
난잡한 청계천공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서울시의 디자인센터는 또 하나의 미끼상품에 불과하다. 디자인센터를 지은 후 서울시는 이 일대를 다시 재개발하려 할 것이고 동대문운동장 일대는 개발주의에 신음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축구장과 야구장 건물을 보존하고 위험 요소는 수리를 하고, 내부는 우리나라 근대체육 100년을 기록하고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활용했어야했다. 운동장은 엘리트 체육 공간이 아닌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즐겁게 누리는 공간 이어야한다.
다만 축구장은 도성 복원이 구체적으로 담보될 때 까지 현행 방식으로 사용이 존중되어야한다. 왜냐면 현재의 모습이 옛 훈련도감 터에 근무하던 약 1~2000명의 군사들과 이에 부속된 민중들이 어울려 생활하던 그야말로 사람 냄새나는 난장의 공간이었다. 지금처럼…….
그러나 서울시는 역사문화계의 보존주장과 서민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서울 600년, 무엇이 이 거대한 공간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 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의 연등축제를 동대문운동장의 마지막 공식행사로 장식하겠다고 한다. 역사와 문화,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동대문운동장 철거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었던 조계종이 서울시에 면죄부를 주려하고 있다.